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가 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한국정신대문제협의회와의 면담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의 발언을 듣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추석 전에 전두환 전 대통령을 예방하기로 했다가 당 안팎의 반발에 부딪히자 계획을 철회했다. 민감한 사안을 당내 지도부와 상의없이 독단적으로 결정해 반발을 자초한 것이어서, 지난 8?27 전당대회 이후 순항해온 ‘추미애호’의 리더십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윤관석 더민주 수석대변인은 8일 브리핑에서 “추미애 대표가 국민 대통합 차원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과의 만남을 추진했으나 적절하지 못하다는 최고위원들의 의견을 존중해 취소했다”고 밝혔다. 추 대표는 오는 12일 서울 연희동의 전 전 대통령 자택을 방문하기로 했다는 사실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지자 이날 오전 11시 긴급 최고위원회를 소집했다. 이미 당 안팎에서 성토가 이어지며 당이 발칵 뒤집힌 뒤였다.
더민주 소속 의원들은 트위터·페이스북 등에서 “대한민국 대법원이 판결한 헌정찬탈, 내란목적 살인범을 전직 대통령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송영길), “인정도 사죄도 하지 않는 자를 어떻게 용서하고 화해하겠다는 것인지”(김현미), “대선(을) 위한 동진이나 국민화합 차원이라면 하필 전 국민의 지탄을 받는 그분이 왜 먼저일까?”(박홍근) 등의 비판을 쏟아냈다.
최고위 회의에서도 우상호 원내대표를 포함해 대부분의 참석자들이 반대 의견을 냈다. 추 대표는 이 자리에서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호남 출신으로 호남을 공략하는 상황에서 영남 출신 대표로서 당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을 고민하다 국민통합 차원에서 전 전 대통령 예방을 생각하게 됐다”는 취지로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미 내란죄로 유죄 판결을 받아 전직 대통령으로서 예우가 박탈된 전 전 대통령을 방문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지적과 함께, 추 대표가 사전에 최고위에 이 사실을 알리지 않은 것에 대한 비판이 동시에 나왔다. 광주 출신인 양향자 최고위원은 회의 뒤 기자들과 만나 “위안부 피해자 문제와 똑같다. ‘용서는 피해자의 몫’이라고 의견을 냈다”고 말했다. 김병관 최고위원도 “개인의 일정이라고 해도 당 대표이니 (방문의 의미가) 중요하다. (당내) 의견을 묻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반나절 만에 마무리된 이날의 해프닝은 동전의 양면 같은 ‘추미애 리더십’의 약점을 단적으로 드러냈다. 추 대표는 소신에 따른 추진력 덕분에 ‘추다르크’로 불리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돌발적인 독자 행동에 따른 ‘추미애 리스크’가 한계로 평가돼왔다. 2010년 환경노동위원장 시절 당론을 어기고 노동법 개정안을 일방 처리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더민주의 한 수도권 의원은 “전 전 대통령을 만나 통합을 이야기하려면 전 전 대통령이 5?18 묘역에 가서 석고대죄를 한다든가 하는 수순이 필요하다. 정치적 과정에 대한 정교한 고민이 전제됐어야 한다”며 “이번 일이 대선을 이끌 지도부에 단 한 차례의 예방주사로 끝나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야당의 지지층과 호남이 받은 충격을 고려하면 후유증이 쉽게 씻길 것 같지 않다. 총선 전후 ‘호남’의 마음을 구해온 문재인 전 대표 쪽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문 전 대표의 대변인격인 김경수 의원은 통화에서 “우리와 일체 교감이 없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추석 때 우리가 던지는 메시지가 전두환 예방이어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엄지원 하어영 송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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