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신임’ 13일만에 뒤집힌 새누리 의총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퇴장’은 8일 의원총회를 통해 최종 결정됐다. 이 과정에서 의원들에게 ‘유승민 재신임’ 의사를 일일이 제대로 따져묻는 절차는 생략됐다.
이날 오전 9시 국회에서 비공개로 시작된 의총에선 김무성 대표가 가장 먼저 연단에 섰다. 김 대표는 “저는 유 원내대표를 늘 사랑하고 존경해왔고, (그래서) 마음속으로 괴로움도 참 많았다”며 운을 뗐다. 그는 “지금처럼 갈등과 혼란이 계속되면 총선에서 패할 수밖에 없다”며 전날 최고위원회가 의견을 모은 ‘유승민 사퇴 권고’ 결정을 의총에서 표결 없이 추인해 달라고 말했다. 당사자인 유 원내대표는 불참해 ‘최후 진술’은 없었다.
곧바로 비박근혜계 재선 모임을 주도했던 박민식 의원이 “동료를 끌어내리는 자리로 활용된 의총은 아무리 절차를 거쳤다고 해도 제대로 된 민주주의라 할 수 없다”고 맞받았다. 비박계 중진 정두언 의원도 “정말 싸가지 없는 유승민이 그렇게 비참하게 사과하지 않았느냐”며 “지도부가 당원인 원내대표를 보호하기는커녕 ‘사퇴결의안’이라는 이상한 결정을 했다”고 비판했다.
친박근혜계 맏형인 서청원 최고위원이 직접 흐름을 끓었다. 그는 “정치를 하다 보면 책임을 져야 할 때가 있다. 나도 그랬다”며 ‘유승민 책임론’을 정면으로 제기했다. 청와대 정무특보인 김재원 의원은 ‘유승민 정국’의 원인이 된 국회법 개정안의 처리 과정에서 유 원내대표가 당청 간 불협화음을 빚은 과정을 하나씩 짚었다.
비박 일부 “무기명 투표 하자”
친박 “당 깨자는 거냐” 고함
김무성, 표결 않기로 정리
비박계인 김용태 의원과 유 원내대표와 가까운 김세연·김희국·이종훈·유의동 의원 등 7~8명이 직간접적으로 사퇴 찬반에 대한 ‘무기명 투표’를 주장했지만, 다수의 침묵 속에 묻혔다. 박근혜 대통령의 ‘6·25 발언’ 직후 의총이 열렸을 당시, 친박의 ‘유승민 사퇴’ 주장에도 대다수 의원들의 ‘방어’로 유 원내대표가 재신임됐던 것에 견줘 완전히 달라진 분위기였다.
발언자 33명 가운데 대부분은 유 원내대표의 잘잘못을 떠나 “청와대의 보이콧으로 유 원내대표는 업무 수행이 불가능해졌다”는 현실론을 들어 ‘즉각 사퇴’를 주장했다. 비박계 신성범 의원이 “일을 마무리할 시간을 주자”며 ‘추경예산안 처리 후 사퇴’를 중재안으로 제안했지만, 이마저도 거부됐다. 전날 “최고위원회 결정은 후안무치하다”고 강력 성토했던 비박계 중진 이재오 의원은 아예 입을 열지 않았다.
막판에는 계파 간 ‘감정싸움’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유 원내대표와 가까운 이종훈 의원이 “대한민국 민주주의와 관련된 일인데 표결로 결론을 내야 하지 않느냐”고 주장하자, 친박계 함진규 의원이 “식구(원내대변인)는 이야기를 그만하라”며 비꼬았다. “당을 깨자는 것이냐”는 고성도 나왔다. 비박계 황영철 의원은 “동료 의원의 이야기는 들으라”고 맞받아 소리쳤다.
4시간이 지난 오후 1시께, 김 대표가 마무리에 나섰다. 김 대표는 “표결 없이, 오늘 유 원내대표 사퇴가 불가피하다는 데 의견이 모아진 걸로 보겠다”고 말했다. 대부분 의원들이 “예”라고 동의했다. 소수였지만 몇명은 박수도 쳤다. 몇달 전 자신들의 손으로 뽑은 원내대표를 대통령 ‘지시’에, 당이 표결도 없이 내치는 순간이었다.
이날 의총을 두고 ‘새누리당 굴종의 날’로 평가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정치학)는 “대통령 말 한마디에 여당 원내대표가 그만둔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 당대표로서 원내대표를 쫓아낸 김무성 대표에게 실망스럽다”고 했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도 “대통령의 ‘거수기’ 역할에 국한되는 대통령제에서의 여당 위상과 역할에 의문을 갖게 된다”고 비판했다.
서보미 김경욱 기자 spring@hani.co.kr
친박 “당 깨자는 거냐” 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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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새누리당 의원총회 계파별 주요 발언(친박근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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