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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방·북한

“북, 푸틴의 식량지원 제안 사양”…‘달라진 북한’의 길 어디로?

등록 2023-09-25 07:17수정 2023-09-25 08:51

미중러 적대적 경쟁, 북한의 전략적 입지 키워
북중러 3자 연대, 중국의 대만 문제가 최종변수
러시아를 방문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9월13일(현지시각)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상봉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9월14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러시아를 방문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9월13일(현지시각)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상봉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9월14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9월13일에 있었던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정상회담의 구체적인 회담 결과가 여전히 안개 속에 있다. 두 정상이 회담 후 기자회견도 갖지 않았고 성명이나 합의문 발표도 없었으며 그 이후에도 추측만 난무하지 확인된 바는 없는 것이다. 특히 “위험한 거래”로 일컬어진 무기 거래가 그렇다. 회담을 전후해 ‘북한은 러시아에 재래식 무기를 제공하고 러시아는 북한에 식량과 전략 무기 개발을 지원하는 거래가 이뤄질 것’이라는 소문은 무성했지만, 그 성사 여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이 과정에서 ‘익숙한 북한’과 ‘달라진 북한’의 차이도 거듭 확인되었다. 여러 나라의 정부·언론·전문가들은 북한이 극심한 식량난을 완화하기 위해 러시아에 식량 지원을 요청하고 러시아도 이에 응할 것이라고 전망했었다. 이러한 전망의 주된 근거는 윤석열 정부가 상반기에 북한에서 아사자가 속출할 정도로 식량난이 심각하다는 주장에 있었다. 하지만 북한은 이번 북러정상회담에서 러시아의 식량 지원 제의를 거절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와 관련해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주 북한 러시아 대사는 17일 러시아의 <타스통신>을 통해 북한이 러시아의 식량 지원 제의에 대해 “이제 모든 것이 괜찮다”며 정중히 거절했다며, “올해 정말로 그들은 매우 풍작을 거뒀다”고 밝혔다. 이러한 내용은 필자가 5월 중순에 베이징에서 만난 중국의 소식통에 밝힌 내용과도 일치한다. 당시 이 소식통은 ‘북한에서 아사사자 나오고 있다는 정보는 없으며, 오히려 식량 사정이 개선되고 있다’는 취지로 말한 바 있다.

이 사례는 주목할 가치가 있다. 외부에게 ‘익숙한 북한’은 주민들은 굶주리고 경제는 매우 어려운데 김정은 정권은 핵 고도화에만 매달린다는 것이다. 또 북한이 핵무장을 고집하는 한 국제적 고립도 가속화될 것이라고 경고해왔다. 하지만 위의 사례는 ‘달라진 북한’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시사한다. 식량과 경제 사정이 좋아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이러한 추세가 계속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2013년 병진노선 선포 이후, 특히 2021년 8차 당대회를 거치면서 자력갱생과 자급자족에 박차를 가해왔다. 그리고 올해 하반기 국경 봉쇄 해제 이후 북·중, 북·러 교역과 경제협력도 본격화되고 있다. 내적 역량과 외적 환경이 크게 개선되고 있는 셈이다.

북한이 처해 있다는 ‘국제적 고립’도 시각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 한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 등 서방과의 관계 개선 포기는 김정은 정권의 자발적인 선택이다. 한미일이 대화를 하자고 해도 무시나 무응답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반면 중국 및 러시아와의 관계는 1990년대 초반 이래 최상이다. 과거엔 북한이 핵실험이나 탄도미사일을 시험 발사하면 중국과 러시아도 제재에 동참했던 것과는 상황이 판이하게 달라졌다는 것이다.

