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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대통령실

‘100만 촛불’ 거스르는 정치

등록 2016-11-14 22:23수정 2016-11-14 22:25

‘하야’ 귀막은 대통령
청 ‘헌정중단’ 규정하며 버티기

민주, 영수회담 던졌다 철회
추미애 독단 제안 반발일자 거둬

친박 ‘박근혜 지킴이’
이정현 대표 사퇴 거부 ‘방패막이’
지난 12일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100만개의 촛불이 서울 도심에 넘실댔지만, 청와대와 정치권은 민심을 받아안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여전히 국정 주도권을 놓지 않겠다며 ‘버티기’로 일관하고 있고,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독단적으로 청와대에 양자회담을 제안했다가 당내 반발로 철회하는 등 야권 역시 혼란상을 보이고 있다. 대통령의 독선과 야권의 주도권 경쟁이 ‘광장의 에너지’를 소진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박 대통령과 추미애 대표는 15일 청와대에서 양자회담을 열기로 했다가, 더불어민주당 내부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무산됐다. ‘100만 촛불’ 이후에도 이틀이 지나도록 별 대책을 내놓지 못한 청와대로선, 야당과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예상 밖 호재로 보고 추 대표의 제안을 수용했던 것이다. 퇴진 민심에 귀를 막고 버티려는 청와대의 속내와 야당 대표의 돌출행동이 만나 벌어진 해프닝이었다.

국민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결단’을 기다리고 있지만, 청와대는 여전히 “여러 방안을 고심 중”이라는 말만 반복하며 침묵을 지키고 있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14일에도 기자들과 만나 “앞으로 나올 (수습) 사항들에 대해서는 미리 말씀드릴 수 있는 부분이 없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 퇴진에 대해 청와대는 이를 ‘헌정 중단’으로 규정하며 ‘하야 요구’에 귀를 막고 있다. 청와대는 “모든 것을 포함해 대응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으나, 내부적으론 여전히 헌법이 정한 총리의 권한을 보장하는 ‘책임총리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박 대통령이 국정에서 손을 떼고 물러나야 한다는 민심과는 거리가 먼 방안이다.

‘촛불집회’ 전후로 공조를 다짐했던 야권은 이날 추미애 대표의 독자 행동으로 종일 우왕좌왕하는 모습이었다. 추 대표는 이날 아침 지도부를 비롯한 의원들과 상의 없이 박 대통령에게 양자회담을 제안했다가 당 안팎의 거센 반발에 부딪히자 이날 밤 전격 철회를 선언하는 등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이날 아침 추 대표의 회담 제안 사실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지자 국민의당과 정의당은 “야권 균열의 우려만 키운다”며 취소를 압박했다. 시민사회도 즉각 반발했다. 1550여개 사회단체로 구성된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은 이날 오후 기자회견을 열어 “(추 대표는) 영수회담을 중단하고 명확한 퇴진 당론 정리와 실제적 조치에 착수하라”고 요구했다. 기독교·불교·원불교·천도교·천주교로 구성된 ‘박근혜 퇴진 5대 종단 운동본부’도 이날 성명을 내어 “(영수회담이라는) 책략으로 현 시국을 피해 나가려고 한다면,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만이 아니라 더불어민주당 역시 국민의 심판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함세웅 신부, 김종철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 등 사회 원로들도 국회를 찾아 추 대표를 만류했다. 결국 이날 오후 4시 긴급 소집된 의원총회에서 초선 의원부터 중진 의원에 이르기까지 다수 의원들의 십자포화가 쏟아진 뒤에야 추 대표는 박 대통령과의 양자회담 계획을 철회했다.

민주당은 이날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당론으로 정하며 그동안의 미온적 대응을 매듭지었지만 현직 대통령의 검찰 조사라는 초유의 사태를 앞두고 제1야당의 대표가 오락가락 행보를 보인 만큼 추미애 대표의 리더십을 향한 당 안팎의 의구심은 커질 것으로 보인다.

국정의 공동책임자인 여당의 지도부 역시 ‘청와대 2중대’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사퇴를 거부한 채 거국중립내각이 구성되면 물러나겠다는 절충안을 제시했지만, 현 시국은 물론 당내 여론도 외면한 대책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정현 대표의 ‘버티기’ 역시 박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이 본인을 지켜줄 울타리로 여당을 ‘활용’하고 있고, 친박근혜계 지도부는 민심을 대변하는 국회의원이 아닌, ‘박근혜 지킴이’에 머물고 있다는 해석이다.

민심의 흐름이 정치권이 주도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만큼, 이제는 여야가 함께 촛불집회에서 드러난 국민적 요구에 따라 사태를 수습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정치적 타협책이 아니라 박 대통령 퇴진을 위해 야권이 힘을 합쳐야 한다는 것이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대통령의 임기를 보장하는 거국내각 등은 국민들이 원하지도 않고 위헌적인 얘기”라며 “박 대통령이 사퇴 선언을 하고 권한대행 총리로 과도내각을 통해 대선 일정을 조율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물러나지 않을 경우, 남은 방안은 탄핵밖에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는 “박 대통령이 ‘결심’하지 않는다면 대통령을 끌어내릴 방법도 없다. 결국 헌법에 입각해 대통령을 탄핵하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라며 “우리 사회는 탄핵으로 인한 혼란을 감내할 만큼 성숙돼 있다”고 강조했다.

최혜정 엄지원 김진철 기자 id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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