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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회·정당

선거 참패 뒤에야 ‘뉴스’가 되는 정당, ‘일촉즉발’ 정의당의 길은?

등록 2023-10-23 18:16수정 2023-10-23 20:35

정치BAR_임재우의 여의도 스밍
21일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 내 고(故) 노회찬 전 대표 묘역에서 열린 정의당 창당 11주년 기념식에서 이정미 대표가 기념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21일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 내 고(故) 노회찬 전 대표 묘역에서 열린 정의당 창당 11주년 기념식에서 이정미 대표가 기념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왜 사퇴 이야기를 함부로 합니까?”(강은미 정의당 의원) “왜 ‘함부로’라는 말을 함부로 합니까?”(류호정 정의당 의원)

지난 13일 국회, 정의당 의원단 회의가 끝난 직후 강은미 의원이 류호정 의원을 쫓아가 강하게 항의했습니다. 정의당 의원 6명이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득표율 1.83%) 뒤 수습방안을 모색하는 이날 회의에서 류 의원이 이정미 대표의 사퇴를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정의당 안에서 ‘제3지대론’을 주장하는 ‘세번째 권력’ 소속 류 의원은 이날 회의에서 “선거 결과를 보니 ‘제3지대 신당 창당’ 말고는 당이 존속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이 대표가 당원들에게 이걸 설득할 수 없다면, 용기 있는 지도부를 새로 구성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함부로’는 “조심하거나 깊이 생각하지 아니하고 마음 내키는 대로 마구”(표준국어대사전)를 뜻하는 부사입니다. 강 의원 쪽에선 벼랑 끝에 몰린 당을 추스를 방안을 논의해야 할 자리에서 ‘대표 사퇴’를 꺼낸 류 의원의 주장이 ‘함부로’였던 것이고, 류 의원 쪽에선 ‘대표 사퇴론’을 가볍게 취급하는 강 의원의 항변이 ‘함부로’였던 셈입니다.

이날의 ‘함부로 논쟁’은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뒤 정의당의 분열상을 드러내는 한 사례입니다. 지난 11일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뒤 열흘, 1%대 성적을 거둔 정의당 내부는 혼돈의 연속이었습니다. 이정미 지도부는 의원단 회의, 시도당위원장 연석회의 등을 연 뒤, 다음달 19일 당대회에서 재창당안을 제출한 이후 거취를 결정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자 당내 일각에서, 특히 ‘제3지대론’을 주장해온 쪽에서 반발이 쏟아졌습니다. 당장 당 지도부 일원이었던 김창인 청년정의당 대표가 이정미 지도부의 퇴진을 주장하며 지난 16일 사퇴했고, 같은 날 김종대·박원석 전 의원이 참여한 ‘대안신당 당원모임’과 장혜영·류호정 의원이 모인 ‘세번째 권력’ 역시 대표 사퇴를 요구하는 입장문을 냈습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사퇴론을 일축했습니다. 한 당직자는 “국민의힘이 심판당하는 선거에서 정의당도 같이 심판받았다. 당은 이미 심리적 분당 상태”라고 자조했습니다.

■ ‘자강론·제3지대론’ 갈등 분출…“심리적 분당 상태”

표면적으로는 이 대표의 선거 패배 책임 문제로 외화되고 있지만, 정의당 내부 갈등의 원인은 보다 근본적입니다. 핵심은 ‘궤멸 위기에 놓인 진보정당이 살아남기 위해 가야 할 길’에 대한 생각이 저마다 다 다르다는 점입니다. 연이은 대통령선거·지방선거 참패 뒤 재창당 작업을 진행 중인 정의당 안에는 크게 세 갈래의 ‘재창당 방법론’이 존재합니다. 지역·당원·노동이라는 전통적 토대 위에 기후변화 등 녹색 이슈로 당의 저변을 넓혀야 한다는 ‘자강론’, 진보정당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나 제3지대에 있는 세력들과 연대해야 한다는 ‘제3지대론’, 진보당을 포함한 기존의 진보세력을 모두 한데 모아야 한다는 ‘진보통합론’이 그 세 가지입니다. 이정미 지도부 등 주류는 ‘자강론’을 주장해왔고, 장혜영·류호정 등 소장파는 ‘제3지대론’을 주장해왔습니다. 과거 ‘통합진보당 사태’의 트라우마 탓인지 당내에서 ‘진보통합론’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소수에 그치고 있습니다.