이게 어떻게 가능해졌을까? 공교롭게도 북한의 “새로운 길”이 미중 전략 경쟁의 격화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한미일의 결속과 맞물렸다. 그러자 중국과 러시아는 북핵 문제를 ‘핵비확산’보다는 ‘세력균형’의 관점으로 바라보곤 북핵을 묵인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우방국인 북한의 핵무장이 미국 및 그 동맹국을 견제하는 데에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본 것이다. 북한도 강대국들 사이의 적대적 경쟁의 틈을 파고들었다. 미중 전략 경쟁의 최전선인 대만 문제, 대리전의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러-우 전쟁과 관련해 중국 및 러시아의 입장을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히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하여 북한이 국제적 고립에 처해 있다기보다는 ‘한미일과의 관계 단절과 중·러와의 관계 강화’를 선택한 것으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이처럼 납득하기도, 인정하기도 힘들겠지만, 북한은 국제무대에서 만만치 않은 행위자로 등장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시선을 모은 북러 정상회담은 이를 알리는 장이었다. 북한이 러시아에 재래식 무기를 제공할 것이라는 ‘추측’만 불러일으켰는데도 그 파장은 상당하다는 것에서도 이를 알 수 있다. 이는 러-우 전쟁이 장기화되고 미중 전략 경쟁이 치열해지며 한미일이 사실상의 군사동맹으로 향할수록 북한의 전략적 입지가 강해질 것이라는 점을 말해준다.

북러 정상회담 이후 중국의 선택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중국이 한미일처럼 북중러 결속을 추구할 경우 그 파장은 엄청나게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의식한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은 러시아와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중국과의 소통 강화에 힘을 쏟고 있다. 윤석열 정부도 중국에 대한 비난·비판의 수위를 낮추면서 한중일 정상회담 성사에 공을 들이고 있다. 중국은 북러 정상회담은 “두 나라 사이의 일”이라며 아직까진 거리를 두고 있다. 북한 및 러시아와의 양자 관계는 중시하겠지만, 3자 결속에는 아직 관심이 없다는 뜻이다.

이러한 중국의 입장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일단 중국의 외교정책 기조 가운데 하나는 ‘신냉전 반대’에 있다. 이를 근거로 한미일의 군사적 결속 움직임이 신냉전을 초래하고 있다고 강력히 반발해온 것이다. 그런데 중국이 북중러 결속을 추구하면 ‘반대한다’는 신냉전을 고착화시킬 위험이 커진다. 또 중국은 북중러 결속이 한미일의 결속 강화 등 반작용을 야기해 한반도의 안정을 더욱 위태롭게 만들 가능성도 우려하고 있다.

중국이 내심 경계하는 일은 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러 간의 무기 거래가 가시화되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이 문제가 논의될 때가 바로 그것이다. 북러 무기 거래는 유엔 안보리 결의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이어서 이런 일이 벌어지면 안보리 차원의 대응은 불가피해진다. 러시아가 거부권을 갖고 있기에 제재 결의가 나올 가능성은 없지만, 미국 등 다른 이사국들이 중국의 입장을 강하게 추궁할 것이라는 점은 자명하다. 중국으로선 무기 거래를 규탄하자니 북한 및 러시아와의 관계가 걸리고, 묵인하자니 국제적 평판 및 서방과의 관계 악화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로 몰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중국은 북한 및 러시아에 무기 거래를 반대한다는 뜻을 비공개적으로 전달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중국이 지금까진 3자 연대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지만, “핵심 가운데 핵심 이익”이라고 공언해온 대만 문제가 중대 변수가 될 수 있다. 최근 한미일 등은 “힘에 의한 현상 변경에 반대한다”며 ‘힘에 의한 대만 해협의 현상 유지’를 위해 결속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내년 1월 대만 총통 선거에서 민진당이 재집권에 성공하면, 중국의 셈법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대만이 독립을 선언하고 미국 등이 이를 인정할 가능성은 없더라도, 대만이 사실상의 독립을 향한 행보를 계속하고 미국 등이 이를 지원할 가능성은 존재한다. 이는 중국의 눈에는 ‘하나의 중국’ 원칙이 뿌리째 흔들리고 평화통일의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그런데 대만 문제와 관련해 중국의 입장을 가장 강력히 지지하는 나라들이 바로 북한과 러시아이다. 이는 미국이 동맹국들을 규합해 중국을 압박·봉쇄할수록 중국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정욱식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wooksi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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