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와 김부겸 전 국무총리가 20일 서울 중구 한 음식점에서 오찬을 함께 하기에 앞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김부겸 전 국무총리가 20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나 “이낙연 전 국무총리를 만나고 연동형(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취지를 지켜달라”고 요청했다. 이 전 총리가 신당 창당 준비에 착수하는 등 민주당의 원심력이 커지는 가운데 이 대표를 만난 김 전 총리는 통합과 쇄신을 위해 이 대표가 좀더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을 주문했다.
이 대표와 김 전 총리는 이날 이 대표의 제안으로 서울 중구의 한 식당에서 만나 1시간30분가량 오찬 회동을 했다. 앞서 18일 영화 ‘길위에 김대중’ 시사회에서 만난 지 이틀 만이다. 김 전 총리는 회동 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범민주·범진보 세력 전체를 아울러야 이 어려운 난국을 타개할 수 있는데, 안정적으로 통합과 쇄신을 이끌어갈 수 있도록 이 대표께 가감 없이 (의견을)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이 대표도 “무능하고 한편으로 무책임하기까지 한 윤석열 정권의 역주행과 폭주에 대해 (국민들의) 걱정이 많다. (민주당이) 부족한 것도 많고 해야 할 것도 많은데, 이럴 때일수록 같이 가야 하지 않겠나”라고 화답했다.
두 사람은 이날 사전에 의제를 조율하지 않고 일대일로 만났다. 김 전 총리는 특히 이 대표에게 ‘현행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정당 득표율을 비례 의석에 일부 연동해 민심을 더 정확히 반영하는 제도)를 지켜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권칠승 민주당 수석대변인이 전했다. 이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가 2016년 총선까지 적용된 병립형 비례대표제(정당 득표율로만 비례 의석을 나누는 제도)로 퇴행하려는 기류에 제동을 건 것이다. 권 수석대변인은 “(김 전 총리가) 선거제도와 관련해 현재의 연동형(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다양성과 비례성 등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이니 기본적인 취지는 지켜주는 게 좋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 대표는 김 전 총리에게 현실적인 어려움과 고민을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총리는 이 대표에게 이낙연 전 총리를 만나 대화하라고도 당부했다. 그는 “분열이 있으면 총선에 큰 악영향이 있기 때문에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이낙연 전 총리를 비롯해 많은 분들을 만나 당 통합을 위해 충분한 대화를 나누고 수습 방안도 찾아보기를 바란다”며 “당의 단합과 혁신으로 가는 모든 노력을 이재명 대표가 해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전 총리가 새해 신당 창당을 예고하며 당 외곽에서 민주당을 비판하고 있는데도, 이 대표 쪽이 적극적으로 대화를 시도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이 대표는 “당의 단합과 총선(승리)을 위해 산이든 물이든 건너지 못할 게 없다. 작은 차이를 넘어서 큰길로 함께 간다는 입장”이라고 답했다.
김 전 총리 쪽은 이날 회동 전 이 대표의 협조 요청에 대비해 여러 단계의 시나리오를 고려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 대표는 이날 통합과 쇄신을 위한 김 전 총리의 역할과 관련한 구체적인 제안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날 회동은 “일종의 상견례”라는 게 양쪽의 평가다. 정치권에선 총선을 앞두고 ‘김 전 총리가 어떤 식으로든 역할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김 전 총리는 연말 인사를 위해 21일 경남 양산의 문재인 전 대통령을 찾을 예정인데, 이 자리에서 당의 현 상황을 두고 어떤 대화가 오갈지도 관심이 모인다.
당 안에선 이 대표가 김 전 총리를 비롯해, 오는 28일 만남이 예정된 정세균 전 국무총리 등과 연말까지 통합 행보를 어디까지 선보이느냐에 따라 진정성이 확인될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다만, 이 전 총리 등이 주장하는 ‘통합 비상대책위원회’는 이 대표의 퇴진을 전제로 하고 있어 이들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기는 어려울 수 있다. 이 전 총리는 회동 결과가 전해진 뒤 기자들에게 “실망스럽다. 해오던 일(신당 추진)을 계속할 것”이라면서도 “다만, 민주당에 연말까지 시간을 주겠다는 말은 아직 유효하다”고 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이우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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