자강론자와 제3지대론자의 차이는 누구를 통합과 연대의 대상으로 삼느냐에서 가장 단적으로 드러납니다. 자강론자들은 기후변화를 의제로 삼는 녹색당 정도를 ‘파트너’로 여깁니다. 반면 제3지대론자들은 금태섭 전 의원이 꾸린 ‘새로운 선택’, 양향자 의원의 ‘한국의 희망’까지 연대 대상으로 생각합니다. 심지어 제3지대론자들 중 일부는 탈당 가능성이 거론되는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와 유승민 전 의원 역시 통합·연대의 대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거대 양당의 적대적 공생에 반대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힘을 모을 수 있도록 정치적 상상력을 펼쳐야 한다”(세번째 권력 관계자)는 주장입니다.

이렇듯 재창당 노선을 둘러싸고 잠재되어 왔던 양쪽의 갈등이 이번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분출되기 시작한 겁니다. 당내에서는 ‘차라리 잘 됐다’는 반응도 있습니다. 이정미 지도부는 지난해 10월 출범 뒤 1년 동안 전국을 순회하고 노동계·녹색당과의 연대를 모색하는 등 ‘혁신 재창당’ 작업을 진행해왔지만 좀처럼 ‘뉴스’가 되지 못했습니다. 한 당 관계자는 “정치란 결국 발화 권력이고, 자신의 목소리가 유권자들에 가닿느냐의 문제인데 아무런 소음도 내지 못하는 정당이 존재할 이유가 있는가”라며 “그나마 선거에서 진 뒤에 정의당이 뉴스가 되기 시작했다. 이 기회에 어떤 재창당안이 당원과 유권자의 지지를 더 얻을지를 두고 양쪽이 세게 붙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 이정미 지도부, 녹색당과 ‘선거연합정당’ 꾸릴까

양쪽 사이의 갈등은 파국을 피할 수 있을까요. 일단 이정미 지도부가 사활을 걸고 있는 녹색당과의 총선 연대 방안이 ‘분당 시험대’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정미 지도부는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녹색당과 연대·통합 방안을 마련해, 이를 정의당 재창당의 핵심 성과로 삼고자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녹색당은 지난 22일 전국위원회를 열어 2024년 총선 방침을 논의했는데, 이 자리에서 정의당과 ‘선거연합 정당’을 꾸리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고 합니다. 정유현 녹색당 사무처장은 23일 한겨레에 “다른 정당과 총선에서 연합 정당을 추진하기로 총의를 모았다. 정의당도 그 대상 중 하나”라며 “별도의 정당을 꾸려 지역구와 비례대표 후보를 함께 선출하고, 선거 뒤에는 각자의 정당의 돌아가는 방식”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총선용 정당을 꾸려 선거를 치른 뒤 해산시키자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방식이 2020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비례대표 위성정당을 꾸리려는 거대 양당에 강력하게 맞서온 정의당의 입장을 어느 정도 뒤집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진보정당이 현실적으로 지역구 선거에서 승리하기 어려운 정치상황에서, 총선용 연합정당이 사실상 비례대표 위성정당과 별 차이가 없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제3지대론을 주장하는 한 당 관계자는 “녹색당과의 연합이 시너지가 있을지도 불분명한데, 거대정당의 꼼수라며 그토록 반대해온 위성정당까지 만들어야 한다면 정의당의 존재 이유가 사라지는 것”이라고 반발했습니다.

일단 선택지는 이정미 지도부에 주어져 있습니다. 녹색당과 선거연합정당을 꾸리는 방식을 택할 경우 그동안 주장해온 ‘정의당과 녹색당의 연대·통합’에는 일정 정도 성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3지대론자를 비롯한 당내 반발로 당의 원심력이 극대화될 가능성이 큽니다. 비례대표 위성정당에 반대해온 지금까지의 명분과 상반된다는 비판도 부담입니다. 정의당 지도부는 24일 시도당 연석회의를 열어 다시 녹색당과의 연대·연합 방안에 대해 논의할 예정입니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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