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화제의 키워드이기도 한 ‘워라밸’은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Work & life Balance)의 줄임말로,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한다. 여기서 삶은 가정과 휴식, 취미를 비롯해 개인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가리킨다. 게티이미지.
지난 해 11월 뉴질랜드 국회 본회의장 의장석에 앉아 회의 사회를 보던 트레버 맬러드 신임 국회의장의 품에는 생후 3개월 된 동료 의원의 아기가 안겨 있었다. 아기가 칭얼대자 맬러드 의장은 미소를 띄며 아이를 얼렀다. 국회를 가족친화적인 분위기로 만들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한 실천이었다. 아기의 엄마인 윌로우-진 프라임 노동당 의원은 이날 본회의장에서 아이에게 젖을 먹이기도 했다. 우리나라 통계청이 발표한 ‘2017 사회조사 결과’를 보면, ‘일과 가정생활 중 어느 게 우선인가’라는 질문에 ‘가정이 우선’이라는 응답은 13.9%로 2015년 조사 11.9%에 견줘 증가한 반면, ‘일이 우선’이라는 응답은 43.1%로 2015년 53.7%보다 크게 감소했다. ‘일과 가정의 조화’,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을 추구하는 가치가 상승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변화 이슈를 주도하는 ‘헌법기관’으로, 또 국민을 위해 분주하게 일해야 하는 ‘공복’이기도 한 국회의원 ‘워킹맘’, ‘워킹대디’의 ‘워라밸’은 어떨까. 더불어민주당 의원 4인4색 ‘육아전쟁기’를 들여다봤다.
뉴질랜드 의회에서 노동당 소속 트레버 맬러드 국회의장은 2017년 11월8일 저녁 열린 본회의 때 동료의원의 젖먹이 딸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어르며 사회를 봐 화제가 됐다. 1뉴스 나우 화면 갈무리.
■ 친정엄마 ‘독박육아’ 이재정, ‘아이’에게도 ‘일터’에도 죄책감
“그럼 네가 키워라.”
이재정(44·비례대표) 의원이 친정 어머니에게서 가장 듣기 무서워하는 말이다. 대구에 살던 친정 어머니는 이 의원의 경기도 안양집에 올라와 5살 손자를 도맡아 키운다. 이 의원은 늘 ‘을’일 수밖에 없다. 일흔을 넘긴 어머니에게 주중에 아이 유치원 등하원은 물론 이 의원 부부가 귀가하는 저녁 시간까지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말에는 이 의원과 공연 칼럼니스트 일을 하는 남편이 아이를 보고, 때때로 시댁에서 아이를 맡아주기도 한다.
‘맞벌이 워킹맘’ 이 의원은 아이에게도 늘 미안하다. 주말 일과를 묻는 유치원 선생님에게 아이는 “주말에 엄마 봤어요”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지난주 “유치원에서 ㅇㅇ이(이 의원의 아들)만 작은 옷 입고 다니는 거 알아?”라는 어머니의 말엔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이것저것 챙기겠다며 한번에 옷을 사준 것이 반년도 더 지났고, 그새 아이는 한뼘 자랐다. 입던 옷은 ‘7부 옷’이 됐다.
지난달에는 미안함이 ‘절정’에 달한 사건도 터졌다. 아이가 유난히 엄마 곁을 파고들던 밤, 급히 챙겨야 하는 중요한 일이 터졌다. 아이는 자정을 넘겨도 말똥말똥했고, 전화는 계속 걸려왔다. 분주한 마음에, 보채는 아이에게 “오늘따라 왜 이러니. 자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해!”라고 짜증을 냈다. 통화를 끝내니 어느덧 한 시간이 흐른 뒤였고, 아이는 발치에서 잠들어 있었다. 정신 없을 때 아이가 와서 “ㅇㅇ이는 엄마가 좋아…. ㅇㅇ이가 불쌍해”라고 말했던 것이 뒤늦게 떠올랐다. 이 의원은 그날 밤 펑펑 울었다.
미안한 마음을 감당하기 어려워 페이스북에 글을 썼다.
