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1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조태용 주미 대사가 신임장을 받은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김성한 국가안보실장.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한-미 동맹 70주년을 맞아 12년 만에 국빈방문 형식으로 진행되는 4월 말 미국 방문과 한-미 정상회담을 한 달도 남기지 않은 시점에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을 사실상 전격 경질하는 초강수를 뒀다. 방미라는 대형 외교 행사를 목전에 두고 이뤄진 국가안보실장 교체에 대한 파장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 실장은 이날 오후 5시3분, 입장문을 내어 “저로 인한 논란이 더 이상 외교와 국정운영에 부담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며 사의를 표했다. 이후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은 오후 5시55분, 윤 대통령은 조태용 주미 한국대사를 김 실장 후임으로 내정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윤 대통령이 만류했으나, 김 실장이 (사의를) 거듭 피력했다”고 전했다. 전날 김 실장 교체설이 불거졌을 때만 해도 김 실장과 대통령실 양쪽은 “사실과 다르다”고 했으나 하루 만에 교체가 이뤄졌다.
윤 대통령은 지난 9일께 외교안보라인의 방미 관련 ‘보고 누락’ 사태를 인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실장이 3박5일 일정으로 방미해 워싱턴에서 윤 대통령의 국빈 방문 일정을 조율하던 때다. 국가안보실은 미국 쪽 제안을 받아 케이팝 그룹 블랙핑크와 미국 가수 레이디 가가의 합동 공연 일정을 조율하기로 했는데, 이 과정에서 안보실 실무진은 여러차례 보고를 누락해 윤 대통령과 미국 쪽의 불신을 산 것으로 알려졌다. 김건희 여사가 참석하는 여성 관련 행사도 보고가 누락됐다는 말도 나온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한겨레>에 “윤 대통령이 뒤죽박죽인 안보실에 대해 최근 김 실장을 호되게 질책했다”고 말했다. 김 실장으로서는 이 일로 김일범 의전비서관과 이문희 외교비서관이 줄줄이 교체된 상황에서 자리를 지키기가 난처해진 면도 있다.
일부에선 외교가에서 널리 알려진 김 실장과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의 알력과 갈등도 급작스러운 교체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두 사람은 지난 6일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해법 발표와 한-일 정상회담 의제 등 한-일 관계를 두고 갈등이 깊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대통령실 주변에서는 김태효 차장이 김 실장보다 더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는 말도 적지 않다.
김 실장 교체로 4월말 윤 대통령의 국빈 방미와 한-미 정상회담, 5월 일본에서 열리는 주요7개국(G7) 계기 한·미·일 정상회담에 차질이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한국 기업에 불리한 미국 반도체법과 인플레이션 감축법 협상 등에도 영향을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공백 우려를 의식한 듯 윤 대통령은 지난해 6월 부임한 조태용 주미대사를 새 국가안보실장에 기용했다. 조 내정자는 박근혜 정부 때인 2014년 외교부 1차관을 지낸 뒤 국가안보실 1차장 겸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처장을 지냈다.
윤 대통령은 취임 1년도 안돼 외교, 안보 라인을 재편해야할 과제를 안게 됐다. 김 실장 사퇴로 주미대사까지 9개월 만에 교체되면서, 연쇄 이동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5월 이후에는 내년 총선 출마 가능성이 높은 박진 외교부 장관과 권영세 통일부 장관 교체도 점쳐진다.
김미나 기자
mina@hani.co.kr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배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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