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네이버 직원의 추모공간이 31일 회사 로비에 마련되어 있다. 성남/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아이티(IT) 기업 카카오가 주 52시간 근무제 등 근로기준법을 무더기로 위반한 사실이 고용노동부 근로감독을 통해 1일 드러났다. 앞서 지난 25일에는 동종 업체인 네이버에서 한 직원이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하며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일이 벌어졌다. 취업 준비생들 사이에서 ‘가장 일하고 싶은 직장’으로 꼽히는 국내 대표적 아이티 기업들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니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사회의 반노동적이고 전근대적인 직장 문화가 얼마나 뿌리 깊은지 다시 한번 드러낸 사례라 할 수 있다.
중부지방고용노동청 성남지청이 카카오를 대상으로 근로감독을 벌여 밝혀낸 노동법 위반 사항은 6건에 이른다. 임산부에게 시간외근무를 시키는가 하면 일부 직원에게는 연장근무 시간을 기록하지 못하게 하기도 했다. 애초 이번 근로감독은 지난 2월 카카오의 한 직원이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에 ‘함께 일하기 싫은 직원’을 꼽는 방식의 동료 평가에 대해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극단적인 선택을 암시하는 글을 올린 일이 계기가 됐다. 이런 식의 평가가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고 본 일부 직원들이 근로기준법 위반 사례를 모아 고용노동부에 청원을 한 것이다.
극단적 선택을 한 네이버 직원의 경우도 임원들한테서 심한 업무 압박과 폭언에 시달렸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국내 굴지의 아이티 기업에서조차 직장 내 괴롭힘이 만연해 있음을 보여준다. 네이버 사옥에 마련된 추모공간에는 다른 회사 직원들의 발길도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남의 일 같지 않다’는 동병상련의 마음일 것이다. 실제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가 최근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 1년간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한 응답자가 32.5%나 됐다. 그럼에도 회사나 관계기관에 신고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은 2.8%에 그쳤고, 신고 이후 근무조건의 악화나 따돌림 등 ‘불리한 처우’를 겪었다는 응답도 67.9%에 이르렀다.
직장 내 괴롭힘 지적이 제기되자 카카오는 티에프를 꾸려 개선책 마련에 나섰다. 네이버도 외부기관에 의뢰해 진상을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회사의 ‘선의’에만 기댈 일은 아니라고 본다. 차제에 법·제도 측면에서 보완할 점은 없는지 정부가 적극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사용자의 책임을 더 강화하는 방안도 고려해봄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