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전 유엔(UN) 사무총장이 17일 오후 전남 진도군 임회면 남동리 팽목항에서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들을 만나 위로하고 있다. 진도/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7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과 전남 진도 팽목항을 잇따라 찾았다. 하루 만에 영·호남을 가로지르는 ‘지역통합’ 행보에 더해, ‘노무현’과 ‘세월호’로 상징되는 진보 진영까지 끌어안겠다는 ‘사회통합’의 의미를 부여한 일정이었다. 하지만 가는 곳마다 손팻말을 든 이들의 항의를 받는 등 범여권 후보로서 녹록지 않은 현실을 마주하기도 했다.
반 전 총장은 이날 오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한 뒤 부인 유순택씨와 함께 노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씨를 예방했다. 그는 권씨에게 “노 대통령께서 저를 유엔 사무총장으로 진출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주셨다”면서 “귀국했으니 권 여사님을 가까이 모시고 노 전 대통령의 유업도 기리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반 전 총장은 이어 “유엔에서 10년 동안 강행군을 했다. 뉴욕에서는 어려우면서도 한편으로는 편했는데, 한국에 오니 어려우면서 어렵다”고 털어놓으며 좌중의 웃음을 끌어내기도 했다. 권씨는 “반 총장님은 우리나라에 귀중한 분이니 건강 유의하시길 바란다”고 화답했다.
반 전 총장은 이어 기자들과 만나 “노 대통령께서 ‘정치교체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던 것도 우리 가슴에 아직도 깊이 남아있다. 정권을 잡기 위해서 사생결단으로 죽기살기식으로 정권만 잡겠다 이런 행태는 지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신의 ‘정치교체’ 구호와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이상이 다르지 않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날 봉하마을에서는 노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서거 이후 2년여간 봉하마을을 찾지 않고 추모 영상메시지도 거절하는 등의 처신에 항의하며 ‘배은망덕 기름장어’ 등의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이에 반 전 총장 쪽은 입장자료를 내어 “유엔 사무총장은 개별 회원국 국가원수들의 취임식이나 장례 행사 등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오랜 관례를 깨고 장의위원회에 (고문으로) 참여했다”고 적극적으로 해명했다.
반 전 총장은 봉하마을 방문 뒤 300여㎞를 달려 오후 늦게 전남 진도 팽목항분향소를 찾아 분향한 뒤 세월호추모관 등을 둘러봤다. 반 전 총장은 분향소 방명록에 “국민의 생명보호는 국가의 의무입니다. 희생자 여러분들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 여러분들의 고통을 같이 나누겠습니다”라고 적었다. 이어 희생자 주검을 수습하지 못한 유가족들을 만나 “저 자신이 정부에 있지 않지만 미력이나마 옆에서 (선체) 인양이 조속한 시일 내 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팽목항에서도 반 전 총장을 지지하는 이들과, 그에 비판적인 시민들이 모여 펼침막과 손팻말을 들고 각각 응원과 비판을 하며 맞서는 풍경이 펼쳐졌다. 반 전 총장 쪽의 한 참모가 충돌을 피하려고 시위대와 취재진을 다른 곳으로 유인하는 ‘연막작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촉박한 일정 탓에 반 전 총장은 이날 팽목항 방문 이후 예정된 언론 간담회를 취소했다.
김해 진도/하어영 최상원 기자
hah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