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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대통령실

대통령은 왜 그런 식으로 말한대요?

등록 2015-11-13 19:25수정 2015-11-15 14:29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안녕하세요. 정치부에서 청와대를 담당하고 있는 최혜정입니다. 기자실이 있는 청와대 춘추관에 짐을 푼 지 넉달이 가까워오네요. 청와대 출입기자라고는 하지만, 제가 청와대에서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곳은 춘추관 내 기자실과 화장실 정도여서 ‘청와대 출입’이라는 말이 무색하긴 합니다. 어쨌든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 이야기를 들고 자주 친절하게 인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주는 어느 때보다 박 대통령의 발언이 화제에 오른 한 주였습니다. 박 대통령은 지난 10일 국무회의에서 국회가 박 대통령 요구 법안 처리에 미적대고 있다면서 “진실한 사람을 선택해달라”고 국민들에게 심판을 호소했습니다. 이어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해선 “바른 역사교육을 받지 않으면 혼이 비정상이 된다”고 말했죠. 박 대통령의 발언이 알려진 직후, 출입기자들은 그야말로 “혼이 비정상”이 되어 정신없는 오후를 보내야 했습니다. 또 ‘진실한 사람’ 발언은 새누리당을 물갈이 공포에 몰아넣으며, 여당 의원들 스스로에게 ‘나는 진실한 사람’인가를 자문하게 만들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친한 수준’(친박근혜계)을 넘어 이제는 ‘진박(진실한 박근혜계) 가려내기’ 소동이 벌어질 태세입니다.

박 대통령의 진실한 생각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번 국무회의 발언은 박 대통령 화법의 특징을 고스란히 담아낸 텍스트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모호함’과 ‘강렬함’입니다.

박 대통령은 국무회의나 수석비서관회의 머리발언으로 국정철학과 운영 방향 등을 국민들에게 알립니다. 여기엔 정책 현안 전반이 포함되기 때문에,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실이 각 수석실에서 보고한 내용을 조율한 뒤 연설문 초안을 대통령에게 전하게 됩니다. 8·15 경축사 등 굵직한 대외용 메시지는 청와대 연설기록비서관실이 주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실무선에서 올라가는 연설문은 그야말로 초안일 뿐, 박 대통령은 이를 자신의 언어로 바꾸고 재배치하는 작업을 통해 ‘박근혜표 연설문’을 만들어냅니다. 박 대통령의 한 참모는 “조사 하나가 주는 어감까지 신경쓴다”고 전합니다.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물러나게 한 “배신의 정치”(6월25일)는 물론, 이번 국무회의 발언 역시 박 대통령이 직접 강도 높게 고쳤다는 후문입니다.

박근혜 대통령 화법의 특징은 우선 표현을 모호하게 해서 상상의 나래를 펴게 만드는 데 있습니다. 이렇게 읽힐 수도 있고 저렇게 해석할 수도 있는 단순한 말을 던진 뒤, 정치적 파장이 일어나면 참모들이 나서서 “박 대통령의 뜻은 그런 것이 아니다”라며 해명하는 패턴입니다. 이번 ‘진실한 사람’ 역시 새누리당은 물론 야당까지 총선 심판의 대상으로 삼는 것으로 해석되자, 청와대는 “경제와 민생을 위한 대통령의 절실한 요청”, “대통령의 충정을 이해해야 한다”며 손사래를 쳤습니다. 하지만 곧바로 이어진 박 대통령의 “은혜를 갚는다는 것은 은혜를 잊지 않는 것”이란 발언이 또다시 여당 의원들을 고민에 빠뜨렸죠. 이런 알쏭달쏭 화법은 비록 뒷말은 낳을지언정, 박 대통령이 국정의 핵심임을 끊임없이 상기시켜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책임은 없고 상황은 즐기는 ‘치고 빠지기’가 가능한 거죠. 한 참모는 “국정운영의 기술”이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최혜정 정치부 정치팀 기자
최혜정 정치부 정치팀 기자
또 다른 특징은 독한 표현입니다. 올해 최대 유행어가 될 듯한 ‘혼이 비정상’을 비롯해 ‘배신의 정치’ ‘암덩어리’ ‘규제는 우리가 쳐부술 원수’ ‘규제들을 단두대에 올려 처리해야’ 등은 쉬우면서도 강렬해서 쉽게 잊혀지지 않습니다. 박 대통령의 온화한 외모와는 어울리지 않아 더 충격적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박 대통령을 오랫동안 지켜본 한 인사는 “국민들을 ‘끌고 가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보니, 간결하면서 강한 어휘로 설득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하더군요. 불행했던 개인사가 반영된 표현이라는 해석도 나옵니다. 무엇보다 박 대통령의 주요 발언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가 있습니다. 대통령 본인은 ‘완전무결하다’는 자부심(?)입니다. 박 대통령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여당은 ‘자기 정치’나 하고 야당은 발목이나 잡고 있다는 원망이 배어 나옵니다. 설득과 공감을 위한 ‘배려의 언어’보다는, 비판과 질책의 ‘성난 공격’이 대부분인 이유입니다. 집권 후반기로 갈수록 박 대통령의 발언 수위는 점점 더 세질 것 같습니다. 뚜렷한 성과가 없다는 조바심이 커질수록, 정치가 자신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분노 역시 커질 것이기 때문이죠. 대통령이 화가 날수록 나라는 더욱 불안해질 것입니다. 비난과 불만보다는 진솔함과 격려의 화법이 오히려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최혜정 정치부 정치팀 기자 id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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