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수사로 정권 불똥 막기
“의미있는 사업에 인신공격”
강제모금·초고속 설립 모르쇠
‘퇴임 대비한 재단 의혹’ 부인
박근혜 대통령이 20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참석자들에게 자리를 안내하고 있다. 왼쪽으로 안종범 정책조정수석과 그 뒤로 우병우 민정수석이 보인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박근혜 대통령이 20일 ‘비선 실세’로 알려진 최순실(60·최서원으로 개명)씨의 미르·케이(K)스포츠재단 ‘사유화’ 의혹에 대해 “만약 어느 누구라도 재단과 관련해서 자금 유용 등 불법 행위를 저질렀다면 엄정히 처벌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최씨의 두 재단 설립·운영 개입 및 자금 유용 정황이 터져나온 이후, 박 대통령이 구체적인 견해를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두 재단의 설립 배경 설명과 성과 부각에 이날 발언의 대부분을 할애하면서 ‘초고속 설립’ 및 ‘강제 모금’, 최순실씨 개입 의혹 등 국민들의 핵심적 관심사에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요즘 각종 의혹이 확산되고 논란이 계속되는 것은 지금 우리가 처한 위기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위기를 가중시킬 수 있다”며 ‘엄정 처벌’ 견해를 밝혔다. 박 대통령이 ‘최순실’ 이름을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최씨와 관련된 의혹이 전방위로 확산되자 선을 긋고 나선 것이다. 이는 최씨 문제를 그대로 방치할 경우, 임기 후반기 국정운영 동력을 잃고 권력누수(레임덕)가 가속화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것으로 보인다. 애초 박 대통령은 지난달 최씨의 재단 개입 의혹에 대해 “비상시국에 난무하는 비방과 폭로성 발언”이라고 일축한 바 있다. 하지만 최근 최씨가 독일에 개인 회사를 차려 케이스포츠재단 자금을 빼내려는 정황이 제기되고, 최씨의 딸 정유라(20)씨의 이화여대 입학 및 학사관리 특혜 의혹 등으로 최경희 이대 총장이 사퇴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자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 수사를 통해 ‘개인 비리’로 마무리해, 정권 문제로 비화되는 것을 차단하겠다는 의지인 셈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철저히 수사해 비리가 있다면 밝혀지면 될 일이다. 피할 일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미르·케이스포츠재단 설립을 둘러싼 각종 의혹에 대해선 적극 방어에 나섰다. 박 대통령은 “재단들이 저의 퇴임 후를 대비해서 만들어졌다는데 그럴 이유도 없고 사실도 아니다”라고 밝혔다. 또 두 재단 설립 과정을 설명하면서 “전경련이 나서고 기업들이 이에 동의해준 것은 감사한 일”이라고도 했다. 박 대통령은 “이처럼 의미있는 사업에 대해 의혹이 확산되고 도를 지나치게 인신 공격성 논란이 계속 이어진다면 문화융성을 위한 기업들의 순수한 참여 의지에 찬물을 끼얹어 기업들도 더이상 투자를 하지 않을 것이고, 한류 문화 확산과 기업의 해외 진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명시적으로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지시하지 않은 채 오히려 두 재단과 전경련, 기업들을 적극 옹호하고 나선 것이어서, 검찰에 사실상 수사 가이드라인을 내린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예상된다.
최혜정 기자 idun@hani.co.kr[언니가 보고 있다 38회_‘도망자’ 최순실 턱밑까지 추격했다] [디스팩트 시즌3#24_최순실 딸 정유라 이화여대 특혜 의혹 총정리]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