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정치 국방·북한

지뢰 폭발 사건, ‘응징’보다 장병들의 안전 확보부터

등록 2015-08-14 11:51수정 2015-08-21 08:53

비무장지대(DMZ) 지뢰폭발 사고로 남북관계에 군사적 긴장이 고조된 가운데 11일 오후 장병들이 서부전선 철책 부근에서 경계활동을 하고 있다. 길가에 지뢰 매설을 알리는 안내판이 붙어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비무장지대(DMZ) 지뢰폭발 사고로 남북관계에 군사적 긴장이 고조된 가운데 11일 오후 장병들이 서부전선 철책 부근에서 경계활동을 하고 있다. 길가에 지뢰 매설을 알리는 안내판이 붙어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더(The) 친절한 기자들]
남·북 철책과 경계선 폭만 최소 2~3㎞
현재 인력으로 물샐 틈없는 경계는 ‘불가능’
“수색작전에 지뢰 탐지기를 휴대하라”
지침 내려졌지만 수색팀은 따르지 않아
철책 감지센서 등 GOP 시스템 과학화 필요
4일 비무장지대(DMZ)에서 지뢰가 폭발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하재헌(21) 하사는 오른쪽 무릎 위와 왼쪽 무릎 아래 다리가 절단됐습니다. 함께 있던 김정원(23) 하사도 하 하사를 후송하던 도중 두 번째 지뢰가 폭발해 오른쪽 발목을 잃었습니다. 정부는 10일 이 사건이 “북한 소행”이라고 발표했습니다. 북한은 2010년 천안함 침몰 사건 때 한국 정부가 “북한 소행”이라고 발표하고 30분 만에 즉각 이 주장을 부인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지뢰 폭발 사건에 대해선 나흘째가 되어서야 자신들의 관여를 부인했습니다. 북한 소행일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는 정황입니다.

국방부는 북한에 대한 공세를 연일 강화하고 있습니다. 10일 11년 만에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습니다. “대북 심리전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조처”라고 밝혔습니다. 국방부는 “현재 4개 지역에서 방송하는 대북 확성기 방송을 이달 중 모든 전선에 걸쳐 전면 시행할 예정”이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방송을 재개하면서 군사대비 태세도 격상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12일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해 “원점 타격 외에 다른 응징 방법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군 관계자는 “국민들이 ‘시원하다’고 느낄 보복 방안에 대해 구체적인 시기와 방법 등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습니다. 11일에는 지뢰 폭발 현장에 있었던 수색대의 문시준 소위, 정교성 중사, 박준호 상병을 기자회견장에 세웠습니다. 문 소위는 이 자리에서 “다시 그곳으로 가서 적 초소(GP)를 부숴버리고 싶은 마음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종합하면, 지뢰 폭발 사건 이후 국방부의 대응은 ‘북한에 어떻게 응징하냐’에 집중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인상적인 뉴스가 하나 보도됐습니다. 몸의 일부를 잃은 김정원 하사의 말이었습니다. 김 하사는 11일 “북한에 대해 강경대응을 하는 것은 북한 의도에 넘어가는 것”이라며 “같이 있었던 동료들이 안 다쳤다는 말을 듣고 천만다행이라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김 하사의 이 말은 온통 ‘응징’과 ‘보복’에 집중됐던 여론에 중요한 사실을 하나 환기해줬습니다. 군은 최전선에서 근무하는 장병들이 적의 위험에 최소한으로 노출될 수 있는 시스템을 최우선으로 챙겨야 한다는 사실 말입니다. 실제 장병들을 군에 보내야 하는 부모들의 걱정은 "어떻게 응징하냐"보단 "어떻게 이런 참사가 재발하지 않도록 할 것인가"라는 점에 닿아 있습니다. 적대의 벼랑 끝에 위치한 병사들의 생명 문제를 무엇보다 우선해야 하는 까닭입니다.

