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회원들이 지난 10월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최근 정부의 `낙태죄' 관련 형법, 모자보건 개정 입법예고안과 관련해 여성에 대한 처벌을 유지하고 건강권과 자기결정권, 사회적 권리 제반을 제약하는 기만적인 법안이라며 이를 규탄하고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헌법재판소가 임신중지를 한 여성을 처벌하는 형법 269조 1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며 제시한 개선입법 시한이 열흘 앞으로 다가왔지만, 여당은 올해 안에 대체입법에 나설 계획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경우 형법상 ‘낙태의 죄’는 다음 해 1월1일부로 자동 폐지 수순을 밟겠지만, 이후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지원책 논의가 표류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1일 더불어민주당 원내 관계자는 <한겨레>와 통화에서 “이번 임시회 안에 낙태죄 폐지와 관련한 법령을 논의할 계획은 없다”며 “올해가 지나면 일단 낙태죄가 폐지되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일단 진보적인 조치가 이뤄진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국회에 발의된 ‘낙태죄’ 개정안은 모두 6개다. 민주당 권인숙·박주민 의원과 정의당 이은주 의원이 발의한 형법 개정안은 낙태죄를 ‘전면 폐지’하는 내용이다. 이들이 각각 발의한 모자보건법 개정안은 임신중지에 대한 정보제공, 상담, 의료비 지급 등 지원 체계에 대한 규정을 담고 있다.
정부와 국민의힘에서 나온 개정안은 ‘낙태죄 일부 유지’를 골자로 한다. 지난 10월 법무부가 마련한 개정안은 임신 14주까지 임신중지를 허용하고 24주까지는 사유에 따라 허용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국민의힘 조해진 의원안은 임신 20주까지, 국민의힘 서정숙 의원안은 임신 10주까지 조건부 허용하는 등 헌법재판소 결정보다 엄격한 제한을 두고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지난 8일 전체회의를 열어 '낙태죄' 개정과 관련해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있다. 공동취재사진단
소관 상임위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지난 8일 공청회를 한 차례 연 뒤로 아무런 논의도 없는 상태다. 정기국회 내내 법사위에서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간의 갈등이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개정안 등 민감한 사안들이 쏟아지면서, 낙태죄 폐지 논의는 여야 모두의 관심 밖에 놓여왔다.
차라리 ‘폐지되는’ 게 낫다? ‘민주당 방치전략’ 지적도
‘낙태죄 일부 유지’가 정부 입장인데도 민주당이 논의에 소극적 태도를 보이는 것은 일종의 ‘방치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낙태죄 폐지에 대한 여성계·의료계·법조계·종교계 등의 의견이 너무나 다르다 보니, 직접 폐지하기보다 ‘폐지되는’ 방식을 택하는 모양새”라며 “낙태죄 폐지를 섣불리 의제에 올렸다가 도리어 ‘일부 유지’ 절충안으로 결론이 날 수도 있어 조심스럽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낙태죄 폐지 이후의 과제다. 국회의 직무유기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흐르면 형법상 ‘낙태죄’는 사라지지만, ‘안전하게 임신중지할 권리’의 공백은 쉽게 메울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법사위에서 ‘낙태죄 폐지’가 결정되지 않은 탓에 ‘낙태죄 폐지’를 염두에 둔 보건복지위의 모자보건법 논의도 기약없이 미뤄져 왔다.
현재 발의된 모자보건법 개정안에는 △약물에 의한 임신중지 합법화 △임신중지 관련 사회적 지원체계 등이 담겨있다. 임신중지 시술을 원치 않는 의사의 거부권 여부와 후속 절차 역시 모자보건법에서 논의해야 한다. 그동안은 임신중지가 ‘불법’이어서 필요 없었던 각종 제도와 절차에 대한 규정이 필요한 상황이다.
모자보건법 논의마저 표류할 경우 임신중지 시술은 양성화됐지만 ‘안전하게 임신중지할 권리’는 공백인 상태가 장기화 돼 각종 부작용이 예상된다. 또 다른 민주당 관계자는 “올해는 법사위에서 대체입법 없이 낙태죄가 폐지되더라도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임신중지에 따른 상담, 정보제공, 의료 지원 절차 등을 규정하는 모자보건법 논의로 넘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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