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쪽이 2016년 작성한 ‘부당노동행위 관련 언론보도 대응’에는 ‘노동부 조사 대응방안’으로 “언론상 보 도된 노조 탈퇴서 전달 및 탈퇴 종용 사실에 대해 전면 부인”하라는 지침이 제시됐다.
한화그룹의 방위산업 계열사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옛 한화테크윈·이하 한화에어로)의 ‘노동조합 파괴’ 실상을 담은 문건이 공개됐다. 이 문건에는 복수노조 사업장인 한화에어로가 노사교섭 상대로 회사에 우호적인 기업별노조를 세우기 위해 산업별노조인 금속노조를 고사시키려 차별·이간·왕따책 등을 동원한 계획 등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다.
29일 <한겨레>는 ‘금속지회 현황 분석’, ‘차기 교섭대표노조 지위 유지 방안’, ‘부당노동행위 관련 언론보도 대응안’, ‘현장관리자 우군화 방안’, ‘리스크 및 현안 보고체계’ 등 한화에어로의 대외비 문건을 이정미 정의당 의원을 통해 확보했다. 이는 2017년 금속노조가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회사 관계자 22명을 고발한 뒤 회사를 압수수색한 고용노동부 창원지청이 확보한 문건 116개 가운데 일부다.
■금속노조 고사 전략 2016년 3월29일 작성된 ‘금속지회 현황 분석’ 문건을 보면, 사쪽은 “금속노조 탈퇴 유도를 통해 기업노조의 교섭대표노조 지위 확보에 총력”을 다해야 한다며 3개월 동안 금속노조 조합원 100명(사무직 56명, 생산직 44명)을 줄이는 목표를 세웠다. 목표 실현을 위해 부서마다 ‘금속노조 탈퇴율’을 계산해 부서장 인사평가 실적에 반영했다.
회사는 또 금속노조를 약화시키기 위해 “핵심업무는 비조합원·기업노조 중심, 주변 업무는 금속노조 대상으로 업무를 조정”하라고 지침을 내렸다. 그러면서 금속노조원에게 “경제적 타격과 심리적 압박을 주고, 평가·급여·승진 등에서 금속조합원들의 비금속조합원 동기들과 확연한 격차를 유도”하라고 부서장들에게 주문했다. 비금속노조 직원에게는 “고과 우대, 연수·교육 우선 선정” 등 우대책을 제시하도록 했다.
금속노조 조합원들 사이 분열 조장 지침도 하달했다. “소모임 내 금속조합원 중 접촉 가능한 인물을 발굴해 계파 분열을 유도”하라고 주문했으며, 노조 고사 프로그램이 “안정적으로 가동되기 위해 경제적 지원이 절실”하다며 1억4천여만원의 예산을 요구하기도 했다. △교육·해외출장·해외연수 △사내 육성 프로그램 가동 등에서 금속(노조) 사원은 배제하라는 지침도 내려졌다.
■기업노조 위상강화 전략…‘마음관리’로 우대 회사 쪽은 금속노조 약화와 함께 기업노조를 교섭상대로 세우기 위해 “전사 수준에서 기업노조 확대정책을 추진”했다. 또 “(현) 2기 집행부의 현안 대응능력 미흡”하다고 낮게 평가하면서 전임인 “1기 집행부 활동을 촉진하고, 1기 중심인물의 집행부 활동을 개별 설득해 집행부나 대의원 등 적극 활동 유도”하라는 전략을 제시했다.
이를 실천하는 방법의 하나가 “전임 집행부 등 ‘마음관리’”였다. 전임 기업노조 집행부 핵심 인물 6명을 나열하고 이들에 대해 △상반기 평가 시 고과 우대(금속노조 견제 역할에 대한 회사 보은 차원) △소속 부서장에게 지속적 격려 당부 △부서 내 오피니언 리더 인력으로 활용 등으로 ‘마음관리’를 하라는 내용이었다.
■노동부 조사와 언론보도 대비도 철저 회사의 노조탄압이 2015년 말부터 언론에 보도되고, 이듬해 금속노조가 경남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하고 나서자, 회사 쪽은 ‘부당노동행위 관련 언론보도 대응’ 문건을 2016년 4월7일 작성했다. 이 문건에서 ‘노동부 조사 대응방안’으로 “언론상 보도된 노조 탈퇴서 전달 및 탈퇴 종용 사실에 대해 전면 부인”하라는 지침이 제시됐다.
‘현장관리자 우군화 방안’(2015년 7월28일 작성) 문건에서는 부서별 오피니언 리더라고 판단한 인력을 ‘○, △, X’로 성향을 분류했다. ○는 친회사 가능, △는 중간, X는 친회사 불가로 해석된다. 그러면서 이 중 금속노조원 33명 가운데 20명(61%), 기업노조와 비노조원 11명(100%) 전원을 ‘우군화’(회사 쪽 우호세력으로 포섭) 목표로 삼고 “집중 면담, 수당, 고과 등 인센티브 강화 등” 등의 전략을 제시했다.
또 ‘리스크 및 현안 보고체계’(2016년 1월) 문건에는 한화에어로 사내 기획실에서 ‘한화그룹 경기실(경영기획실)’로의 보고체계 조직도가 포함돼 있었다. 노조 고사 공작이 그룹 핵심으로 보고됐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정미 의원은 “한화그룹 경기실은 삼성그룹의 과거 미전실(미래전략실)에 해당하는 그룹의 핵심조직이었다”며 “삼성의 ‘S그룹 노사전략’ 문건을 통해 치밀한 노조파괴 행위가 드러났는데 한화에어로를 삼성에서 인수한 한화 역시 삼성의 부당노동행위를 그대로 들여와 실행하고 노조파괴행위를 했음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한화그룹 관계자는 통화에서 “그룹 차원에서 계열사의 노사문제에 관여한 바 없다“고 말했다. 한화에어로 관계자는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사안이라 드릴 말씀이 없다”고 밝혔다.
지난 2015년 삼성그룹이 항공기엔진, 자주포 등을 생산하는 삼성테크윈을 한화그룹에 매각했고, 한화는 지난해 이 한화테크윈에서 일부사업을 분할하면서 회사이름을 한화에어로스페이스로 변경했다. 금속노조는 삼성에서 한화로의 매각을 반대하며 2014년 12월 전국금속노조 경남지부 삼성테크윈지회(산별노조)를 세웠다. 이어 나흘 뒤 기업별노조도 설립됐다. 금속노조가 집계한 내용을 보면, 한화에어로가 실행한 노조고사 공작으로 2015년부터 2017년 5월까지 한화에어로 창원2사업장에서 모두 428명이 금속노조를 탈퇴했다. 사측의 노조고사 공작과 관련해 지난 4월 창원지방법원에서 창원2사업장 2사업장장과 상무, 팀장 등 간부 3명에 대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 혐의로 유죄판결이 나왔고, 현재 항소심이 진행중이다.
김규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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