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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회·정당

‘선거제도 개혁’ 불쏘시개 자임한 평화당의 번민

등록 2018-08-29 15:13수정 2018-08-29 21:43

평화당, 570개 시민단체가 꾸린 정치개혁공동행동과 ‘선거제도 개혁’ 협약
연동형 비례대표제·예산 동결과 국회의원 정수 확대 등 패키지 합의
평화당 이어 다음달 5일 정의당도 협약 참여…거대 양당 동참 여부 관건
정동영 대표 등 민주평화당 의원들과 정치개혁공동행동에 소속된 시민사회 관계자들이 2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선거제도 개혁 간담회를 열고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등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정동영 대표 등 민주평화당 의원들과 정치개혁공동행동에 소속된 시민사회 관계자들이 2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선거제도 개혁 간담회를 열고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등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지난 5일 ‘정동영 체제’를 개시한 민주평화당이 연일 선거제도 개혁을 외치고 있습니다. 정동영 대표가 전당대회에서 취임 일성으로 “선거제도 개혁에 앞장서겠다”고 약속한 뒤 문재인 대통령-5당 원내대표 회동에서도, 이해찬 민주당 신임대표와의 만남에서도, 평화당은 기회가 날 때마다 “선거제도 개혁”을 최우선 의제로 내밀고 있습니다. 최근 한달간의 행보를 보면 그동안 선거제도 개혁 이슈화에 앞장서온 정의당보다 더욱 적극적입니다. 당의 명운을 선거제도 개혁에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참여연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비례민주주의연대·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등 570개 시민단체가 꾸린 정치개혁공동행동이 후반기 정기국회에서 선거제도 개혁을 실현하기 위해 정치권을 압박하고 나선 가운데, 이들과 가장 먼저 ‘선거제도 개혁’을 약속한 정당도 평화당입니다. 평화당과 공동행동은 2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간담회를 열고 선거제도 개혁과 관련한 공동협약문에 조인했습니다. 공동협약문에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과 이를 위해 예산 증액 없이 국회의원을 360명으로 증원하는 방안, 청소년 참정권 확대 등의 내용이 담겼습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민주평화당과 정치개혁공동행동은 승자독식의 현행 선거제도가 민심을 왜곡하고 정치에 대한 냉소와 혐오를 재생산한다는 점에서 전면적 개혁이 필요하다는 점에 대하여 의견을 함께 한다.

△민주평화당과 정치개혁공동행동은 현행 소선거구제와 병립형 비례대표제에 대한 대안으로, 정당득표율에 비례하여 국회 전체 의석이 배분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근간으로 하는 선거제도 개혁이 필요하다는 점에 대하여 의견을 함께 한다.

△민주평화당과 정치개혁공동행동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기 위하여 국회예산을 동결한다는 전제하에서 총 국회의원수를 360명 수준으로 증원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에 공감한다.

△민주평화당과 정치개혁공동행동은 정치 장벽을 깨고 누구나 정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선거권.피선거권연령 인하와 청소년 참정권 확대, 유권자 표현의 자유 확대, 여성대표성 확대, 정당설립요건 완화 등의 정치개혁과제에도 문제의식을 함께 한다는 점을 확인한다.

△민주평화당과 정치개혁공동행동은 2018년 하반기 정기국회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비롯한 선거제도 개혁 과제들이 성취될 수 있도록 가장 높은 수준에서 공동의 행보와 실천을 함께 할 것을 결의한다.

선거제도 개혁은 정치권의 해묵은 과제지만 이를 위해 구성되는 정치개혁특위는 늘 큰 소득없이 마무리되곤 합니다. 기득권 양당의 정치인들에겐 ‘현상 유지’가 아쉬울 것 없고, 일반 국민들은 선거제도 개혁의 필요성을 피부로 느끼기 쉽지 않아섭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선거제도 개혁을 공약했고, 그동안 선거제도 개혁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보수정당도 6·13지방선거 이후 선거제도 개혁에 우호적으로 돌아선 만큼 20대 후반기 국회가 미뤄온 숙제를 해결할 적기라는 게 시민사회와 정치권의 판단입니다.

하지만 과제는 아직 남았습니다. 제1당인 더불어민주당을 설득하는 일입니다. 민주당은 비례성을 강화하는 선거제도 개혁에 원론적으로 동의하지만 실제 개혁에 나서는 데는 미온적인 편입니다. 적어도 차기 총선(2020년)에서는 크게 승리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굳이 현행 제도를 고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설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국민들을 설득하는 동시에 민주당을 어떻게 회유하고 압박해 선거제도 개혁에 적극 나서도록 하는가가, 정치 개혁을 주장하는 이들의 과제입니다. 공동협약식을 체결하는 이날 간담회에서는 이런 평화당과 시민사회의 고민이 솔직하게 드러났습니다. 아래 박주현 대변인의 발언에선 정당으로서 국민적 주목을 받기 어려운 의제를 밀고 나가는 데 대한 부담이 읽힙니다.

