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평양에는 갖가지 건설이 한창이다. 이와 관련해 정은이 경상대 연구교수는 최근 중국 단둥 현지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평양에 주택 수요층이 늘어나면서 20만달러짜리 주택도 등장했다”고 전한다. 사진은 지난 2월15일 평양 시내 대규모 주택단지인 ‘미래과학자거리’ 건설 현장의 모습. 평양/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싱크탱크 광장] 중국 단둥서 본 북 주택시장 동향
“평양에 20만달러 아파트가 등장했다고 합니다.”
지난 1~2월 두달 동안 중국 단둥에 머물면서 북한 주택시장 동향을 파악하고 돌아온 정은이 경상대 연구교수는 북한의 주택 가격이 빠른 속도로 올라가고 있다고 전했다. 2014년 7월 그가 단둥에서 파악한 평양 아파트의 최고 시세는 10만달러(약 1억900만원)였다. 물론 20만달러짜리 아파트는 그 10만달러 아파트가 6개월 사이에 두배로 뛴 것은 아니다. 그러나 20만달러짜리 아파트의 등장은 평양 아파트의 고급화, 대형화, 고가격화가 그만큼 빠르게 진행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정은이 교수는 북한 주택 시장과 관련해서는 국내 최고의 권위자라고 할 수 있다. 그는 2014년 10월 말 열린 세계북한학대회에서 ‘평양에 10만달러 아파트가 생겼다’는 논문으로 언론의 가장 큰 관심을 받았다. 또 2013년에는 북한 함경북도 무산의 주택 가격을 동별로 구체적으로 파악한 논문을 발표해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이번 단둥 체류기간에 수집한 자료들을 기초로 북한의 주택시장이 남한처럼 부동산시장화하는 징후들도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한다. 주택시장이 단순히 주거를 목적으로 주택을 구입하는 시장이라면, 부동산시장은 주거 목적과 함께 투자 목적을 가진 주택 매입 세력이 등장할 때 형성되는 것이다.
정 교수가 이렇게 북한 주택시장에 대해 앞서가는 논문을 발표할 수 있는 것은 해마다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의 4개월을 온전히 단둥에 거주하면서 북한 주택시장 동향 등을 연구하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북한의 주택시장에 관심을 갖는 이유에 대해 북한 주택시장이 △북한 내 시장경제의 전개 방향 △김정은 정권 경제정책의 방향성 △북한 내 자산계급의 등장과 빈부 격차의 확대 등 많은 정보를 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아래는 정 교수와 지난달 30일 진행한 인터뷰를 주제별로 정리한 것이다.
■ 최고의 수익률 자랑하는 북한 주택시장
정 교수는 최근 북한 주택시장에서 일어난 큰 변화 중 하나로 북한 무역회사들의 주택시장 참여를 꼽았다. 이는 무엇보다 주택 건축 및 판매가 무역업보다도 수익성이 좋은 사업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라고 한다. 왜 그럴까. 정 교수는 이에 대해 현재 북한 주택시장이 “잠재적 수요는 많지만 공급자가 한정되어 있는 공급독점시장”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즉, 집을 짓기만 하면 파는 것은 문제가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다만 여기에는 조건이 있다. 무역회사들이 주택시장에 참여할 때 꼭 북한의 관료조직을 잘 아는 사람을 끼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북한 내 주택 거래는 원칙적으로는 불법이다. 이런 상황에서 주택 입주자에게 합법적인 ‘입사증’을 내주기 위해서는 관료조직을 잘 다룰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정 교수는 아무리 자금력이 있는 인물이라도 “모든 제도를 클리어할 수 있는 사람을 끼고 하지 않으면 사업이 죽는다”고 말한다.
■ 주택 매입 세력의 성장
정 교수는 북한의 주택 가격은 쌀과 달러(환율)에 연동돼 있다고 설명한다. 이때 쌀의 계산 단위로는 톤을 사용한다. 이렇게 거대한 양의 쌀과 큰 금액의 달러를 동원해야 하는 주택시장이 활성화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한 지불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북한에서 속속 생겨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들의 지불능력, 다시 말해 가처분소득이 증가하고 있는 것은 북한의 주택이 날로 고급화하고 있는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북한의 일부 고급주택에는 1990년대에 이미 ‘전실’ 개념이 도입됐다. 여기서 전실은 석탄을 때는 재래식 부엌이 아닌 ‘싱크대가 있는 주방’과 거실을 한 공간에 둔 리빙룸의 개념이다. 그 뒤에도 북한의 주택은 최고급 중국산 자재를 사용하는 주택이 등장하는 등 날로 고급화해가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주택 수요자인 자산가가 늘고 있다는 것은 빈부 격차의 확대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 반대편에는 자신이 살던 집을 팔 수밖에 없는 몰락한 주민들이 있기 때문이다. 북한 주택시장 활성화는 북한판 빈부 격차 확대의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 북한 주택시장 전망
정 교수는 북한 부동산시장이 앞으로도 상당 기간 상승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한다. 1957년 전후로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로 인해 북한도 남한처럼 1980년대 초반부터 주택수요가 폭증했다. 그런데 ‘고난의 행군’ 등으로 인해 억눌러졌다고 정 교수는 진단한다. 1990년대 중반 식량난으로 아사자가 발생했던 고난의 행군 시기에는 대량 탈북 사태가 발생해 국경 일대에서는 오히려 빈집이 늘어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 시장화가 진척되고 구매력을 갖춘 사람들이 등장하면서 2000년대 들어 제일 먼저 이 빈집들이 싼값에 매입되기 시작했다. 주택시장 활성화의 첫발이 떼어진 것이다. 이후 북한의 집값은 빠르게 상승했지만, 김정일 정권에서 시장을 견제하려고 시행한 2009년 화폐개혁을 맞이하면서 잠시 주춤했다. 그러나 다시 북한 정부가 시장 용인 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2011~2014년 집값이 급등했다.
