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승계를 위한 불공정 합병, 분식회계 등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9일 법원의 영장 기각 뒤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이 9일 새벽 기각됐다. 국정농단 사건으로 수감됐다가 항소심 집행유예 판결로 풀려난 이 부회장이 2년4개월 만에 다시 구속될 위기를 모면했다. 하지만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 사유를 보면, 경영권 승계를 위한 불법행위가 면죄된 것은 아니다.
법원은 구속영장 기각 사유에서 “불구속 재판 원칙”을 강조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불공정 합병,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등 기본적 사실관계는 인정하면서도 증거 인멸과 도주 우려 등 구속 필요성을 별도로 엄격히 심리한 것이다. 이러한 원칙은 이재용 부회장 같은 이른바 특권층이 아니더라도 두루 적용되는 게 바람직하다. 검찰도 이번에 이 부회장 쪽이 소집을 요청한 검찰수사심의위원회를 무력화하면서까지 구속영장을 청구한 게 옳았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영장 기각이 이 부회장에게 면죄부를 준 것은 분명 아니다. 합병·회계상의 불법행위는 인정되고 그에 대한 이 부회장 등의 책임 부분을 재판에서 따져야 한다는 게 법원 판단의 취지다. 경영권 승계와 관련한 불법행위가 벌어졌는데 그 수혜자가 아무런 관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된다. 이 부회장이 이런 불법행위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삼성의 주장은, 삼성 총수의 존재감 자체를 부정하는 일이다. 상상하기 어렵다.
더구나 이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에 도움을 받기 위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준 혐의는 대법원 판결까지 거쳐 유죄가 사실상 확정됐다. 불법적인 경영권 승계 작업이 이미 확인된 셈이다. 삼성은 준법감시위원회를 만들었고 이 부회장은 직접 대국민 사과까지 했다. 반성과 사과를 수사·재판에 유리한 용도로만 활용하려는 게 아니라면 이번 사안에 대해서도 처벌 회피에만 급급하지 말고 불법 승계 문제를 확실히 책임지고 끊어내겠다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재판과 별개로 이 부회장이 대국민 사과에서 한 약속들도 반드시 지켜야 한다. 준법감시위의 요청으로 삼성전자 등 7개 계열사가 내놓은 이행 방안에는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주식 보유 문제 해결을 비롯한 지배구조 개선, 이사회 중심 경영 등 실질적인 내용이 빠져 재차 보완 요구를 받았다. 삼성은 대국민 사과가 위기 모면용 허언이 아니었다는 걸 실천으로 입증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