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국민의당 서울시장 후보가 지난 17일 서울 양천구 한국방송회관에서 한국기자협회·방송기자협회·한국피디(PD)연합회 주최로 열린 후보자 초청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국민의힘 오세훈,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간 단일화 협상이 꼬이면서 양쪽의 신경전이 날카로워지고 있다. 특히 두 당에서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안 후보 아내의 정치적 영향력을 비꼬는 감정적 발언을 주고받으면서 가뜩이나 교착상태에 빠진 단일화 협상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공교롭게도 김 위원장과 안 후보의 아내 이름이 모두 ‘김미경’이다.
김종인, 안철수에 “그 사람은 좀 정신이 이상한 사람”
김 위원장은 1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 회의 뒤 기자들과 만나 ‘안 후보 쪽에서 사모님 관련 공세를 폈는데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을 받고 “그 사람은 좀 정신이 이상한 사람 같다”고 날을 세웠다. 이날 오전 내내 김 위원장의 심기는 불편해 보였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오전 9시30분에 열리는 비대위 회의를 건너뛰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왔다고 한다. 회의장으로 향하는 국회 본청 복도에서 기자들이 단일화 협상과 관련된 여러 질문을 던졌지만 김 위원장은 “나한테 물어보지 말고 협상하는 사람한테 물어보라”, “원칙대로 협상한다니까 두고 봐라”라며 답을 피했다. 이날 협상이 난항을 겪은 것에 대해서도 국민의힘 관계자는 “(안 후보가) 김 위원장 아내는 건드리지 말았어야 한다. 그걸 건드리니 감정조절을 못 하고 폭발한 것 아니냐”고 분위기를 전했다.
김 위원장은 전날 안 후보가 ‘서울시장 후보자 초청토론회’에서 “정치인의 가족을 공격하는 게 가장 위기에 몰렸을 때 마지막으로 꺼내는 카드”라며 “김 위원장님의 사모님이 제 아내와 이름이 같다. 그리고 또 정치적인 영향력에 대한 이야기도 여의도에 많이 퍼져 있어 혹시 그분과 착각해서 그런 거 아닌가. 저는 그런 해석밖에는 할 수가 없다”고 말한 데 대해 격노한 것으로 전해졌다.
안 후보가 김 위원장의 아내까지 거론한 것은 양쪽의 감정싸움이 고조되면서 빚어진 결과였다. 김 위원장이 지난 15일 안 후보를 향해 “토론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사람이 서울시장 후보가 될 수 없다”고 직격했고, 안 후보는 라디오 방송에서 단일화 협상이 막힌 상황을 두고 “오 후보 뒤에 ‘상왕’이 있는 것 아니냐”며 김 위원장을 겨냥했다. 국민의힘에서는 이후 “안 후보 뒤에는 여자 상황제가 있다”(이준석 서울 노원병 당협위원장)며 안 후보 아내인 김미경 서울대 교수를 저격하는 등 잡음이 이어졌다. 그러자 안 후보가 다시 김 위원장의 아내 영향력을 언급하며 맞대응한 것이다.
두 사람의 어긋난 인연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 위원장은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염두에 두고 상의해온 안 후보에게 “국회의원부터 해서 정치를 배우라”고 조언했지만 이를 제대로 수용하지 않자 그 뒤로 멀리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지난 1월 새해 인사차 안 후보가 김 위원장에게 연락하면서 비공개 만남이 성사됐지만, 이후 두 사람의 만남이 외부에 알려진 데 대해 김 위원장이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8일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이날 국민의힘 쪽에선 상대를 깎아내리는 김 위원장의 발언이 단일화 협상을 어렵게 만드는 장애 요소라는 지적도 나왔다. 김무성·이재오 전 의원, 김문수 전 경기지사는 국회 소통관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야권 후보 단일화는 시대적 소명”이라며 “두 야권 구성원들은 후보 단일화에 방해되는 어떤 상호비방과 인신공격도 즉각 중단하라”며 김 위원장의 사퇴까지 촉구했다. 이 전 의원은 “이번 단일화 처음부터 김 위원장의 언행이 단일화를 방해한다”며 “야권 후보를 존중해야지 자기 당 후보가 아니더라도 ‘정신 이상한 것 같다’ 이렇게 후보를 비난하면 안 된다. 계속 방해할 것 같으면 그만두는 게 낫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같은 당 장제원 의원은 “(김 위원장은) ‘떼쓴다’ ‘세상 물정 모른다’면서 안 후보를 어린애 취급하더니 급기야 정신이 이상하다며 환자 취급까지 한다”며 “김 위원장 본인 정신이 이상해 진 거 아니냐”고 비판했다.
국민의당 쪽에선 김 위원장의 안 후보 ‘무시 발언’이 도를 넘었다고 반발했다. 권은희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소규모 정당이 제1야당을 압박해서 협상을 하려고 하니 받아들일 수 없다’. 김 위원장의 이 발언에 넘쳐나는 ‘갑질 의식’이 야권 단일화 협상의 난관”이라고 적었다.
안 후보에 대한 김 위원장의 대응을 두고선 최근 여론조사 상승세를 탄 오세훈 후보에게 힘을 싣는 차원이란 해석도 있다. 재보선에서 “국민의힘으론 이길 수 없다”고 말한 안 후보에게 보수 야권을 대표하는 후보 자격을 넘겨줄 수 없다는 김 위원장의 의지가 강고하다는 것이다. 김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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