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으로부터 1억 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자유한국당 최경환 의원(왼쪽)과 불법 정치자금 및 뇌물수수 의혹을 받고 있는 자유한국당 이우현 의원이 3일 오전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각각 들어서고 있다. 두 사람은 4일 새벽 구속됐다. 연합뉴스
‘친박계 원톱’으로 박근혜 정부 최대 실세로 군림했던 자유한국당 최경환 의원(4선·경북 경산)이 4일 새벽 구속된 것은 정치세력으로서의 친박이 사실상 역사 속으로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오는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친박 청산”을 선언했던 자유한국당은 반응을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동료 의원의 구속을 받아들였다.
최 의원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때 박근혜 캠프 종합상황실장을, 2012년 대선 때는 박근혜 후보 비서실장을 맡은 원조 친박이다. 박근혜 정부 첫해인 2013년 5월 새누리당 원내대표에 선출돼 북방한계선(NLL) 논란,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등 정쟁을 주도하며 당시 문재인 의원 등 야당을 궁지로 몰아세웠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대신해 김무성·유승민 의원 등 당내 비박계를 ‘진압’하는 것도 그의 주요 임무였다. 2014년 7월엔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취임했다. 자신의 성을 딴 ‘초이노믹스’라는 경기부양책을 통해 박근혜 정부 중반기 경제 정책을 책임지며 정치인생 최전성기를 구가했지만, 역설적으로 이 시기에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1억원을 받은 혐의가 불거지며 나락으로 떨어지게 됐다. 최 의원은 20대 총선을 앞둔 2016년 1월 경제부총리에서 물러나 당으로 복귀해 친박 패권 공천 논란의 중심이 되는 걸 마다하지 않았다. ‘진박 투어’를 하며 티케이(대구·경북) 지역 초·재선 의원들의 공천에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구속 소식이 전해진 4일, ‘최경환 키드’들은 하루종일 조용했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드라이브에 맞서 ‘정치보복대책특별위원회’까지 만든 자유한국당도 마찬가지였다. 대통령 탄핵 뒤 최 의원과 함께 서울 삼성동 박근혜 전 대통령 집 앞을 지켰던 박대출·민경욱 의원 등 최 의원과 가깝던 이들은 이날 방송통신위원회의 <한국방송> 보궐이사 추천에는 ‘문재인 정권의 만행’이라는 성명을 내며 강하게 반발하면서도, 최 의원을 위해서는 단 한마디도 보태지 않았다. 옛 친박계에서 주도적 구실을 했던 한 의원은 “우리는 이미 폐족이 되지 않았느냐”며 각자도생 상황을 전했다.
최 의원과 함께 같은 당 이우현 의원(재선·경기 용인갑)이 공천헌금 등의 명목으로 10억여원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됐지만, ‘정치 보복’이나 ‘야당 탄압’이라는 흔한 대변인 논평조차 나오지 않았다. 이 의원은 친박계 맏형인 서청원 의원 최측근이다. “최경환·서청원 자동소멸”을 선언했던 홍준표 대표, 박근혜 정부 시절 김무성 의원과 가까운 비박계로 핍박 받았던 김성태 원내대표는 당 소속 의원 2명이 동시에 구속되는 초유의 상황에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당 관계자는 “지도부로서는 자신들의 손으로 직접 하기 떨떠름했던 친박 청산을 문재인 정권의 검찰이 대신 마무리 해준 것”이라고 했다.
김남일 정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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