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순 북한병사 ‘이렇게 똑똑’…사단장의 재연 최근 북한군이 귀순한 강원도 고성군 최전방관측소 부대에서 12일 조성직 사단장(오른쪽)이 국회 국방위원들에게 귀순 북한군이 생활관 문을 두드린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고성/사진공동취재단
국회 국방위, 귀순경로 보고받아
“상관 폭행 뒤 근무지 이탈” 진술
“상관 폭행 뒤 근무지 이탈” 진술
지난 2일 밤 강원도 고성군 22사단에서 철책을 넘은 뒤 소초 문을 두드려 귀순한 북한 병사는 3중 철책을 넘은 직후 귀순 의사를 밝히기 위해 철책선 바로 옆 초소로 갔지만 남쪽 병력이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북한 병사는 ‘초소→경비대 숙소→생활관(소초)’ 등지를 헤매며 3차례 이동한 뒤에야 가까스로 귀순 뜻을 전할 수 있었던 셈이다.
국회 국방위원회 유승민 위원장 등 7명의 여야 의원들은 12일 북한 병사가 귀순한 22사단 소초를 방문해 당시 군의 경계 상황과 귀순 경로 등을 보고받았다. 조성직 22사단장(소장)은 “북한 병사는 철책으로부터 50여㎞ 떨어진 부대에서 상관을 폭행한 뒤 지난 9월29일 새벽 경계근무를 서던 도중 이탈했다는 진술을 했다”며 귀순 상황을 설명했다.
당시 3중 철조망을 넘은 북한 병사는 70~80m 동쪽에 있는 초소로 갔지만 그곳엔 경계병력이 없어서 귀순 의사를 전할 수 없었다. 류제승 8군단장은 “해당 초소는 상시 운영되는 초소가 아니라 평소에는 경계병력이 이동 순찰할 때 특이사항을 점검한 이후 다시 돌아가는 기점”이라며 “북한 병사가 철책을 넘어올 당시엔 경계병력이 순찰을 하고 돌아간 이후였다”고 설명했다.
북한 병사는 다시 불빛이 보이는 동쪽으로 이동해 처음 넘었던 철책에서 250m 정도 떨어진 동해선 경비대 숙소 입구에서 출입문을 두드렸지만 2중 유리문 안쪽 상황실에서 근무하던 병력은 이를 알아채지 못했다. 결국 북한 병사는 다시 30m 옆으로 이동해 소초의 유리문을 두드렸고 세번째 시도 끝에 귀순 뜻을 밝힐 수 있었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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