“난 당시 일에 대한 조급증과 친정엄마에 대한 짜증까지 아이에게 다 쏟아버렸다. 아이에게 그 시간이 얼마나 큰 상처일까. 내 삶에만 열중하며 (아이를) 할퀸 상처가 비단 이번뿐이었을까. 미안하고 또 미안한 마음에 가슴에 통증이 가시질 않는다. 몹쓸 엄마. 몹쓸 엄마.”
이 의원은 육아를 하면서 가장 힘든 점은 “폭풍같은 시간이 지나갔는데 아이 돌봄도, 일에도 둘 다 만족스럽지 못하고 양쪽 모두에 ‘죄책감’이 생길 때”라고 꼽았다.
육아는 어머니에게 의존한다지만, 집안 살림은 그의 몫이다. 이 의원은 “우리집 세탁기는 밤에만 돌아가 아래층 이웃에 늘 미안하다”고 했다. 주말 마트 쇼핑조차 여의치 않은 그의 도우미는 바로 ‘온라인 쇼핑’이다. 눈코뜰새 없었던 대선과 지방선거를 지난해부터 연거푸 치르고 한숨 돌리나 했더니, 지난 7월 경기 안양동안을 지역위원장에 이어 최근엔 당대변인까지 맡아 더욱 바빠진 이 의원의 ‘가정 보급’을 책임지는 든든한 지원군이다. “휴지, 생수, 아이가 먹을 우유와 치즈, 옷 등이 언제 떨어질 지, 언제 사야할 지 수시로 생각하게 되는 게 살림이더라.” 이 의원은 “본회의장에서 막간을 이용해 온라인 반찬 쇼핑, 아이 옷 쇼핑을 하고 있는 사진이 찍히더라도 좀 봐달라”며 ‘농담’을 던졌다.
이재정 의원이 지난 6·13지방선거 때 5살배기 아들과 함께 경기도 안양의 한 투표소에서 인증샷을 찍은 모습. 이재정 의원 제공
■ ‘6살 아빠’ 김영호, ‘3수’만에 국회 어린이집 보낸 게 “가장 기쁜 일”
친정어머니가 함께인 이 의원과 달리, 남성 의원들 가정에선 아내가 ‘독박육아’를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늦깎이 아빠’로 6살 아들을 둔 김영호(51·서울 서대문을) 민주당 의원 집은 프리랜서 방송인인 아내가 육아를 오롯이 전담한다. 아들은 국회의원이 되기 전 태어났지만, “일찍 좀 들어와 달라. 공동육아에 참여해달라”던 아내의 호소에 김 의원은 응답하지 못했다. 총선에 대비해 원외위원장으로서 지역기반을 탄탄히 다져야 했던 시기였기에, 미안한 마음은 고스란히 숙제로 남았다. 20대 국회 입성 뒤에도 사무부총장을 맡아 아침 일찍 출근했고, 저녁엔 지역구 모임, 국회 포럼, 연구단체 모임 등 일정이 겹겹이 잡히다보니 자정 넘겨 귀가가 일상이었다. 그 탓이었을까. 아이는 2~3살 무렵부터, 아빠에게 잘 다가오지 않았다. 김 의원은 그러다 한번 크게 ‘깨달은’ 일이 있었다고 했다.
“지역구에서 어린이집 원장들과 간담회를 한 적이 있었는데, ‘의원님은 가정에서 양성평등을 실천하고 계시냐’고 묻더라. ‘아이들이 집에서 엄마는 설거지·청소·빨래하는 모습만 보고, 아빠는 가사일을 안하는 모습을 보면 우리가 하는 양성평등 교육은 다 헛일이 된다’는 이야기였다.”
그 뒤로는 시간을 쪼개 내어 집안일을 하면서 “양성평등 실천을 위해 노력중”이다. 지난해엔 ‘3전 4기’ 총선 도전 뒤 의원에 당선된 것만큼이나, “몹시 기쁜 일”도 생겼다. 국회 어린이집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두 차례나 신청을 넣었지만, 정원이 꽉 찼거나 순번에 밀려 연거푸 탈락한 뒤 ‘3수만의 성공’이었다.
