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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회·정당

바른정당 대선후보, 유승민의 정치 궤적

등록 2017-03-28 17:11수정 2017-04-06 11:57

유승민은 누구
경제·복지는 ‘개혁보수, 안보는 ‘강경보수’
‘이회창 키드’서 박근혜 비서실장 거쳐 ‘반박근혜’ 아이콘으로
소신과 고집…능력·자질에 비해 낮은 대중적 흡인력 과제
28일 바른정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된 유승민(59) 의원은 ‘개혁 보수’를 표방하는 정치인이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부패하고 낡은 보수를 개혁하겠다”며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을 탈당해 바른정당을 만들었다. 그는 정치적 좌표를 ‘안보는 보수, 경제는 개혁’에 둔다. ‘보수’와 ‘개혁’이라는 상충하는 가치는 그의 인생 궤적에서 그대로 투영된다.

유승민 의원이 28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내 올림픽홀에서 열린 바른정당 제19대 대통령후보자 선출대회에서 정견발표를 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유승민 의원이 28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내 올림픽홀에서 열린 바른정당 제19대 대통령후보자 선출대회에서 정견발표를 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 TK 엘리트 유 의원은 1958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판사 출신 유수호 전 의원이다. 형은 서울남부지법원장을 지낸 유승정 변호사다. 그는 경북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위스콘신대학에서 경제학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경북 출신 부모 밑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성장과정은 보수가 체질화되는 환경이었다.

그는 경제학자의 길을 걸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연구위원으로 재직하면서 재벌정책을 전공했다. 그는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문제는 경제에서 발생하지만 해법은 정치에 있다’는 걸 절감하고 사회를 직접 바꿔보고자 정치에 뛰어들었다. 2000년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에 의해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장에 발탁되며 정계에 입문했다. 보수진영 브레인 역할을 맡으며 2004년 17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다. 총선 직후 <문화방송> ‘100분토론’에 출연해 유시민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과 경제문제 해법을 두고 논쟁한 영상은 유튜브에서 누적 조회수 120만회를 넘어서며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이듬해 10·26 보궐선거에서 비례대표직을 버리고 대구 동구을에 출마해 노무현 전 대통령 측근인 이강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을 꺾고 지역구 의원으로 당선됐다. 이후 18·19·20대까지 4선 국회의원을 하고 있다.

■ ‘영남 사림’ 전통 그는 소신과 고집이 있고 ‘할 말은 하는’ 스타일이다. 케이디아이 연구위원 시절인 1998년 방한한 미국 빌 클린턴 대통령이 국내 각계각층 시민들을 만나는 행사에 그가 미 대사관 요청으로 참석했다. 그는 클린턴 대통령에게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에 돈 좀 빌려줬다지만 우리 현실에 맞지 않는 조건들을 내건다. 너무 간섭하지 말라”며 쓴소리를 했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이 일로 정부에 찍혔다고 한다.

2014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그가 박근혜 정부의 외교정책을 비판하며 “이거 청와대 얼라들이 하는 거냐”라고 비판한 말은 유명하다. 이런 기질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듯하다. 유수호 전 의원은 판사 시절인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 후보한테 유리하게 개표 조작을 지휘한 혐의로 기소된 윤동수 울산시장에게 징역형을 선고했다. 그는 1973년 판사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유승민 의원 역시 새누리당 원내대표 시절인 2015년 공무원연금개혁 협상 과정에서 정부 시행령에 국회 감독 권한을 강화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박근혜 대통령은 유 의원을 향해 “배신의 정치”라고 했고, 친박계에 의해 사실상 원내대표에서 쫓겨났다. 이 일로 친박계는 그에게 ‘배신자’ 프레임을 씌우고 있다. 그는 지난 1월 바른정당 경북도당 창당대회에서 “우리 조상 영남 사림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옳은 말 하고, 귀양 가고 사약 마시고도 할 말 다 했던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 개혁 DNA 그는 시장경제를 중시하는 경제학자이자 17년간 보수정당에 몸담은 정치인이지만 경제·복지에서는 진보적 정책을 흡수하는 데 유연하다. 유학시절이 그의 가치관에 일정부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월간중앙> 2016년 1월호 인터뷰에서 “위스콘신은 굉장히 리버럴한 전통이 강하다. 베트남 반전 운동도 제일 격렬하게 했고 대학 내 주류 판매도 미국에서 가장 먼저 시작했다”고 회고했다. 그가 현재 대선공약으로 내놓은 재벌개혁 정책은 케이디아이 연구원 시절과 입장이 달라진 게 없다고 한다. 여기에 그는 또 정치를 하면서 복지나 빈곤, 노동 문제에 성찰을 많이 했다고 한다. 2015년 4월 새누리당 원내대표 교섭단체 연설에서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며 박근혜 전 대통령 정책을 비판한 연설은 그를 소개할 때 빼놓지 않는 문구가 됐다.

반면 안보에서는 전통 보수층 입장을 견지한다. 국회 국방위원장을 하며 일찌감치 한반도 사드 배치를 강하게 주장했고 대북정책에서도 ‘선 압박-후 대화’ 입장이다. ‘햇볕정책’을 주창해온 민주당·국민의당과 가장 날을 세우는 대목도 안보·통일 분야다.

그는 원조 친박이었다. 2005년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비서실장에 발탁됐고,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 박근혜 캠프의 정책메시지 총괄단장을 맡았다. 하지만 얼마 못가 박근혜 쪽과 서서히 멀어졌다. 유 의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보수에 대한 시각이 근본적으로 달랐던 것이다. 그는 ‘박근혜를 비판한 죄’로 친박계에 의해 원내대표에서도 밀려났고 20대 총선에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으로 출마해 힘들게 4선 의원이 됐다.

■ 정체성 딜레마 정치권에서는 유승민 의원에 대해 “대선후보들을 놓고보면 유승민이 자질은 최고인데 말이야…”, “능력에 비해 지지율이 왜 안 나오는지 모르겠다”라는 평가가 많이 나온다. 이것은 그의 딜레마다. 해박한 지식과 논리로 무장한 보기드문 정치인이지만 대중을 끌어당기는 흡인력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뜻이다. 그는 ‘보수 재건’ 프레임으로 당내 경선에서 승리했다. 그 사이 바른정당과 유승민 개인 지지율은 하락했다. 그의 예상대로 탄핵 여파가 지나가면 대중이 그를 알아줄 것인지, 아니면 그가 대중들이 원하는 메시지를 찾아내서 경쟁력 있는 대선 후보로서 거듭날 것인지, 그는 시험무대에 서 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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