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일 비료회사들의 비료 값 담합 재판에서 농민들을 대리해 승소를 한 법무법인 수륜아시아의 송기호 변호사와 노주희 변호사가 취재진에게 소감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비료회사들이 비료 값을 짬짜미(담합)해 피해를 본 농민들이 재판에서 이겨 배상을 받게 됐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2부(재판장 홍기찬)는 지난 30일 농민 1만7천여명이 13개 비료회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1심에서 58억8천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8년 동안 이어진 법정 공방 끝에 농민들이 승소한 것은 뒤늦게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이번 판결은 현행 소송제도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13개 비료회사들이 비료 값을 짬짜미해 얻은 부당이득이 1조6천억원대에 이르는 반면, 농민들이 받게 될 배상액은 50억원대에 불과하다. 천문학적 규모의 부당이득을 챙기고도 쥐꼬리만큼만 배상을 하는 것이다. 13개 업체에는 남해화학·조비·케이지케미컬 등 국내 주요 비료회사들이 모두 포함돼 있다. 사실상 농민 전체가 피해를 본 셈이다. 하지만 소송에 참여한 소수 농민만 보상을 받는다. 집단소송제가 도입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집단소송제는 피해자 50명 이상이 불법행위를 저지른 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해 승소하면 나머지 피해자들도 똑같이 배상을 받는 제도다. 현재 주가조작·허위공시 등 증권 분야에만 도입돼 있다. 법무부는 지난 9월 집단소송제를 분야에 제한 없이 확대하는 ‘집단소송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은 또 소비자의 입증 책임 부담을 줄여주고 사회적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국민참여재판을 적용하기로 했다.
집단소송제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디젤차 배기가스 조작 사건 등 소비자 피해가 광범위한 대형 사건이 터질 때마다 집단소송제 확대 여론이 높았다. 오죽하면 박근혜 전 대통령도 대선 공약으로 내놨겠는가. 하지만 재계는 “소송 남발로 기업 경영 활동이 위축된다”며 극렬히 반대했고, 보수 정당과 언론이 거들어 번번이 무산됐다.
재계는 반대에 앞서 왜 집단소송제 확대 주장이 끊임없이 나오는지 돌아봐야 한다. 집단소송제가 두렵다면 불법행위를 하지 않으면 된다. 불법행위가 없는데도 돈과 시간을 써가며 소송을 제기하는 일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재계는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을 접고 법부터 지킬 의지를 보이길 바란다. 국회도 이번에는 반드시 집단소송법 개정안을 통과시켜야 할 것이다. 소비자 피해 구제를 강화하고 기업들의 준법경영을 유도하는 데 국회가 힘을 보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