“아들에게 많은 사랑을 주고 싶다”는 김 의원은 아들에겐 자신의 어린 시절과는 다른 아버지를 보여주고 싶다. “아버지는 정치를 하면서 3남1녀인 우리들의 초중고 입학식과 졸업식에 한번도 오신 적이 없어 몹시 서운했다. 나는 아버지와 반대로 자상하고 아이와 스킨십을 많이 하는 아빠가 되고 싶다.” 김 의원의 아버지는 6선 국회의원을 지낸 고 김상현 의원이다. 지난 주말에는 일산 호수공원 등 다른 지역이 아닌 김 의원의 지역구인 동네에서 아들과 함께 처음으로 자전거를 탔다. 김 의원은 “아이가 엄마한테 ‘아빠랑 같이 동네에서 자전거 타서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고 하더라”며 기뻐했다. 김 의원은 올 겨울에는 아들과 함께 처음으로 눈썰매장을 찾을 계획이다.
김영호 의원이 지난해 아들과 함께 한 놀이공원에서 자동차 놀이기구를 타고 있는 모습. 김영호 의원 제공
■ ‘신생아 아빠’ 박주민, 밤 시간 육아 “부모가 되는 성장통의 시간”
지난 6월말 딸을 낳은 박주민(45·서울 은평갑) 의원은 아내가 육아휴직중이다. 아내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상근 변호사다. 지난달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으로 선출된 박 의원의 어깨는 한층 무거워졌지만, 최대한 일찍 귀가하려 애쓴다. ‘애보러 일찍 간다’고 하면 지역에서도, 국회에서도 ‘양해’를 해주는 편이다. “열심히 일을 하던 짝꿍이 출산 후 육아휴직을 하고 독박육아를 하면서 나보다 몇 배는 더 고생하고 있다. 밤 시간대에는 아이를 내가 전담하려 하고 있다.” 박 의원은 자신의 아내를 ‘짝꿍’이라고 부른다.
‘부모가 되는 성장통’의 시간을 박 의원도 거치고 있다. 밤 시간 육아는 쉽지 않다. 돌 되기 전 신생아는 2~3시간마다 깬다. 그때마다 수유를 하고, 수유 뒤에는 등을 토닥이며 트림을 시킨다. 그러고나서 다시 재운다. 잠든 줄 알고 내려놓으면 등이 바닥에 닿자마자 깨어 우는 이른바 ‘등센서’가 작동한다. 반복하다 보면 뜬 눈으로 아침을 맞기 일쑤다. 그는 “하루 3~4시간 자는 것 같다”며 “그것도 통으로 자는 것이 아니라 쪼개서 자는 것”이라고 털어놨다. 그래도 “일과 중 휴식시간을 틈타 쪽잠을 잘 자는 편이라 괜찮다”고 덧붙였다. 요즘 그의 얼굴은 더욱 초췌한 듯 보였다.
지역구 행사는 물론, 지방 강연 요청을 자주 받는 박 의원은 최근 빽빽했던 주말 일정을 평균 8개에서 절반 가량으로 줄였다. “주말에도 나가고,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 달라진 게 뭐가 있냐”는, 독박육아에 지친 아내의 한마디 때문이었다. 귀가해 아내와 함께 저녁을 먹고, 아이 목욕도 시키면서 ‘일과 가정의 균형’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그의 하루는 오늘도 빠르게 흘러간다.
박주민 의원이 자신의 집에서 지난 6월말 태어난 딸을 안고 있는 모습. 박주민 의원 제공
■ ‘다둥이 아빠’ 김해영, 아내를 3선 ‘상임위원장님’으로 예우
민주당 최연소 국회의원이자 지난달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으로 선출된 김해영(41·부산 연제) 의원은 9살 딸, 7살 아들, 2살 딸을 둔 ‘다둥이 아빠’다. 김 의원은 아내를 “상임위원장님”이라고 부르며 받든다. 국회 상임위원장은 3선 중진의원이 맡는데, 아이 1명당 1선으로 간주한다는 농담이다.
