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당정협의회가 30일 오전 국회에서 열려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찍은 뒤 자리로 향하고 있다. 당에서는 이해찬 대표, 홍영표 원내대표, 김태년 정책위의장이, 정부에서는 이낙연 국무총리, 김동연 경제부총리,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이 각각 참석했다. 청와대에서는 장하성 정책실장, 한병도 정무수석, 정태호 일자리 수석, 윤종원 경제수석, 김수현 사회수석 등이 참석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문재인 대통령이 규제혁신 1호로 ‘인터넷전문은행 은산분리 규제’를 꼽은 뒤 더불어민주당이 앞장서 견인한 ‘인터넷전문은행특례법’이 여당 내 반발로 8월 임시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했다. 지난달 30일 국회 교섭단체 3당의 원내대표가 본회의 직전 ‘8월 국회 회기 내 처리 불가’ 입장을 밝히기까지 이 법을 둘러싸고 여당 내에서 첨예한 논쟁이 펼쳐졌다. 문재인 정부 들어 비교적 조용했던 여당 의원총회에서 고성이 오갈 정도로 찬반 의견도 강하게 맞섰다. 결국 인터넷전문은행 규제 논란은 예기치 않게 여당 의원들이 ‘문재인 정부’와 청와대에 공개적으로 반기를 든 첫 사례로 기록됐다.
인터넷전문은행을 둘러싼 여당 내부 진통은 출발부터 예고돼 있었다.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달 8일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과의 3당 원내대표 회동에서 산업자본의 인터넷전문은행 지분 보유 한도를 늘리는 내용의 특례법을 8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는 데 합의했다. 하루 앞선 7일 문 대통령이 “은산분리라는 대원칙을 지키면서 인터넷전문은행이 운신할 수 있는 폭을 넓혀줘야 한다”고 밝힌 데 따른 여당 지도부의 후속 행보 차원이었다. 하지만 은산분리 원칙 유지라는 당론과 어긋난데다, 20대 전반기 국회에서 인터넷전문은행에 우려를 표명하던 민주당 내 관련 상임위원들의 주장과도 배치되는 것이어서, 당내 토론도 없이 야당과 먼저 합의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소득주도성장’ 기조에 대한 야권의 맹폭이 이어지자 ‘혁신성장’의 성과를 내야 한다는 여당 지도부의 조급증이 작동한 것으로 풀이됐다.
당내 소장파 의원들의 요청으로 지난달 20일 열린 민주당의 ‘정책 의원총회(의총)’는 이런 반발 여론을 어르고 합의를 모아내기 위한 자리였지만 역부족이었다. 소관 상임위인 정무위원회에서 활동하는 김병욱·최운열 의원 등이 찬성 의견을 냈지만 역시 정무위 위원인 이학영·제윤경 의원 등이 △협상 전략 부재 △규제 완화 실효성 의문 등을 집중적으로 문제삼았다. 이날 합의가 모이지 않자 지도부는 29일 재차 의총을 열었지만 이 자리에서도 찬반양론이 격렬하게 대립하자 당론 결정 없이 산회했다.
은산분리 찬반 논란의 전면에 앞장선 것은 일부 정무위 위원들이지만, 논쟁을 지켜본 여당 의원들의 반응은 대개 엇비슷했다. “청와대와 지도부가 전선을 잘못 쳤다”는 것이다. 의총 뒤 여러 의원들은 “청와대가 ‘마이너’한 걸 주요 이슈로 만들었다” “고용지표, 가계지표가 최악인데 은산분리 규제 논쟁이 과연 거기에 얼마나 기여할 이슈인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청와대가 하려는 일이니 여당으로서 반대할 순 없지만 납득이 잘 안 된다”는 게 중론이었다. 결국 청와대와 여당 지도부가 중립지대에 선 의원들을 설득할 만한 명분도 만들어내지 못한 것이다.
여당의 소장파 의원들이 반기를 들어 청와대의 정책기조를 저지하자, 일각에선 정책마다 ‘당-청 갈등’으로 이어지며 지지율을 까먹었던 참여정부 시절을 재연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여당 의원들 대부분은 오히려 이런 논쟁이 건강한 당청관계를 방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초선의원은 “만약 (반대 의견을 무시하고) 그냥 넘어갔으면 논쟁은 더욱 커지고 지지층의 비판은 더욱 거세졌을 것”이라며 “민주당이 갖고 있는 민주정당의 건강성을 확인해준 것”이라고 말했다.
여당 지도부는 총수가 있는 대기업집단의 인터넷전문은행 진입규제 장치를 확실히 마련해 정기국회에서 다시 당 내부 논의에 부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당에선 이번 논란을 반면교사 삼아 청와대와 정부가 여당을 ‘거수기’로 취급하려는 유혹에서 먼저 벗어나는 게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일 열린 당·정·청 전원회의에서 상임위별 당정회의를 정례화한 것도 이런 견해차를 좁히려는 취지다. 한 중진의원은 “여당은 청와대발 입법에 나서는 경우가 많은데 청와대와 정부가 의회를 경시하고 협조만 받으려는 자세는 바꿔야 한다”며 “(당정청이 모두) 이번에 좋은 경험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엄지원 김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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