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3당 원내대표회담 결렬 직후 국회의장의 질서유지권이 발동된 30일 밤, 국회 본회의장을 점거 중인 민주당 당직자들이 쇠사슬로 출입문을 잠그고 있다. 박종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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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오 국회의장이 30일 밤 질서유지권을 발동함에 따라 여의도 국회의사당은 일촉즉발의 긴장감에 휩싸였다. 국회경비대 소속 경관들이 의사당을 에워싸고 출입 통제에 나선 가운데 안에선 민주당 의원과 당직자들의 구호와 노래 소리가 새어나왔다.
질서유지권 발동은 한나라당과 민주당, 선진창조모임의 3당 원내대표 회담이 결렬된 직후인 이날 오후 8시40분께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한쪽에선 회담장에서 막 걸어나온 각 당 원내대표들이 회담 결과를 기자들에게 설명하고 있었다. 그 즈음, 갑자기 국회 본관 2층 출입구에 국회경비대 소속 경찰이 40여명 배치돼 출입자 검색을 강화했다.
일순간 국회 본회의장 앞에 줄지어 앉은 민주당 보좌관과 당직자들 사이에 “끝내 질서유지권이 발동됐다”는 말이 돌았다. 잠시 뒤 국회 공보관실은 “김형오 의장이 의사당 전반의 질서 회복을 위해 질서유지권을 발동했다”고 공식 확인했다. 3당 원내대표 회담이 결렬되기 무섭게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의원들에 대한 강제해산 절차에 착수한 것이다. 부산에서 올라온 김 의장은 그 시각, 국회 바깥에 머물며 상황을 ‘원격지휘’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경위들의 ‘작전 개시’가 초읽기에 들어간 본회의장 앞은 이내 당겨진 활시위처럼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소속 의원과 당직자, 보좌진 등 300여명은 “엠비(MB)악법 직권상정 결사반대”라고 쓰인 커다란 현수막 앞에 어깨를 겯고 앉아 “국회를 국민에게”, “국회무시 엠비정권 규탄한다”, “엠비악법 날치기 온몸으로 막아내자” 등의 구호를 외쳤다. 또 ‘아침이슬’, ‘임을 위한 행진곡’ 등을 함께 부르며 결의를 다졌다.
집회 도중 사회자의 권유로 마이크를 잡은 박지원 의원은 “우리는 민주주의를 지키는 정의로운 싸움을 하고 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 이기자”고 말해 큰 박수를 받았다.
민주당은 ‘본회의장 사수’로 목표를 재조정하고, 문방위 회의실 등에 분산돼 있던 인력을 모두 철수시키는 등 본격적인 비상대기 상태에 들어갔다. 또 국회 경위들이 본회의장의 불을 끄고 강제진압에 나서는 상황에 대비해, 그동안의 방침을 바꿔 기자들을 본회의장 안으로 불러들였다.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의원 70여명은 만약의 경우 곧바로 ‘인간띠’를 만들 수 있게끔 각자 허리에 등산용 자일을 단단히 두른 채 바깥의 상황 변화를 주의깊게 살폈다. 또 오전에는 인간띠 잇기 연습에 나서는 한편, 본회의장 입구 한 쪽 벽에 자신의 각오와 결의를 담은 ‘격문’을 써붙였다.
이에 앞서 국회사무처는 이날 오전 질서유지권 발동에 대비해 구체적인 진압 계획을 짜는 한편, 진압 병력과 장비 등에 대한 최종 점검을 마치는 등 출동 대기 상태에 들어갔다.
회담이 결렬된 뒤 여야는 서로 격렬한 ‘성명전’을 주고받으며 이후 벌어질 사태에 대한 명분 쌓기에 나섰다. 한나라당의 김정권 원내 공보부대표는 긴급 현안 브리핑에서 “우리는 양보에 양보를 거듭했음에도 민주당은 모든 법안을 자신들의 ‘재가’를 받아 처리하라고 요구하는, 오만과 독선의 극치를 보여줬다”며 맹렬히 비난했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어 “이 사태의 중심에는 청와대가 있다. 이 모든 책임은 전적으로 이명박 대통령이 져야 할 것”이라며 “우리는 어떤 중대한 결심도 마다하지 않고 앞으로 국회가 제 기능을 되찾게 하기 위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조처를 취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혀둔다”고 말했다. 여야는 이렇게 예정된 정면충돌을 향해 한발한발 다가서고 있었다.
강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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