△박주현 평화당 대변인

평화당은 매일매일 선거제도 개혁과 관련한 활동을 하고 메시지를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국민 입장에선 선거제도 개혁, 하면 ‘국회의원들이 자기들 뽑히는 문제를 놓고 다투는 것’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제2민주화의 가장 중요한 고리임에도 국민적 압박과 관심을 끌어내기는 쉽지 않다. 솔직히 우리 당은 정당 입장에선 손해보는 장사를 하고 있다. 민생과 관련해 민주당이나 한국당과 각을 세우는 게 편한 정치일 텐데 본질에 천착하느라 힘들다.

진보·개혁 진영이 선거제도 개혁을 고리로 보수정당과 손을 잡고 여당을 고립시키는 데 대한 부담도 따릅니다. 국민 여론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동력이 생기지 않는 데다, 교섭단체가 아닌 평화당이나 정의당에는 민주당을 압박할 협상의 무기도 없습니다. 정동영 대표 등 평화당 의원들은 현 상황에 대한 어려움을 다음과 같이 풀어냈습니다.

△정동영 평화당 대표

국회 안에서 (선거제도 개혁 논의가) 탄력을 받으려면 평화와 정의의 연대가 구성돼야 한다. (중략) 제일 중요한 사람이 현재는 이해찬 대표다. 그제 만났을 때도 개헌과 선거제도 개혁을 연동하는 이야기를 꺼냈다. ‘분리할 수도 있다 했지만 쉽지 않을 것’이라며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정치개혁공동행동에서 선거제도 개혁과 개헌에 대한 입장을 (민주당에) 명확히 선을 그어줄 필요가 있다. (중략) 지금으로선 최대 우군이 문재인 대통령이다. 타이밍이 중요하다.

△천정배 평화당 의원

문재인 대통령이 ‘선거제도 개편은 여야 합의로 결정되는 것이고 대통령이 주도할 사안은 아니다’라고 단서를 붙여서 말했다. 대통령이 공약을 지키는 차원에서 자신이 소속돼있고 이끌고 있는 정당을 설득하지 않고 야당 탓, 국회 탓으로 돌린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힘센 사람이 누군가. 대통령이 아닌가. 대통령을 어떻게 압박하느냐가 어려운 부분이다.

△최경환 평화당 최고위원

확실히 힘으로 되는 것이다. 당의 교섭력을 확보하기 위한 교섭단체 회복이 가장 중요하다. 여당이고 야당이고 이해관계 때문에 소선거구제 뒤로 숨어버릴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교섭력 회복에 모든 것을 거는 것이 중요하다.

△박주현 평화당 대변인

교섭단체도 깨져서 레버리지(협상의 지렛대)가 없어졌다. 결국 민주당을 어떻게 압박하느냐가 관건인데, 민주당을 압박하자니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경제정책 등으로) 각을 세운 상황에서 민주당을 선거제도로 압박하는 각을 어떻게 세울지 모양이 잘 안 나온다. 시민사회에서 (민주당의) 이해찬 대표든 홍영표 원내대표든, 또는 청와대가 됐든 실질적으로 압박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앞장을 서기는 했으나, 앞장서서 끌어갈 힘은 없는 정당의 시름이 읽히는 대목입니다. 시민사회에서는 이날 평화당에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을 설득할 전략을 알려달라”고 촉구했습니다만, 현재로선 뾰족한 전략을 세우지 못한 듯 보입니다. 의석수 14석의 소수정당은 과연 후반기 국회에서 선거제도 개혁의 불쏘시개가 될 수 있을까요?

이처럼 평화당이 원내에서 거대 양당을 압박하는 동안, 정치개혁공동행동은 장외에서 대국민 여론전과 여야 정치권 설득을 이어가기로 했습니다.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는 “오늘 평화당 면담을 시작으로 다음 주에 정의당, 이후 바른미래당 면담을 추진한다. 민주당과 자유한국당도 당연히 면담을 요청해서 시민사회의 요구를 전달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정치개혁공동행동은 또 10월부터 서명운동을 시작하는 동시에 각 지역의 국회의원 사무실과 정당 사무실 앞에서 집중 캠페인을 이어가기로 했습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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