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리는 취임식에 참석하기 위해 경찰의 경호를 받으며 들어서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연합뉴스
26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수락 연설은 내년 총선 상대인 더불어민주당을 향한 격문에 가까웠다. 한 위원장은 연설 내내 민주당을 겨냥해 ‘폭주’, ‘군림’, ‘숙주’, ‘특권 정치’, ‘전체주의’ 등의 표현으로 기존 여의도 화법보다 훨씬 더 짙은 적대감을 드러냈다. 한 위원장이 취임 첫날부터 야당을 맹비난하면서 총선까지 대야 관계는 급속히 냉각될 것으로 보인다.
한 위원장은 직접 쓴 4000여자 분량의 수락 연설문 내내 특유의 신랄하고 공격적인 표현으로 민주당을 맹비난했다. 그는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를 싸잡아 “이 대표의 민주당이 운동권 특권 세력과 개딸 전체주의와 결탁해 자기가 살기 위해 나라를 망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운동권 특권’이라는 표현은 일곱차례나 사용했다. 야당인 민주당을 대화와 타협의 상대로 여기는 대신 나라를 망치는 세력으로 규정하며 이념 갈라치기에 나선 셈이다.
그는 민주당에 대한 국민의 인식을 ‘공포’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한 위원장은 “이대로 가면 지금 이재명 민주당의 폭주와 전제를 막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상식적인 사람들이 맞이한 어려운 현실은 우리 모두 공포를 느낄 만하다”며 “상식적인 많은 국민을 대신해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과 그 뒤에 숨어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운동권 특권 세력과 싸울 것이다”라고 했다. 민주당에 공포를 느끼는 사람을 상식적인 국민으로, 그렇지 않은 사람은 비상식적인 국민으로 사실상 편가르기 한 것이다.
한 위원장은 국민의힘의 ‘비전’을 말하면서도 이재명 대표에 대한 ‘비꼼’을 끼워 넣었다. 그는 “상대가, 당대표가 일주일에 세번, 네번씩 중대범죄로 형사재판 받는 초현실적인 민주당인데도 왜 국민의힘이 압도하지 못하는지, 함께 냉정하게 반성하자”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 비난 말고는, 국민의힘이 뭘 ‘반성’해야 하는지는 구체적으로 짚지 않았다.
그는 의원 불체포 특권 포기를 약속하는 사람들만 공천하겠다는 방침을 언급하면서도 “우리는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과 달라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했다. 한 위원장은 법무부 장관 때 이 대표를 ‘잡범’, ‘중대범죄 혐의자’라고 말하기도 했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운동권 얘기를 한 것은 당내 대다수가 동의하는 분위기”라면서도 “다만 검사 대 피고인, 이 구도는 더는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확장성이 없고 기존 지지율에 다 반영돼 있다”고 말했다.
한 위원장이 첫날부터 야당에 거침없는 적대감을 표시하면서 대야 관계는 더욱 얼어붙을 것으로 보인다.
강선우 민주당 대변인은 “어떻게 취임 첫 일성으로 그간의 국정운영 실패, 무능과 무책임에 대한 반성 한마디 없이 제1야당의 대표에 대해 모독과 독설부터 뱉는가”라고 말했다. 민주당 지도부 소속 의원은 “나라를 어떻게 이끌어나갈지, 국민과 청년의 미래, 보수의 가치에 대해 논해도 모자랄 판에 개딸 전체주의와 싸우겠다는 게 말이 되냐”며 “수준 미달”이라고 평했다.
국민의힘에서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한 중진 의원은 “아무리 선거가 있다고 해도 야당과 협의할 건 협의해야 하는데, 우려된다”고 말했다. 다른 중진 의원도 “한 위원장의 말은 우리 진영을 결속하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중도에선 어떻게 볼까 싶다”며 “한 위원장은 기존 정치판을 바꾸기 위해 등판한 것인데, 구태의연한 정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 이우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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