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재정 민주당 의원, 하태경 바른정당 의원, 김영호 민주당 의원.
“쇼 미 더 머니!”(show me the money)
국정감사와 예산·법안 처리가 끝나고 난 국회에선, 각 의원실 구성원들이 ‘혼연일체’가 되는 ‘쩐의 전쟁’이 벌어진다. 의정활동의 기본이 되는 ‘후원금 리그’가 시작되는 것이다. 게다가 선거가 있는 올해는 후원금 모금 한도가 2배(1억5000만원→3억원)로 늘어나는 ‘대목’이다. 후원금을 모을 수 있는 날이 1주일 정도 남은 요즘, 각 의원실은 ‘모금함’을 채우기 위해 전력질주하고 있다. 하지만 일가친척과 지인에게 손을 벌리거나, 불특정 다수를 향한 단체 문자메시지 전송, 의정보고서 한편에 의원실 계좌번호를 적어놓는 따위의 기존 방식으론 한도액을 채우는 건 고사하고, 손가락만 빨 수도 있다. 지역적·정치적 기반이 약한 초선·비례 의원들을 중심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유튜브·팟캐스트를 활용한 새로운 후원금 모금 방식이 여의도를 휩쓸고 있다. 의원들 본인이 직접 나서 오디션 프로그램 <쇼 미 더 머니>의 무대에 오른 래퍼들처럼 불특정 다수의 시민을 향해 자신의 ‘매력’을 적극 호소하는 모습이다.
■ ‘후원금 완판남’이 바꾼 풍경 올해 여의도 후원금 모금의 ‘트렌드 세터’는 더불어민주당의 초선 박주민 의원이다. ‘세월호 변호사’, ‘길 위의 변호사’로 널리 알려진 그는 지난해 20대 국회에 입성한 뒤에도 ‘추레하고 초췌한’ 모습을 이어가 ‘거지갑’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후원금 모금에도 ‘거지갑’ 콘셉트를 반영했다. 지난 7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돈 달라는 남자, 박주민입니다’라는 제목으로 7분14초 분량의 영상을 올렸다. “돈 좀 달라고 부탁 좀 드리려고 영상을 찍었다”는 그는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의정활동에 돈이 많이 든다”며 모금을 호소했다. 영상을 올린 지 40시간 만에 2960여명이 참여해 2억3000만원이 들어와 3억원 한도가 다 찼다. 의원실에서는 ‘완판’ 비결로 인건비, 사무실 임대료 등 경상비 내역은 물론 1년간의 의정활동 실적과 이를 위한 비용 내역 등을 ‘깨알보고’한 것이 후원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보고 있다.
‘아이폰’이 스마트폰 시장을 열어젖힌 것처럼 박 의원의 ‘혁신적인’ 모금 방식은 의원들을 화면으로 불러냈다. 유튜브, 페이스북을 이용한 읍소 영상 전략이 대세가 된 것이다. 하태경 바른정당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카드뉴스를 올렸다. 그는 ‘올 한해 동안 120회 이상 토론회 개최’, ‘입법 발의와 정부 정책을 이끄는 등의 성과’ 등을 나열하며 “이 끝없는 용기, 투지, 패기, 또 지치지 않는 체력은 어디서 나올까요. 바로 후원금입니다”라고 강조하며 “딱 10만원만 하태경에게 보내달라”고 호소했다.
김영호 민주당 의원은 지난 8일 자신의 페이스북 영상에서 ‘장애인을 위한 특수학교 설립 의무화법’, ‘억울한 상인 보호법’ 등을 대표발의했다며 올해 의정활동을 세세히 알렸고, “2018년에는 토크콘서트 개최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법안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유급 입법보조원을 채용해 입법활동을 강화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그는 “2016년 후원금, 꼴찌에서 13번째”, “(올 1~5월) 후원금, 꼴찌에서 7번째” 등을 고백하며 적극 후원을 호소했다. 김정우 민주당 의원도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해 경실련 선정 국정감사 우수 국회의원 20인에 뽑혔다”, “이명박 정권 시절 수출입은행에서 다스에 특혜 대출 의혹이 있다는 것을 제기했고 진실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고 홍보한 뒤, 후원 방법을 자세히 소개했다. 모금 풍경은 조금씩 달라졌지만, 결국 제일 쉽고 효율적인 방식은 일단 ‘들이대’는 것이다. 이재정 민주당 의원실은 요즘 인기를 끄는 ‘김생민의 영수증’을 패러디한 ‘2017 의정활동 영수증’ 영상을 통해 “이재정 의원실의 후원 잔고는 ‘항상’ 비어 있습니다. 부담 갖지 마시고 함께해주세요”라고 호소했다.
