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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여행가방 속 의식불명 아이, 아동복지법 개정해야

등록 2020-06-03 18:57수정 2020-06-08 14:17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또다시 참혹한 아동 학대가 발생했다. 지난 1일 충남 천안에서 9살 어린이가 심정지 상태로 여행가방 안에서 발견됐다. 경찰 조사 결과, 보호자가 아이를 벌주기 위해 7시간 넘게 여행가방에 감금한 것으로 드러났다. 갇힌 아이가 가방 안에서 용변을 보자 친부의 동거녀는 더 작은 가방으로 아이를 옮겨 방치했고 3시간 동안 외출까지 했다고 한다. 캄캄하고 숨막히는 가방 안에서 긴 시간 아이가 느꼈을 두려움과 고통이 어땠을지 헤아리기조차 힘들다.

경찰 조사를 통해 이미 한달 전 보호자는 같은 혐의로 조사를 받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달 5일 머리를 다쳤다고 병원에 온 아이의 몸에 멍자국이 있어 병원에서 사회복지사한테 알려 경찰에 신고했지만, 아이는 조사 뒤 다시 가정으로 돌아갔다. 경찰과 아동보호전문기관이 모니터링 조처를 하기는 했지만, 당시 피해 아동의 적절한 분리가 이뤄졌다면 막을 수 있었던 비극이라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더한다.

사망까지 이르기도 하는 심각한 아동 학대는 이처럼 반복해 발생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학대받은 아이들 대부분이 학대가 벌어진 가정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8월 내놓은 ‘2018 아동 학대 주요 통계’를 보면, 아동 학대 가해자의 77%가 친부(44%), 친모(30%) 등 부모이며 발생 장소의 79%가 집 안이었다. 그런데 학대 신고로 경찰 조사를 받은 뒤에도 82%의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갔다. 재학대로 신고된 아동조차 69%나 귀가 조처됐다. 아동복지법이 ‘원가족 보호 원칙’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가족보호원칙은 원래 빈곤으로 인한 가족 해체를 막고 한부모 가정 등의 양육을 지원하기 위해 2016년 아동복지법이 개정되면서 명문화된 것이다. 그런데 ‘가족으로의 복귀’가 우선시되면서 분리가 필요한 학대 아동들까지 집에 보내진 채 모니터링과 부모 교육 등 사후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재학대가 반복된다.

아동 학대 방지를 위한 충분한 대책이 없는 원가족보호원칙은 아이가 부모의 소유물이라는 전근대적 인식을 강화할 뿐이다. 그저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일 뿐인 부모는 아이에게 보호자가 될 수 없다. 여행가방에서 발견된 어린이는 사흘째 기계에 숨을 의지한 채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다. 꼭 깨어나 안전한 환경에서 자라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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