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3일 오전 미국 원자력 추진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이 부산작전기지에 입항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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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가 ‘강 대 강’의 대결로 치닫고 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무력시위 공방전은 9월 말부터 시작됐다. 발단은 9월23일 로널드 레이건호 등 미국 항모강습단의 부산 입항에 있었다. 핵항모 전개를 좌시하지 않겠다고 밝힌 북한은 지난달 25일 새벽 서북부 저수지 수중발사장에서 전술핵 탑재를 모의한 탄도미사일 발사훈련을 진행했다. 북한이 바다가 아닌 저수지에서 미사일 발사 훈련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미의 선제타격 방위시스템인 ‘킬 체인’에 대한 회피 전술로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한·미는 예정대로 9월26일부터 29일까지 동해에서 레이건호가 참여한 가운데 연합해상훈련에 돌입했다. 미 핵항모가 참여한 연합해상훈련은 5년 만이었다. 북한의 미사일 훈련도 이 시기에 집중됐다. 28일 오후에는 “남한 작전지대 안 비행장들을 무력화시킬 목적으로” 모의 전술핵을 탑재한 탄도미사일 발사훈련을 실시했고, 29일에도 단거리 미사일 두발을 동해상으로 발사했다.
9월30일부터는 한·미·일이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를 가상한 대잠수함 훈련에 돌입했다. 동해상에서 한·미·일 대잠 훈련이 실시된 것은 처음이었다. 그러자 북한은 10월1일 또다시 동해상으로 두발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훈련을 실시했다. 이와 관련해 북한은 9월29일과 10월1일에 “여러 종류의 전술탄도미사일 발사훈련”을 실시했다고 발표했는데, 북한이 밝힌 내용은 공중 폭발과 직접 정밀 타격, 그리고 산포탄이었다. 이렇게 여러 종류의 미사일을 배합하는 방식으로 훈련한 것은 다종의 미사일을 거의 동시에 발사하는 능력을 과시함으로써 미국 항모 전단의 접근을 차단하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북한은 10월4일 오전에 신형 지대지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시험발사했다. 이에 대해 북한은 당 중앙군사위원회가 “지속되는 불안정한 정세에 대처하여 적들에게 강력하고 명백한 경고를 보내는 결정을 채택하고” “일본열도를 가로질러 4500㎞ 계선 태평양상의 설정된 목표수역을 타격하도록 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미국의 전략기지인 괌을 의식한 조치로 풀이된다.
그러자 한·미는 곧바로 F-15K와 F-16 등을 동원해 공대지 합동 직격탄(JDAM) 정밀폭격 훈련을 실시했다. 또 4일 밤과 5일 새벽에 걸쳐 에이태큼스(ATACMS)와 현무-2C 미사일을 동원해 연합 지대지미사일 대응사격 훈련을 실시했다. 이 두가지 훈련은 유사시 북한의 미사일기지를 신속하고 정밀하게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과시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현무-2C 탄도미사일이 비정상적인 비행 끝에 강릉 공군기지로 낙탄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해상훈련을 마치고 귀항하던 미국의 항모강습단도 10월5일 동해로 재진입했다. 이 역시 북한 중거리 미사일 시험발사로 충격에 빠진 한국과 일본에 대한 안보 공약을 재확인하고 북한에 강력 대응 의지를 과시하기 위함이었다. 북한도 물러서지 않았다. 6일 새벽에는 초대형 방사포와 전술탄도미사일로 명중타격훈련을 진행했고, 서부전선의 장거리포병구분대들과 서부지구의 공군비행대들이 합동타격훈련을 실시했다. 북한은 이 훈련의 목적이 “유사시에 대비한 작전준비태세의 정확성과 고도의 실전능력을 실증”하는 데에 있다고 밝혔다.
북한은 한·미·일이 동해 공해상에서 연합훈련을 벌이던 시기에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무력시위에 나서기도 했다. 사상 처음으로 150여대의 각종 전투기를 동시 출격시켜 “공군의 대규모 항공공격 종합훈련”을 진행한 것이다. 극심한 유류난에 시달려온 북한이 이렇게 대규모 전투기를 출격시켜 훈련에 나선 데에는 유사시 핵과 미사일, 그리고 방사포 및 장사정포뿐만 아니라 공군력도 대거 동원할 수 있는 능력을 과시하기 위함이다.
무력시위 공방전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미국은 7일 제2스트라이커여단전투단(SBCT)이 8일부터 평택 당진항에 도착한다고 발표했다. 이 전투단의 한국 배치는 처음이다. 그러자 북한은 9일 새벽 초대형 방사포 훈련을 실시했다. 북한은 이 훈련의 목적이 “적의 주요 항구 타격을 모의한” 것이라고 밝혔는데, 이는 스트라이커여단전투단 배치에 대한 대응으로 풀이할 수 있다. 초대형 방사포의 사거리가 350㎞ 안팎에 달한다는 점도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해준다.
또 북한은 12일에 사거리 2천㎞의 장거리 전략순항미사일을 시험발사했고, “전방지역에서 남한군이 무려 10여시간에 걸쳐 포사격을 감행했다”고 규탄하면서 14일에 한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 시험발사와 170여발의 포탄 발사훈련을 실시했다. 이에 앞선 13일 밤에는 북한 군용기 10여대가 위협 비행에 나서자 남한 공군도 F-35A 등으로 대응 출격에 나섰다.
이러한 힘의 대결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해진 것은 있다. 북한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과거의 북한은 한·미, 혹은 한·미·일 연합훈련에 반발하면서도 훈련 기간 동안에는 군사적 맞대응을 자제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한·미, 한·미·일의 군사훈련을 하나하나 살피면서 즉각적인 맞춤형 대응에 나섰다.
이 대목에서 한·미·일 대 북한의 군사적 대결 구도가 갈수록 ‘닮은꼴’이 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한·미 동맹의 전통적인 구호는 ‘파이트 투나이트’(Fight Tonight·상시 전투태세)이다. 그런데 북한이 이번에 과시한 것도 상시 전투 능력이다. 또 윤석열 정부는 “행동하는 동맹”과 “한·미·일 안보협력”을 강조한다. 한·미와 한·미·일의 강력한 대응 의지를 말뿐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북한도 마찬가지로 바뀌었다. 한·미, 한·미·일의 연합훈련과 군비증강에 대해 외교적 비난뿐만 아니라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다. 이는 북한이 핵무력 강화를 통해 ‘힘의 균형’을 이뤄냈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상호 간의 적대감과 무력시위는 나날이 커지고 있지만, 양쪽이 바라는 바는 동일하다. 그것은 바로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의 방식은 무력공격을 해오면 뼈도 못 추리게 하겠다는 억제 일변도로 치닫고 있다. 전쟁을 막겠다는 취지의 언행이 전쟁 가능성을 우려해야 하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면, 이제는 방식을 달리해야 한다. 북한의 핵실험 및 탄도미사일 발사와 한·미(일) 연합훈련을 함께 중단하는 조치가 절박한 시점이다.
연합훈련 중단은 길게는 30년 전에, 짧게는 3∼4년 전에 미국 대통령이 약속한 바였다. 이러한 약속 불이행이 오늘날의 위기에 중요 원인이라면, 한·미는 결자해지 차원에서 선의를 보일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달라진 북한을 효과적으로 상대할 수 있다.
정욱식 한겨레평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