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이 27일 오전 서울 동교동 자택에서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를 비롯한 당 관계자의 방문을 받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부시정책 답습” “강권정치” 고강도 비판
“국민 이긴 독재자 없어” 독재정권 비유도
“국민 이긴 독재자 없어” 독재정권 비유도
찾아가는 사람은 별 기대를 하지 않은 듯한데, 맞이한 사람은 작심한 듯 큰 ‘보따리’를 풀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27일 민주노동당 지도부를 만난 자리에서 이명박 정부에 대해 전례 없이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내는 한편, 사실상 이명박 정부에 대항할 단일대오의 구축을 권유했다.
김 전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이명박 정부 들어 나타나고 있는 ‘퇴행적 현실’에 대한 깊은 우려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명박 정부 9개월을 “10년 전의 시대로 전체 흐름이 역전되는 과정”, “역주행”이라 표현하면서 당면한 문제로 민주주의의 위기, 경제위기와 서민의 고통, 악화되는 남북관계 등 세 가지를 꼽았다.
이는 한편으로 국민의 정부에서 이룬 대표적 성과가 일거에 허물어지는 것을 더는 좌시할 수 없다는 의지의 표현으로도 읽힌다. 김 전 대통령의 복심으로 통하는 박지원 의원은 <한겨레>와 통화에서 “김 전 대통령은 국민과 함께 민주화의 완성, 남북관계의 획기적 개선, 외환 위기 극복 등 세 가지를 이뤘다”며 “그런데 그런 성과가 지금 총체적으로 무너질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충정을 말씀하신 것”이라고 설명했다.
1시간 남짓 이어진 면담에서 김 전 대통령이 특히 역점을 둔 것은 수렁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남북관계다. 그는 이명박 정부가 미 부시 행정부의 실패한 정책을 그대로 답습하며 ‘의도적 파탄’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평소 어휘 선택에 신중하다는 김 전 대통령이 이런 발언을 거침없이 한 데는 나름의 의도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즉 이명박 정부가 북한의 처지나 사정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비핵·개방·3000’이란 강경책을 밀어붙이는 배경에는 자신들의 핵심 지지층인 극우보수세력을 결집시키려는 계산과 저의가 담겨 있다고 보는 것이다. “(대북) 강경기조로 가는 것이 통치하는데 쉽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는 김 전 대통령의 말은 이런 맥락으로 읽힌다.
그는 또 민주주의의 후퇴도 도를 넘었다고 판단한 것 같다. 그는 이명박 정부를 일컬어 ‘강권정치’, ‘역주행’, ‘일시적 반동’ 등으로 불렀다. 또 면담 중 곳곳에서 “국민을 이기고 독재할 사람은 누구도 없다”, “국민들은 역사마다 독재정권을 좌절시켰고, 우리들은 매번 이겼다”며 이명박 정부를 독재정권에 비겼다.
김 전 대통령은 이런 진단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민주개혁세력 전체를 아우르는 ‘광범위한 민주연합’의 구축을 구체적으로 주문했다. 민주당-민주노동당-시민사회세력의 연합전선, 사실상의 ‘반이명박 전선’을 만들어 “역주행을 저지하는 투쟁”을 해나가라고 당부했다.
이에 따라 지난 25일 정세균-강기갑 대표 회담 이후 실무라인에서 검토되고 있는 ‘민주-민노 공조’에도 한층 힘이 실리게 됐다. 전면적 위기감이 두 당의 공조를 부추기는 측면도 있다.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은, 이르면 28일 두 당의 공조 등 민주연합과 관련한 구체적 합의 사항을 내놓기로 했다.
강희철 기자 hckang@hani.co.kr
강희철 기자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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