김 의원 부부는 결혼하면서부터 아이를 세 명 낳고 싶어 이름까지 미리 다 지어놨다. 김 의원의 아내는 지난 2015년 두번째 육아휴직 끝에 ‘복직이냐, 사직이냐’의 선택의 기로에 서서 결국 일을 그만뒀다. 지난해 4월13일 막내 딸이 태어났고, 서울에서 그가 의정활동을 하는 동안 부산에서 세 아이 양육은 고스란히 아내 몫이 됐다. 그는 “아내에게 늘 미안하다”고 했다.
김 의원은 육아에 적극 참여해 온 젊은 아빠였다. 사법연수원 노동법학회 회장 출신 변호사의 ‘통상 코스’대로 서울에 있는 민주노총 법률원에서 변호사 시보를 하지 않고, 문재인 대통령이 몸담았던 법무법인 부산에서 변호사 시보를 하게 된 것도 첫째 딸이 너무 어려 부산을 떠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둘째 아들이 태어나서도 돌까지 매일 밤 육아를 도맡았고, 세살이 될 때까지 매일 책을 같이 읽어줬다. 두 살 된 막내 딸은 한참 예쁠 때인데 자주 못봐서 아쉽다.
김 의원은 금요일 오후면 부산으로 내려간다. 주말 지역 일정을 챙기면서도, “일요일 오후 2시~7시 사이엔 최대한 집에서 아이들과 놀아주고, 아내에게 휴식을 주는 시간을 지키려 한다”는 그다. 아이들을 베개와 함께 자신의 배위에 차례로 눕히는 ‘햄버거놀이’도 하고, 아이들을 뱅글뱅글 돌려주는 ‘인간놀이터’도 된다. “주말에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러 나가면 동네 남편들이 ‘김 의원도 쓰레기 버리러 나오는데 당신은 왜 안 하냐’고 지청구를 듣는다고 한다.” 김 의원이 활짝 웃었다.
김해영 의원이 지난 5월 부산 자택에서 가족들과 함께 사진을 찍은 모습. 김해영 의원 제공
■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한 법안 발의도
‘워킹맘, 워킹대디’ 국회의원들은 ‘본업’인 법안 발의에도 본인의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내용들을 담았다. 지난달 태풍 ‘솔릭’이 한반도를 덮칠 당시 어린이집, 유치원 등이 긴급 휴원했을 때, 이재정 의원은 영유아 자녀를 둔 보좌진들과 함께 아이를 맡길 데가 없어 ‘멘붕’에 빠졌다. 그 뒤 이 의원은 긴급 휴업조치가 이뤄졌을 때 맞벌이 부부 등이 사업주의 눈치를 보지 않고 긴급하게 유급휴가를 쓸 수 있도록 하는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일·가정양립지원법)을 발의했다. 김해영 의원도 근로자들이 육아휴직을 마친 후 직장에 복귀했을 때 한직으로 발령받거나 ‘희망퇴직 대상자’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은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일·가정양립지원법을 발의했다. 김영호 의원은 보육교사 1명이 돌볼 수 있는 영유아 수를 하향조정하는 ‘영유아보육법 개정안’, 폭염·혹한시 어린이집·유치원 등의 냉난방비와 가스비를 감면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 등 영유아와 어린이들을 위한 법안을 다수 발의했다. 지난 13일부터 국회의원 사상 처음으로 45일간의 공식 출산휴가에 들어간 신보라 자유한국당 의원은 “일·가정 양립을 위해 의원은 정기적 수유가 필요한 24개월 이하의 자녀와 함께 국회 본회의장에 출입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박주민 의원은 “아이를 낳아보니 육아는 맞벌이 부부가 감당하기엔 쉽지 않은 문제라는 걸 알겠더라”며 “그런 부담을 덜어주는 투자를 국가가 하지 않으면 저출산은 극복되기 어려운만큼 육아를 하고 있는 분들과 함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작업을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