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숨진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 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씨(왼쪽)가 24일 오전 국회로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대위원장을 찾아와 ‘위험의 외주화’를 방지하는 이른바 ‘김용균법’(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처리를 호소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크리스마스이브인 24일 국회를 찾은 고 김용균(24)씨 어머니 김미숙(50)씨는 연신 고개를 숙였다.
검은색 패딩을 입고 두 손을 꼭 모은 어머니는 각 당 대표들을 찾아다니면서 “우리 용균이와 같이 위험에 노출된 아이들을 살려달라”고 호소했다. 이날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소위에서 ‘위험의 외주화’ 방지법으로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심사가 이뤄지는 날이었다. 김씨는 “분향소에서 기다리려니 답답해서 직접 법안심사 과정을 지켜보려고 왔다”고 말했다.
■ “우리 용균이를, 동료들을 살려주길 간곡히 부탁한다”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숨진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 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씨가 24일 오전 국회로 정의당 이정미 대표를 찾아와 ‘위험의 외주화’를 방지하는 이른바 ‘김용균법’(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처리를 호소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이날 오전 9시20분 김씨의 어머니 등 유가족과 이태의 시민대책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정의당 대표실이었다. 이정미 대표의 손을 꼭 잡은 어머니는 울음을 간신히 삼키며 말을 이어나갔다.
“이 일을 겪으면서 내가 몰랐던 세상이 많이 있구나, 사회의 어두운 면을 많이 알게 됐다.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만 살 수 있는 그런 나라, 없는 사람들의 인권은 무시되고 사람이 제대로 살 수 없게끔 법이 정해져 있다. 우리는 사람이 아닌가? 우리도 따뜻한 가슴 가진 사람인데 왜 그런 취급 당해야 하는지, 나라가 왜 그렇게 만들어졌는지 정말 이해가 안 된다. 우리도 권리를 찾고 살고 싶다. 그리고 어린 동료들, 용균이 같은 동료들이 정말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되면 좋겠다. 우리 아들은 죽었지만, 본인이 죽으면서 떳떳하게 뭔가 했다는 의미 부여를 해주고 싶다. 국민 여러분도 그렇고 의원들도 그렇고 우리 용균이를 다시 살려주시길 바란다. 우리 동료들을 살려주시길 바란다.”
이정미 대표는 ‘사과’의 말을 전했다. 이 대표는 “정의당도 너무 죄송하다. 2년 전에 법안을 내놓고, 통과시키지 못해 죄송하다. 이번 12월에는 꼭 통과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어머니 김씨를 만나 “어머님이 말한 대로 아드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하겠다는 게 당의 공식적인 입장이다. 오는 26일 정부와 협의해 가능한 한 빨리 법 개정을 해서 아드님의 뜻이, 아드님의 죽음의 의미가 잘 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다”며 ‘김용균법’ 처리 의지를 내비쳤다.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숨진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 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씨가 24일 오전 국회로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를 찾아와 ‘위험의 외주화’를 방지하는 이른바 ‘김용균법’(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처리를 호소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 어머니 김씨, 환노위 찾아 직접 법안 처리 호소
어머니 김씨는 이날 이해찬 대표를 만나기 전인 오전 9시45분께는 ‘위험의 외주화’ 방지법 심사가 열리는 국회 6층 회의실을 직접 찾기도 했다. 어머니는 임이자 고용노동소위원회 위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이달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처리를 당부했다.
“이번에 ‘용균이 법’이 제대로 만들어져서 통과돼야 한다고 본다. 남아 있는 우리 아이들이 안전하게 일할 환경을 만들어 그들을 다 살리고 싶다. 저처럼 비극을 겪게 하고 싶지 않다. 아이들을 잃는 것은 부모에게 세상을 잃는 것과 같다.”(어머니 김씨)
“소위원장 맡은 사람으로서 이번에 김용균씨 사건에 대해 매우 비통하게 생각한다. 이번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법안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다 챙기겠다.”(임이자 의원)
어머니 김씨의 곁에 있던 이태의 위원장이 “어머님과 같이 오늘 안 되면 올해 (법안 처리가) 안 되는 것으로 알겠다”며 이날 처리를 강조했지만, 임 위원장은 사실상 법안 처리가 어렵다는 입장을 표했다. 임이자 의원은 “오늘 해결 안 되면 안 되는 건 절대 아니다. 기간을 못 박기보다 내용을 측면에서 하나하나 검토하고 있다. 국회의원도 사람인지라 한꺼번에 다 처리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 바른미래당-자유한국당 만나 참아왔던 눈물 쏟아내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가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말하는 도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결국 어머니 김씨는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참아왔던 눈물을 쏟아냈다. 손학규 대표가 “어머니께서 아드님 잃은 슬픔을 딛고 다시는 우리 아들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고자 발 벗고 입법에 나설 것”이라고 말하자 어머니 김씨는 고개를 숙이고 울먹이기 시작했다. 김씨는 손 대표의 말이 끝날 때까지 왼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들지 못했다. 손 대표가 “정부가 제출한 ‘위험의 외주화’를 막기 위한 산업안전보건법 전면개정안에 동의한다”면서도 ”다만 정부입법안이 방대하고, 그걸 오늘 내일 바로 처리한다는 건 무리다. 전면적 개정은 다음 임시국회 또는 2월에 처리할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하자 숨진 김씨의 이모 등 유가족의 표정이 굳어지기도 했다. 자유한국당에 이어 바른미래당 역시 이날 정부가 지난달 제출한 산업안전보건법 전면개정안 처리가 어렵다는 점을 시사한 것이다.
어머니 김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손 대표를 만난 뒤 힘겹게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나러 발걸음을 옮겼다. 김병준 위원장은 “성탄절 하루 앞둔 크리스마스이브에 이런 말씀 나누게 되니까 더욱 기가 막힌 상황이다. 20대 초반의 바로 제 주변 사람을 잃어본 적 있어 그 아픔이 어떤 건지 느낄 수 있다”며 “우리 사회가 안전과 관련해 생명의 고귀함을 알아야 하는데 정치권이 그러지 못한 부분이 있다. 이 부분은 여야가 없다고 얘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오늘 주신 말씀 잘 수용해서 전체적으로 (사회의) 안전성 높이는 일에 매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어머님과 이모님에게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그러자 어머니 김씨는 단호하게 답했다. “말로 하는 게 위로가 안 된다. 정말 위로는 사회가 바뀌어서 남아 있는 사람들 목숨 지키는 게 저한테 위로되는 일이다.” 어머니는 이날 국회에 남아 ‘용균이 법’이 제대로 처리되는지 끝까지 지켜보겠다고 했다.
서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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