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공사(한전)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등 산업통상자원부 산하기관 직원들이 가지도 않은 출장을 다녀왔다고 속이는 등의 방식으로 눈먼 돈을 챙겨온 것으로 드러났다. 직원들이 함께 출장을 다녀온 것으로 속여 떼로 출장비를 받거나, 혼자서 350여차례에 걸친 가짜 보고로 출장비를 챙기는 등 ‘조직적 일탈’로 의심되는 정황이 곳곳에 나타난다.
이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9일 산업부와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이들 부처의 32개 산하기관 직원들이 2008년부터 10년 동안 거짓 출장보고로 출장비를 타냈다가 적발된 사례는 7980건(총액 6억9789만원)에 이르렀다. 출장비 부정 수령은 특히 한전과 한수원에서 압도적으로 많았다. 한전의 일부 직원들은 3064차례에 걸쳐 1억2644만원을 타냈고, 한수원에선 1744차례에 걸쳐 1억1986만원을 타냈다. 한전의 경우 올해 들어서도 1088건의 사례가 적발되는 등 최근까지 거짓 출장보고를 통해 출장비를 타낸 사례가 많았다. 금액 자체가 크진 않지만 내부제보 시스템인 ‘레드휘슬’ 등을 통해 수면 위로 드러난 경우만 취합된 것이어서 실제론 규모가 훨씬 클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산업부로부터 경고받은 사례를 보면, 2014년 한전의 한 팀에서 근무하던 임직원 4명은 업무 협의차 1박2일 부산에 다녀오겠다고 함께 출장신청을 해 출장비를 받았지만 실제론 다녀오지 않고 경남 양산의 토건업체 사장으로부터 식사·노래방 접대 등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부는 “공공기관 직원으로서 품위를 손상하고 명예를 훼손한 것으로 판단”했지만 이들은 법인카드 사용액과 출장비 등 111여만원을 반납하고 주의 조처를 받았을 뿐이다. 또 한수원에서는 임직원들이 출장비를 신청해 경조사비 등으로 사용한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전력시설을 관리하는 한전케이디엔(KDN) 직원들도 828차례에 걸쳐 총 1억2507만원의 부정 출장비를 타냈다. 한전케이디엔의 한 직원은 178차례에 걸쳐 본인과 부하직원 4명의 출장비를 타냈는데 5576만원을 타낸 이들은 회식비, 경조사비 등에 돈을 쓴 것으로 확인됐지만 감봉 1개월의 처분을 받았다. 경기도의 한 지사에서 근무하던 직원은 무려 359차례에 걸쳐 1564만원을 타냈다가 결국 꼬리가 밟혀 2016년 해임되기도 했다. 허위출장비를 챙겨 징계를 받은 한전케이디엔의 일부 직원들이 출장비 사용을 위해 팀 차원에서 개인통장·현금카드·비밀번호 등을 공유하며 관리한 것을 보면 이러한 행태가 조직적으로 이뤄졌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에 대해 이 의원은 “정부 산하기관의 직원들이 관리가 소홀한 틈을 타 조직적·만성적인 해이를 이어왔다. 드러난 것은 ‘빙산의 일각’으로 보이는 만큼 좀더 철저한 사전 관리와 사후 징계가 뒤따르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엄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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