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참모→의장 릴레이 만남뒤 ‘결심’
국외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노무현 대통령은 14일 숨가쁜 하루를 보냈다. 장장 12시간을 넘게 비행한 노 대통령은 이날 여독이 채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7시간여 만에 ‘이해찬 총리 면담→참모들의 보고→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 면담’의 절차를 거쳐 ‘총리 사의 수용’을 최종 결정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오전 9시30분 서울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곧장 헬기에 오른 노 대통령은 청와대로 이동했다. 노 대통령은 9시40분께 청와대에 도착해 이 총리와 청와대 수석·보좌관들을 만났다.
노 대통령은 이들과 1시간 남짓 티타임 성격의 면담을 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는 이 총리의 거취가 거론되지 않았다고 한다. 주로 노 대통령의 순방에 관한 이야기가 화제에 올랐다. 이 총리의 거취가 논의된 것은 이후 별도의 자리였다. 노 대통령은 이 총리가 10시30분께 노 대통령에게 “별도로 뵙고 말씀드리고 싶다”고 요청하자, 따로 자리를 마련했다.
20분 남짓 이뤄진 이 자리는 이병완 청와대 비서실장과 문재인 민정수석이 배석했다. 이 총리는 이 자리에서 “부주의한 처신으로 누를 끼쳐 다시 한번 죄송하다”며 노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사의 수용 여부에 대한 답변을 유보했다고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이런 내용이 알려지면서 한때 정치권에서는 노 대통령이 이 총리의 거취 문제를 놓고 장고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왔다.
그러나 이날 오후 노 대통령이 적극적인 의견청취에 나서면서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갔다. 간단히 점심식사를 마친 노 대통령은 우선 이병완 비서실장으로부터 ‘골프 파문’과 관련한 보고를 받았다. 김만수 대변인은 “신중하지 못한 골프라는 것 말고, 여러 의혹에 대해서는 문제점이 밝혀진 것이 없다는 내용으로 보고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도 불렀다. 정 의장은 오후 2시40분께 청와대에 도착했고, 곧바로 노 대통령에게 당의 의견을 전했다. 극도의 보안 속에 2시간 남짓 이뤄진 면담은 이병완 비서실장만 배석했다. 이 자리에서 정 의장은 “당의 의견과 여론을 종합할 때 이 총리의 사퇴가 불가피하다”는 의견을 내놓았고, 노 대통령은 “당의 뜻을 존중하겠다”며 ‘총리 사의 수용’ 의사를 밝혔다.
발표는 당과 청와대에서 동시에 이뤄졌다. 우상호 열린우리당 대변인과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은 오후 5시 조금 넘어 이런 사실을 공식 발표하면서, 이 총리의 거취를 둘러싼 논란은 일단락됐다.
박병수 기자 suh@hani.co.kr
박병수 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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