정 교수는 당분간 북한 주택 가격의 상승세가 유지될 것으로 전망한다. 베이비붐 세대는 물론이고 신규 자산가 등에 의한 주택수요가 지속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 북한 주택시장과 김정은의 경제개혁
정 교수는 북한의 김정은 정권이 주택시장을 제도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는 주택시장이 제도 바깥에 있음으로써 국가의 공식 경제부문이 많은 손실을 보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추정된다.
정 교수는 한 예로 1990년대 주민간 주택 거래를 설명했다. 당시 거래량은 크게 증가했지만 법적 담보를 해결하지 못해 주택 거래를 둘러싼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서 부패도 만연했다. 입사증 발급을 담당하는 인민위원회 도시경영국 주택배정과의 경우, 말단 직원들마저 일반인의 불법 거래 주택을 몰수한 뒤 다시 자신들이 장사를 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주택시장이 이렇게 개인간 돈벌이에 그침으로써 국가재정 확대에 기여하지는 못한 것이다.
정 교수는 김정은 정부가 2013년 ‘주택위탁사업소’를 설치함으로써 이런 폐단을 줄이려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주택위탁사업소는 주민들로부터 돈을 받고 집을 새로 지어주는 기능을 하는 공조직이다. 이 기구의 존재는 현재의 북한 경제가 계획과 시장이 공존하고 있는 상태임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다. 정 교수는 이를 시장 메커니즘을 제도화하려는 시도의 하나로 본다. 그는 이를 “김정은 체제가 ‘선군경제’라는 유훈통치를 넘어서서 사회주의식 자본주의의 길로 향하고 있다는 증표”라고 평가했다.
■ 주택시장은 시장경제 학습장
정 교수는 주택시장은 김정은 정부뿐 아니라 북한 주민들에게도 거대한 시장경제 학습장이 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무엇보다도 북한의 주택 가격이 이미 교통, 시장, 배후시설, 심지어는 건물의 층수 등 다양한 요인을 고려해 결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한 예로 함경북도 무산의 아파트 가격을 꼽는다. 무산에서 현재 가장 비싸게 거래되는 아파트는 ‘7층짜리 공로자 아파트’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7층이 아닌 5층이 가장 비싸다고 한다. 엘리베이터가 없기 때문에 땔감 등을 옮기기 좋은 5층이 7층보다 가격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1·2층 등 저층이 인기가 없는 이유는 남한과 같다고 한다. 이처럼 북한에서도 다양한 요소들이 주택의 시장가격 형성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 중국인들의 북한 부동산시장 진출
정 교수는 일부 중국인들이 이미 북한 부동산시장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그가 단둥에서 인터뷰한 북한 거주 화교들에 따르면, 이미 중국인 중에는 부동산을 보고 북한에 투자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고 한다. 북한은 아직까진 주택을 외국인에게 전면 개방하지는 않고 있다. 다만 외국인이 북한에 투자하면 임시거주 목적으로 주택을 살 수 있게 한다고 한다. 외국인에 대한 규제가 완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평양 등지에는 임가공이나 태양열발전 등 북한이 필요로 하는 분야에 투자함과 동시에 주택과 땅을 취득하는 중국인이 생겨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현재진행형으로 이윤을 얻고, 다른 한편으로는 토지를 통해 미래의 이윤을 얻으려는 전략이다.
■ 북한판 복부인 등장하나
“아직은 그 단계까지는 아니다. 그러나 징후는 나타나고 있다.” 정 교수는 북한의 경우 1가구 1주택 원칙이 비교적 철저히 지켜지고 있어 투기 목적으로 집을 사고파는 복부인은 아직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고 밝힌다. 그러나 어머니 이름으로 집을 산다든지, 집이 완공되기 전에 싼 가격에 선투자를 한 뒤 집이 완공되면 비싼 가격에 파는 행위들이 등장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는 남한의 복부인이 보였던 행위와 유사한 것들이다. 정 교수는 이들의 행동이 확산하면서 북한에서도 주거를 목적으로 한 주택 개념이 투자를 목적으로 한 부동산 개념으로 바뀌어가고 있다고 설명한다.
정 교수는 이처럼 북한의 주택시장이 부동산시장화하는 것이나, 김정은 정권에서 이를 제도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모습을 볼 때, 북한 경제의 시장화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확대 강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따라 북한도 경제성장과 함께 ‘1970년 강남’이 보여준 여러 병폐를 되풀이할지, 아니면 그와는 다른 모습을 보일지 주목된다.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tr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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