■ 후원금도 ‘협업’이 대세 대중음악이든 음식이든 최근 트렌드는 ‘컬래버레이션’(공동작업)이다. 절절한 조합은 시너지를 높인다. 후원금 모금도 마찬가지다. 민주당의 험지인 부산에서 당선된 ‘독수리 5형제’(김영춘·박재호·최인호·전재수·김해영)는 막내 김해영 의원 도우미를 자처하고 있다. 박재호 의원은 김 의원의 후원금 모금 영상에 찬조 출연해 “열심히 하는 부산의 미래의 호프, 김해영이 후원금을 부탁합니다”라고 호소했고, 전재수 의원도 자신의 트위터에 영상을 올려 “우리 막둥이 김해영 의원을 도와주세요”라고 했다. ‘완판남’ 박주민 의원은 금태섭 의원실에서 자체 제작하는 <금태섭티브이(TV)>에 출연해 “금태섭 의원이 금수저·귀공자 이미지로 알려져 있는데 손가락 빨고 살고 있다고 한다”며 힘을 보탰다.
‘컬래버레이션’은 동영상뿐 아니라 팟캐스트에서도 이어졌다. 지난 7일 팟캐스트 ‘정봉주의 전국구’에 출연한 최민희 전 의원은 “후원금이 꽉 찰 거 같은데 안 찬 의외의 인물들”이라며 민주당 홍익표·조응천·강훈식 의원을 소개했다. 민주당의 서울시당 팟캐스트 ‘서당캐’에서는 박주민 의원이 출연해 김영호·강훈식 의원의 후원 계좌번호를 또박또박 읽어내려갔다. 민주당 한 의원실의 보좌진은 “연말 후원금 시즌에는 의원은 물론 보좌진도 지연·혈연·학연을 끌어모아 총동원 체제를 가동하게 된다”고 털어놨다.
■ 트렌드에 동참하고 싶어도… 의원들의 후원금 모집활동이 활발한 민주당과 달리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정중동’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당 바깥에서 밀려드는 적폐청산 물결에 당 소속 일부 의원이 ‘부패’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안으로는 당무감사 후폭풍으로 당협위원회 관련 비리 제보가 빗발친다. 살얼음 위를 걷듯 조심스러운 야당 처지에, 후원금 모금은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언급 자체가 부담스럽다. 한 중견 의원 보좌관은 “(지역에서는) 민원성 후원금의 성격을 띠는 경우도 있어서 그렇지 않겠느냐”고 귀띔했다. 다만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역구별로 물밑에서는 후원금을 독려하는 움직임이 분주하다는 것이 다수 보좌관들의 전언이다. 지역구 텃밭이 뿌리 깊고, 인맥 네트워크를 통해 모금하는 ‘전통적’인 방식의 후원금 모금에 익숙한 자유한국당에서 ‘스타’로 올해 상반기 대중 후원금을 쓸어담은 이는 이른바 ‘애국시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김진태 의원과 한국노총 사무총장 출신인 김성태 의원 등이다. 김진태 의원의 경우 친박 성향의 지지층이 두텁다. 신임 원내대표로 취임한 김성태 의원실 관계자는 “김 의원은 탈당·복당이나 원내대표 당선 등과는 상관없이 후원의 등락 폭이 크지 않다”며 “노동계 출신에겐 50만원 이하의 소액 후원금이 더 많고, 꾸준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국민의당 의원들도 불특정 다수를 향한 홍보보다는 인간관계를 통한 ‘알음알음식’ 후원금 모금에 집중하고 있다. 한 의원실 관계자는 “후원금은 정확히 당 지지율에 비례한다고 볼 수 있다”며 “특별히 심상정 의원처럼 개인적인 유명세가 없으면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연말정산 때 10만원을 돌려받을 수 있는 ‘개미 후원금’의 경우 직장인이나 노동조합에서 많이 하는데 노조는 정책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 이해관계가 맞는 쪽에 집중하고, 직장인들은 젊은 ‘스타’ 의원 몇 명에게 집중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다른 의원실 관계자는 “이벤트성으로 뭔가를 하려면 본인만의 캐릭터와 스토리가 있어야 가능한데,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의원들은 특별할 게 없다”며 “문자메시지를 보내거나 지인들에게 연락하는 정도”라고 말했다.
김규남 정유경 송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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