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서울 강서구 등촌1동의 한 거리에 걸린 오세훈 후보 쪽 선거 현수막. 장애인에 대한 차별 논란이 일자 오 후보 쪽은 현수막을 철거하고, “지역 당협위원회가 선거 캠프와 논의하지 않고 건 것”이라고 해명했다. 박영선 후보 선대본 제공
서울의 집값 상승세가 다소 주춤해지는가 했더니 일부 지역에서는 재건축 기대감으로 오히려 최고가가 속출하고 있다고 한다. ‘2·4 주택 공급 대책’과 공시가격 인상 같은 조처에 따라 가까스로 진정돼가던 매수세에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나선 유력 후보들의 온갖 개발공약이 다시 기름을 끼얹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한 표가 아쉬운 선거라지만, 말로는 집값을 잡겠다고 떠들면서 개발 기대 심리에 불을 질러 표를 얻으려는 꼼수는 ‘천만 시민’ 모두를 대표하겠다고 나선 이들이 결코 보여서는 안 될 행태다.
28일 한국부동산원의 통계를 보면, 3월 3·4주 서울의 아파트값 상승률은 0.06%로, 지난달 첫째 주 0.10%에서 2주마다 0.01%포인트씩 낮아지는 완만한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 안정세와는 거리가 멀고, 상승에 호재가 될 만한 작은 신호에도 흐름이 흔들릴 수 있는 불안한 상황이다. 지난달 초 최고가가 51억5천만원이었던 강남의 한 아파트는 최근 63억원까지 급등했고, 강남구 대치동과 양천구 목동의 아파트값도 강세를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이들 지역은 모두 재건축이 추진되고 있는 곳이다.
이들 지역의 집값 강세가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거대 양당의 후보가 재건축 규제 완화 공약을 쏟아내고 있기 때문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오세훈 후보는 한강변 오래된 아파트의 층고 제한을 풀고, 상계동과 목동의 재건축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부동산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오 후보의 이런 발언이 공유되며 큰 관심을 끌고 있다고 한다. 박영선 후보는 재개발·재건축에서 ‘공공 주도’ 방식을 고집하지 않겠다고 밝히고 있다. 공공 주도 중심의 ‘2·4 대책’과는 크게 다른 기조임이 틀림없다.
집값이 갈림길에 선 민감한 시기에 유력 후보들의 공약은 파급력이 클 수밖에 없다. 더구나 두 후보 공약이 별반 다르지 않으니, 누가 돼도 집값이 오를 거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투기세력엔 더없는 호재지만, 주거 약자들에겐 이런 악몽도 없다. ‘장애인시설 재건축을 재검토하겠다’며 오 후보 쪽이 내걸었던 펼침막은 집값 상승의 욕망 앞에서 차별이 얼마나 노골화하는지를 보여준다. 박 후보의 공약은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왼쪽 깜빡이 켜고 우회전’할지 모른다는 우려마저 낳고 있다. 주거 약자를 위한 공약을 내놓지 않으면 천만 시민을 대표할 자격이 없음을 두 후보 모두 깨닫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