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후 북한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남북 이산가족 단체상봉 행사에서 북쪽 참석자들이 눈을 맞으며 상봉장으로 향하고 있다. 금강산/연합뉴스 사진공동취재단
기억속에는 나이어린 누이·딸·아들이…
응석받이 아들 65살 노인돼
90살 아버지 앞에서 눈물
87살 북쪽 아내에게 “미안하다”
응석받이 아들 65살 노인돼
90살 아버지 앞에서 눈물
87살 북쪽 아내에게 “미안하다”
3년4개월 만에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다시 열린 북쪽 금강산. 남쪽 이산가족 상봉단 140여명과 북쪽 가족 180여명이 만난 행사장에선 오래도록 만나지 못한 서러움과 상봉의 기쁨이 한데 엉켜 눈물바다를 이뤘다.
응석받이였던 아들은 예순다섯 노인이 되어 아흔살 아버지 앞에 섰다. 아버지는 하릴없는 세월의 무게 앞에서 그저 “미안하다”는 말만 되뇌었다. 김영환(90)씨는 북에 남기고 온 아내 김명옥(87)씨와 아들 대성(65)씨를 만났다. 이번 상봉단 82명 가운데 배우자를 만난 사람은 김씨가 유일하다. 김씨는 6·25 때 인민군을 피해 혼자 남쪽으로 ‘잠시’ 내려왔다가, 그만 ‘64년 동안’ 가족과 헤어져야 했다. 김 할아버지는 이후 남쪽에서 재혼해 4남1녀를 뒀다. 김 할아버지와 이번 상봉에 동행한 남쪽 아들 세진(57)씨는 “아버지는 젊은 시절에 북쪽에 가족들을 두고 왔다는 미안함을 평생 안고 살았다”며 “언제나 북쪽 가족들을 보고 싶고, 만나면 안아주고 싶다고 말씀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64년 만에 만난 부부는 대화를 잇지 못했다. 그 세월이 젊디젊던 남편과 부인의 귀를 망가뜨려 서로의 목소리를 거의 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늙었네.” 환갑을 넘긴 아들을 만난 아버지의 첫마디였다. 이 말 한마디를 하고 부자는 얼싸안고 울었다. 아버지는 지난해 이산가족 상봉 대상자로 선정돼 북쪽에 아내의 생사를 확인한 뒤에야 북한에 아내와 함께 아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강능환(92)씨가 북쪽을 떠날 때 아내의 뱃속에 있던 아들은 이미 환갑을 넘긴 62살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산 세월이 한스럽고 또 한스러웠다. 그래도 핏줄인지라 굽은 등과 갸름한 얼굴이 닮았다. 한눈에 아버지와 아들이었다. 강씨는 아버지 얼굴도 모르고 살아온 아들의 얼굴을 계속 매만졌다. 아들은 그리움에, 아버지는 미안함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김명복(66)씨와 명자(68)씨는 아버지의 유언장을 앞에 두고 잠시 할 말을 잃었다. 10년 전 세상을 뜬 아버지의 유언장에는 “내가 죽더라도 북쪽에 혼자 남은 큰딸 명자를 꼭 찾으라”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군청에서 일하던 아버지는 6·25가 나던 1950년 혼자 남쪽으로 향했고, 어머니는 큰딸인 명자씨를 남겨둔 채 1951년 1·4후퇴 때 나어린 명복씨와 동생만 데리고 남쪽으로 왔다. 명복씨는 “생전에 어머니도 아버지께 ‘당신이 먼저 남쪽으로 가는 바람에 명자를 데리고 오지 못했다’고 원망할 만큼 언니를 그리워하고, 또 미안해했다”고 말했다.
이영실(88) 할머니는 북쪽의 딸 동명숙(67)씨와 동생 정실(85·여)씨, 시누이 동선애(76)씨를 만났다. 남쪽에서 함께 살던 이씨의 남편은 4년 전 세상을 떠났다. 이씨와 남편은 두 딸을 시부모에게 맡기고 ‘잠시’ 남쪽으로 피난을 왔다가 그 뒤로 두 딸을 만나지 못했다. 치매를 앓는 이씨는 60여년 만에 다시 만난 딸을 알아보지 못했다. 북쪽에 두고 온 딸들 생각에 울던 지난 날은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다. 그 이야기를 남쪽에서 낳은 딸 성숙씨가 대신 북쪽의 언니 명숙씨에게 전했다.
손기호(91)씨는 60여년 만에 만난 딸 손인복(60)씨를 눈앞에 두고 말을 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1·4 후퇴 때 딸을 집에 두고 남쪽으로 내려온 게 한없이 죄스럽게 느껴졌다. 딸도 “아버지, 못난 딸을 찾아오셔서 고마워요”라며 품에 안겼다. 아버지는 딸의 손을 놓지 못했다. 그러나 말없는 아버지에게 인복씨는 “이런 일이 있으니 사는 거지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수십년 세월을 건너 마주앉은 가족들이 이산의 아픔을 달래던 날, 금강산에는 함박눈이 소복이 내렸다. 그 눈이 서럽고도 아름다웠다.
금강산/공동취재단,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박운형씨의 아들 박철씨가 삼촌 박운화씨를 만나 큰절을 올리고 있다. 금강산/연합뉴스 사진공동취재단
김성윤씨(오른쪽)가 여동생과 손을 맞잡은 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금강산/연합뉴스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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