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오른쪽)과 민경욱 대변인이 10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악화로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방문 연기를 발표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번달이 임기 반환점
리더십 심각한 타격 입으면
회복하기도 쉽지 않다 판단
방미해도 시급한 현안 논의 없어
미국 이해 구하기도 수월
리더십 심각한 타격 입으면
회복하기도 쉽지 않다 판단
방미해도 시급한 현안 논의 없어
미국 이해 구하기도 수월
박근혜 대통령이 10일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초기 대응 실패로 험악해진 민심에 밀려 미국 순방을 연기했다. 그간 국가비상사태에 소극적이었다는 비판에 최우선 외교 대상국인 미국 방문까지 미뤄야 할 상황에 놓인 것이다. 총리 임명 및 국회법 개정을 둘러싼, 꼬인 정국까지 돌파하기 위해 선택한 고육책인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이 메르스 대응을 명분으로 방미를 연기한 만큼, 메르스 대응을 매일매일 직접 챙길지 여부도 주목된다.
출국을 나흘 앞두고 전격 발표된 방미 연기의 배경에는 점차 나빠지고 있는 여론이 단연 첫번째 이유로 꼽힌다. 정부의 초기대응 미숙이 메르스 사태 확산에 결정적 원인이 됐다는 비판이 가라앉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박 대통령의 방미는 무책임한 정부에 대한 불신을 초래할 게 뻔했다. 이번달이 임기 반환점을 도는 시기여서 박 대통령의 리더십이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경우 회복하기도 쉽지 않다는 판단과 함께, 그동안 겪었던 ‘순방 트라우마’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한달여 만인 지난해 5월19일 대국민 사과담화 발표 뒤 아랍에미리트(UAE)로 떠난 데 이어, 지난 4월16일 세월호 1주기 당일 중남미 순방을 강행해 여론의 뭇매를 맞은 바 있다.
이날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발표한 박 대통령의 방미 여론조사(그래픽 참조)에서도 순방을 연기해야 한다는 응답이 전체의 53.2%로, 예정대로 순방을 가야 한다는 응답 39.2%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더구나 정치권에서는 박 대통령이 순방을 떠날 경우 훨씬 더 여론이 나빠질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메르스로 인한 소비둔화 및 경기침체 조짐이 실물 경제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면서, 민심이 나빠지는 속도나 파급력이 세월호 때보다 훨씬 더 빠르고 강하게 나타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국회법 개정안 및 거부권 행사 여부를 둘러싼 청와대와 여야의 갈등과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 인준안 처리를 둘러싼 국내 정치 상황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황 후보자가 나흘 안에 국회 인준 절차를 밟을 수 있을지 여부도 불투명한데다, 국회 인준 절차를 통과하더라도 박 대통령이 신임 총리에게 위기대응 총괄을 떠넘기고 가는 상황이 되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웠을 것으로 보인다.
여당이 박 대통령 출국 전 총리 인준안을 처리하려고 무리하게 표결을 강행하다 국회가 파행할 경우, 그 책임도 온전히 박 대통령이 부담해야 할 상황이었다. 이렇게 되면 또다른 쟁점인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등을 놓고도 청와대가 명분을 잃게 될 가능성이 컸다. 박 대통령으로선 이번 방미를 강행할 경우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컸던 셈이다.
박 대통령의 이번 방미 일정이 시급한 현안 논의나 연설 일정 등이 없어 미국 정부의 이해와 동의를 구하기 상대적으로 수월했다는 점도 정부의 부담을 더는 요인으로 꼽힌다. 박 대통령의 방미는 여러모로 지난 4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방미와 비교될 수밖에 없지만, 4월에 상·하원 합동연설을 했던 아베 총리와 달리 박 대통령은 이미 2013년 합동연설을 한 바 있다. 이미 국제적으로도 한국의 메르스 대응 과정이 주목받고 있어, 박 대통령으로선 방미 연기의 명분이 충분한 상황이었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