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가 9월1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이틀째 인사청문위원회에서 답변하고 있다.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이 국회에 계류된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사법부의 새 수장 선임은 각 정당간의 이해관계로 미룰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신속한 처리를 촉구했다. 김 후보자의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채택을 거부하고 있는 자유한국당과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의당 등 야권을 향해 청와대가 직접 나선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김 후보자 인준안 처리와 관련해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대독한 입장문을 통해 “현 대법원장의 임기는 오는 24일 끝난다”며 “인준 권한을 가진 국회가 사정을 두루 살펴 사법부 수장 공백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지 않도록 해주시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 문 대통령은 “새로운 대법원장의 선임 절차가 끝나지 않으면 사법부 수장 공백사태라는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다”며 “3권 분립에 대한 존중의 마음으로 사법부 수장을 상대로 하는 인준 절차에 예우와 품위가 지켜지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동안 국회와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노력했지만 부족했던 것 같아 발걸음이 더 무겁다”며 “유엔(UN) 총회를 마치고 돌아오면 각 당 대표를 모시고 국가안보와 현안문제 해결을 위해 논의하고 협력을 구하겠다”고 약속했다. 양승태 현 대법원장의 임기는 24일까지이지만 18일 문 대통령이 유엔(UN)총회 참석차 해외순방에 나서는 만큼 이날 국회를 향해 미리 당부의 메시지를 낸 것이다.
이날 문재인 대통령이 입장문을 낸 것은 “국민의당, 특히 안철수 대표 쪽을 움직일 수 있도록 청와대가 직접 나서달라”는 여당 원내지도부의 요청에 따른 것으로 전해진다.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인준안 부결에 결정적 구실을 했던 국민의당은 대법원장 인준에서도 결정권을 쥐고 있다. 자유한국당이 김명수 후보자 인준에 반대하며 청문보고서 채택조차 거부하는 상황에서 국민의당만 인준에 동의해준다면 정세균 국회의장이 ‘3권 분립’이라는 명분을 쥐고 본회의에 직권상정할 가능성이 열린다.
다만 그러려면 국민의당의 확실한 동참이 전제돼야 하는 만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주말 동안 중진 의원들을 중심으로 국민의당 달래기에 총력전을 펼치는 중이다. 국민의당이 김 후보자 인준 협조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운 추미애 민주당 대표의 ‘사과’에 대해서도 추 대표 쪽은 “분위기만 만들어진다면 유연하게 고려할 것”이라고 전했다. 김 후보자의 인준이 부결되면 정권에 큰 타격을 안길 수 있는 만큼 ‘김명수 살리기’에 당·청이 모두 발벗고 나선 것이다.
일단 국민의당은 문 대통령의 입장문 발표에 대해선 “사법부 공백사태를 가정하여 국회를 압박하지 말라”(김철근 대변인)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지만, 대통령이 직접 협조를 구한 것을 일방적으로 무시하기는 힘들기 때문에 부담이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의 한 중진의원은 “국민의당 안에서도 (김이수에 이어) 연타를 날리려는 안철수계와 두 번은 위험하다고 판단하는 호남계가 엇갈리는 모양새”라며 “게다가 사법부 수장인 대법원장을 낙마시키는 건 법원의 반발이라는 후폭풍이 거셀 수 있어 고민이 클 것”이라고 전했다. 자유한국당은 “문 대통령이 입만 열면 되뇌이던 여론에 맞서가며 김 후보자에게 목을 매는 것은 결국 사법권력을 장악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하며 기존의 부정적인 입장을 재확인했다.
엄지원 김규남 정유경 기자
umkij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