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전 미래통합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 28일 오전 서울 광화문 인근 자신의 사무실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총선 참패로 위기에 놓인 미래통합당이 28일 전국위원회를 열어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전환을 의결하면서, 김종인 위원장 쪽이 요구해온 임기 규정 삭제를 의결하지 않은 데는 복잡한 당내 사정이 영향을 끼쳤다. 이날 상임전국위 무산에 이은 전국위의 비대위안 의결로 통합당은 대안 부재라는 현실론에 따라 ‘여의도 차르’의 신탁통치를 받아들이면서도 그 기간은 최소화하겠다고 선언한 모양새가 됐다. 그러나 김 전 위원장 쪽이 이런 ‘반쪽 제안’에 사실상 거부 뜻을 밝히면서 혼란은 좀더 장기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4·15 총선에서 참패한 통합당이 당 쇄신을 거부하는 모양새를 감수하면서까지 이런 결정을 내린 데는 무엇보다 김 전 위원장에 대한 정서적 거부감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수도권의 한 당선자는 “당 밖에 계신 분이 계속해서 ‘저 당에 문제가 많다. 사실 마뜩잖다’는 식으로만 말씀하시는 상황에서 무기력하게 전권을 넘겨야 하는 것인지 의문이 해소되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김 전 위원장은 우리 당에 대한 애정이 없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통합당과 당내 인사들을 겨냥한 김 전 위원장 특유의 독설 섞인 비판이 구성원들을 정서적으로 설복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다만 통합당은 황교안 전 대표의 낙선 등으로 지도부가 사실상 붕괴한 상황에서 ‘자강론’에 입각한 자체 개혁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당선자는 “당 자체 역량으로 새로 지도부를 구성해 위기를 수습한다는 것은 매우 이상적인 방안으로 들리지만, 국민들이 볼 때는 끼리끼리 해먹으면서 결국엔 개혁을 거부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품을 수밖에 없다. 김종인 비대위가 아니면 실질적인 선택지가 없었다”고 말했다. 위기 때마다 반복돼온 외부 인사 영입을 통한 비대위 구성 대신 당내 인사들이 중심이 돼 개혁 지도부를 구성하자는 ‘자강론’이 당 중진들 사이에서 나왔지만, 현실성이 없다는 게 당내 다수의 판단이었던 셈이다.
김 전 위원장 쪽이 이날은 “비대위원장 추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입장을 내놨지만, 이를 ‘돌이킬 수 없는 거부’라고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김 전 위원장은 총선 직전 선대위원장직을 제안받고도 몇차례 거부 뜻을 밝히다가 요구 조건을 관철한 뒤 태도를 바꾼 바 있기 때문이다. 당 안팎에선 김 전 위원장과 임시 지도부 사이에 이견 조율을 위한 ‘정치적 밀당’이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 많다. 김 전 위원장 쪽은 <한겨레>와 한 통화 등에서 “8월 말까지 한시적으로 할 거면 비대위원장을 맡을 이유가 없다”고 거듭 밝혀왔다.
김종인 비대위를 강하게 밀어붙였던 심재철 당 대표 권한대행은 이날 “당헌상 대표 임기는 8월 말까지로 돼 있는데 이는 당이 정상적으로 굴러갈 것을 전제로 임기를 잡은 것”이라며 “앞으로 당헌 개정은 새 비대위원장이 추진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위원장이 비대위원장직을 수락한 뒤 직접 자신의 임기를 늘리기 위한 당헌·당규 개정 작업에 나설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비토 그룹의 반발 역시 쉽게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조경태 최고위원은 이날 “상임전국위를 통한 당헌 개정이 이뤄지지 못한 상황에서 다시 (비대위) 임기 연장을 시도한다는 것은 편법 중의 편법”이라며 “혼란한 당내 문제를 수습하기 위해 비대위를 만들었는데 김종인 체제에서는 이런 혼란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점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노현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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