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국무총리가 14일 국회 본회의에서 고민정 민주당 의원의 대정부 질문에 답변 중 항의하는 의원들을 향해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흘 내내 대정부질문 자리를 지켰다. 한덕수 총리 태도 중에 되게 특이한 부분은 공개적으로 질문에 면박을 준 대상이 젊은 정치인, 여성 정치인이라는 점이다. 고민정, 강선우, 양이원영 의원에게 노골적으로 부정적인 이야기를 했다.”
김한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은 15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정책조정회의 뒤 브리핑에서 “공식적인 브리핑은 아니지만”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한 국무총리가 유독 젊은 여성 의원들에게 ‘사전에 질문 요지를 전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답할 수 없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제까지 중년 남성(의원)에게 여야를 막론하고 (이렇게) 대응한 적이 있는지 찾아봐 주시면 좋겠다”며 “딱 (총리) 본인이 공격할 수 있는 대상을 본능적으로 캐치하고 하는 거 아닌가 생각했다. 보고 있는 중년 남성으로서 되게 불쾌했다”고 말했다.
한 총리가 어땠길래 그랬을까.
지난 14일 국회에서 진행된 교육·사회·문화에 관한 대정부질문에서 고민정 의원은 2010년 이명박 대통령 시절 청와대 홍보수석실 요청으로 국가정보원이 방송 장악 문건을 만들었다면서 당시 홍보수석이었던 이동관 대통령 대외협력특보가 방송통신위원장으로 유력 검토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주장했다.
고 의원의 질의에 한 총리는 “(고 의원이 말하는) 저 서류 관련된 게 48시간 이전에 (저에게) 전달된 바 없다”며 답변을 거부했다. ‘대정부질문을 하려는 의원은 미리 질문의 요지를 적은 질문요지서를 구체적으로 작성해 의장에게 제출해야 하며, 의장은 늦어도 질문시간 48시간 전까지 질문요지서가 정부에 도달되도록 송부하여야 한다’는 내용의 국회법 제112조의2 조항을 근거 삼아 답을 거절한 것이다. 고 의원이 “국무총리의 이와 같은 답변 태도에 굉장히 유감을 표한다”고 하자, 한 총리는 “저도 의원님에 대해 유감”이라며 “대단히 비합리적이고 대단히 비상식적인 질문을 하고 계시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총리는 이전 대정부질문에서도 유독 여성 의원들을 향해 질문요지서에 적힌 질문이 아니라는 이유로 답을 거부했다. 지난 4월4일 열린 대정부질문에서 양이원영 의원이 에너지 전환 분야와 관련된 질의 도중 ‘태양광 설비에 필요한 국토 면적’ 등을 묻자 한 총리는 “한 번도 사전적으로 이걸 질문하겠다고 요지조차 준 적이 없다. 그래놓고 지금 계속 숫자를 이야기하라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무슨 퀴즈대회를 하는 건가. 질의 요지서를 안 줬으니까 며칠 뒤에 보고 드리겠다”라고 언성을 높였다.
국회에서 장관이나 장관 후보자 등이 자신보다 나이가 적은 여성 의원들에게 불성실한 답변 태도를 보여 지적받은 일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5월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는 고민정 의원의 질의에 “의원님 얘기를 들어보겠다”, “질문하면 되지 않나”라고 핵심을 피해 가는 답을 하기도 했고, 강선우 의원이 사과를 요구하자 “마음 불편하신 것에 대해 사과했잖습니까”라고 불쾌감을 표시했다. 당시 김성주 민주당 의원은 “남성 의원이 질의하면 고분고분하고, 여성 의원이 물으면 태도가 바뀐다”고 말했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2020년 국정감사 때 문재인 대통령 캠프 출신인 최창희 공영홈쇼핑 대표로부터 “어이”라는 반말을 듣기도 했다.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4일 오후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대정부 질문을 하고 있다.
한 총리가 일부러 젊은 여성 의원을 겨냥해 ‘면박하는 태도’를 보였는지는 알 수 없다. 김 원내대변인이 거론한 한 의원도 오히려 “딱히 내가 여성 의원이라서 그런 것 같지는 않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거론된 다른 의원은 “김 의원의 말에 많이 공감한다. 의정 활동을 하다 보면 여성 의원이라 무시당하거나 고민하게 되는 일을 겪는 일이 많다. 그런데도 나서서 문제를 제기하기에는 부담스럽다”고 했다.
중장년 남성이 대부분인 여의도에서 국회의원이라는 직업인이 아닌 여성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는 것이다. 한 여성 보좌진은 “이러한 문제 제기조차 남성 의원들이 발언해야 권위를 얻는 상황이 씁쓸하다”고 말했다.
이우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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