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희 세종시장(왼쪽부터)과 이시종 충북지사,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허태정 대전시장, 양승조 충남지사가 지난 2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충청권 예산정책협의회에 앞서 ‘행정수도 완성 지지 표명 환영 충청권 공동선언문’에 서명을 마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이 쏘아올린 ‘행정수도 이전’ 이슈로 정치권이 술렁이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정치적 승부수로 던졌던 미완의 국정과제가 ‘부동산 민심’과 개헌이라는 불쏘시개를 만나 16년 만에 재점화하는 모양새다.
행정수도 논의의 불을 지핀 이는 176석 거대 여당을 이끄는 김태년 원내대표다. 그는 지난 20일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국회와 청와대를 세종시로 이전해 명실상부한 행정수도 이전을 완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원내대표의 발언이 나가자 약속이나 한 듯 당권 주자들도 가세했다. 이튿날 이낙연 의원은 “여야가 합의하거나, 헌재에 다시 의견을 묻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고 지지를 표했고, 김부겸 전 의원도 “자꾸 수도권으로 몰릴 수밖에 없는 현실을 두고 대책을 세워봐야 한계가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나온 것 같다”고 거들었다. 박주민 의원도 22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당대표가 되면 수도 이전을 더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했다. 참여정부 때 행정자치부 장관을 지낸 김두관 의원은 이날 청와대·국회·대법원·헌법재판소를 모두 세종시로 이전하는 행정수도특별법을 당내 관련 티에프(TF)에 제출하겠다며 속도전에 힘을 보탰다.
행정수도 이슈는 수도권 집값 급등으로 궁지에 몰린 여당의 국면 전환용 카드라는 해석이 나오지만, 여론은 반응했다. 이날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 의뢰로 지난 21일 전국 만 18살 이상 성인 500명에게 조사한 결과(신뢰 수준 95%, 오차범위 ±4.4%포인트)를 보면, 청와대와 국회 등을 모두 세종시로 이전하는 데 찬성한다는 응답이 53.9%로 반대(34.3%)를 크게 앞섰다. 특히 권역별로 광주·전라(찬성 68.8%), 대전·세종·충청(찬성 66.1%)에서 찬성 의견이 가장 높았다. 연령대별로도 20대(찬성 66.6%), 30대(60.4%) 등 젊은층 찬성률이 높았다. 부동산 문제로 흔들리던 핵심 지지층의 마음을 붙드는 국면 전환 효과가 즉각 나타난 셈이다.
지도부의 공식적인 반대 입장과 달리, 미래통합당 내에서도 찬성론이 나오며 ‘단일대오’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5선으로 통합당 최다선이자 충청권 맹주인 정진석 의원(공주·부여·청양)은 이날 “행정수도 이전은 국가 백년대계 측면에서 논의돼야 할 주제”라며 “현재 세종시가 미완의 형태에 그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여야가 머리를 맞대 국가 균형발전 이념을 어떻게 완성시킬지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 역시 “기본적으로 통합당이 긍정 검토했으면 좋겠다는 입장이고, 깊이 있게 다뤄볼 가치가 있다”며 “지방 소멸 문제가 심각한데,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를 정부가 가져야 지방이 살아난다”고 했다. 충청권에 지역구를 두고 있거나, 차기 대선주자급으로 전국적 민심을 살펴야 하는 당내 중진급 인사들이 논의의 물꼬를 트는 모습이다.
야당이 행정수도 이슈를 외면하기 어려운 까닭은 그만큼 정치적 폭발력이 큰 이슈이기 때문이다. 2002년 대선의 승패를 갈랐을 뿐 아니라,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세종시 건설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나섰다가 거센 역풍을 맞았던 모습이 학습효과로 각인된 탓이다. 민주당이 행정수도 문제를 꺼내놓은 것이 성난 민심을 달래기 위한 차원을 넘어 차기 대선까지 밀고 갈 수 있는 이슈를 선점하려는 정치적 포석인 이유다.
그러나 행정수도 이슈는 돌파구이기도 하지만 ‘블랙홀’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재 민주당은 여야 합의를 통해 ‘행정수도특별법’을 제정하겠다는 계획인데, 통합당은 지역 균형발전이란 방향엔 동의하면서도 민주당의 ‘진정성’을 의심하고 있다. 지역구가 충남 홍성·예산인 홍문표 의원조차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하려면 4월 총선 때 내놨어야 한다. 지역에서도 ‘(세종시에 이미) 있는 거나 잘하라는 전화가 많이 온다”고 말했다. 야당 설득에 성공해 특별법을 만들더라도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이 청구되면 다시 헌재 판단에 맡겨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헌법 개정도 가능하지만, 개헌에 일단 착수하게 되면 권력구조 개편 문제로 논의가 확장되며 장기화될 공산이 크다.
노현웅 서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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