지난 4일 비무장지대(DMZ)에서 우리 군 수색대원 2명에게 중상을 입힌 지뢰 폭발 사고는 군사분계선(MDL)을 몰래 넘어온 북한군이 파묻은 목함지뢰가 터진 것으로 조사됐다. 사진은 합동참모본부가 이날 공개한 사고 당시 열상감시장비(TOD)로 촬영된 지뢰 폭발 장면. 사진 합동참모본부 제공
지난 4일 비무장지대(DMZ)에서 우리 군 수색대원 2명에게 중상을 입힌 지뢰 폭발 사고는 군사분계선(MDL)을 몰래 넘어온 북한군이 파묻은 목함지뢰가 터진 것으로 조사됐다. 사진은 합동참모본부가 이날 공개한 사고 당시 열상감시장비(TOD)로 촬영된 지뢰 폭발 장면. 사진 합동참모본부 제공
이런 대응의 일환일까요. 합동참모본부는 국회 보고 자료에서 “GP 인근 지역을 깨끗하게 만드는 ‘불모지 작전’과 수목 제거 작전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중점 감시구역 감시율을 높일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GP 인근 수목 제거 작업을 통해 경계할 수 있는 시야를 확보하겠다는 말은 이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군이 반복해서 내놓는 대책입니다. 더 집중해야 할 건 차라리 근거리 감시레이더 등 DMZ 감시장비 운용체계의 보완입니다. 합동참모본부는 이 보완책도 함께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 보완책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혹시 모를 침투 작전에 대비하는 안전장치로 몇 년 동안 제기된 ‘철책 감지 센서’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는 군입니다. 철책 감지 센서 등을 추진한다는 ‘GOP 과학화 사업’은 몇 년째 “실행할 예정”이란 말로만 실행되고 있습니다. 수조 원짜리 방위산업 비리를 보면서 기가 찰 수밖에 없는 건 그런 까닭입니다.

이렇게 시스템이 보완되지 않는 환경이니 이런 사건이 발생하면 늘 등장하는 비판이 있습니다. 군의 기강 해이와 ‘경계 허술’론입니다. 이번 사고를 두고도 일부에서 “철책 경계가 뚫린 채 북한이 지뢰를 매설하는 것도 몰랐던 군 장병들이 사고의 원인을 제공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빠지지 않고 나왔습니다. 돈이 드는 시스템 구축보다 군 병력을 최대한 동원하고 이들의 정신력을 강화해 경계 태세를 정비하라는 말이 되겠지요.

그런데 철책 경계 중심의 ‘경계 허술’론은 사실 포인트를 잘못 짚고 있습니다. 철책 경계를 통해 북한군이 한 명도 철책을 뚫고 내려오지 못하게 막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한반도의 허리를 가르는 휴전선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부터 설명하겠습니다.

휴전선은 여러 겹의 철책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남에서 북으로 올라가는 순서로 살펴보면, 일단 전초 부대(GOP)가 있고, 첫 번째 남쪽 철책인 통문이 있습니다. 보통 TV에서 전방 군인들이 순찰하는 장면에 등장하는 철책이 바로 통문입니다. 통문은 높이가 4m 정도 됩니다. 통문을 넘어 북으로 올라가면 민간인 통제 구역이 나옵니다. 통문부터 다음 철책인 추진 철책(3m 정도 높이)까지 지역을 ‘1단계’라고 부릅니다. 추진 철책과 군사분계선(MDL) 사이의 지역은 ‘2단계’입니다. MDL에는 철책이 없고 푯말만으로 경계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1, 2단계 지역의 병사들은 최전방 경계초소(GP)를 세우고, 매복을 하며, 경계 근무를 서고, 생활을 합니다. MDL을 넘으면 북쪽 땅이 나오고, 바로 북한의 전기 철책이 나옵니다. 이번 사고는 남쪽의 추진 철책에서 발생했습니다. 북한군의 소행이 맞다면, 북한군이 내려와선 안 되는 지역으로 침입해 지뢰를 매설했다는 얘기가 됩니다. 명백한 정전협정 위반입니다.

그런데 휴전선은 산악길로 이어져 있는 260㎞ 길이의 긴 경계선입니다. 남과 북의 철책과 경계선 사이 폭만 최소 2㎞에서 3㎞ 정도입니다. 좌우, 남북 상하 폭이 꽤나 넓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지역별로 다르지만, 1개 소대는 좌우 길이 5㎞ 정도 영역의 경계를 맡습니다. 어떤 곳은 병사 2명이 경계를 서는 소초가 차로 5~6분 거리로 떨어진 곳도 있습니다. 1개 소대라고 해도 30명 정도로 구성되어 있고, 이들이 3교대로 돌아가며 24시간 경계 근무를 섭니다. 이 정도 인력으로 좌우 5㎞를 물샐 틈없이 경계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러니 북한군이 내려와 지뢰를 매설하는 장면을 포착해내는 경계도 불가능하다고 봐야 합니다.

게다가 군에는 ‘전방 주시보다 후방 주시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북에서 내려오는 병사나 귀순자보다 장교들의 순찰이 더 경계해야 할 대상이란 말입니다. 병사들이 경계 근무에만 집중할 수도 없습니다. GOP 병사들의 주 임무는 철조망 수리, 주기적으로 감시용 돌 고아 올리기, 통신선 정비 등입니다. 하지만 병사들은 사실 제초 작업을 하는 시간이 더 길고, 명령에 따라 멀쩡한 장소를 청소해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합니다. 특히 사단장이나 영관급 장교가 순시를 온다고 하면 구석구석 청소하는 데 온 신경을 쏟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한국군의 방어 태세도 살펴봐야 합니다. 한국군의 휴전선 방어 태세는 1~2명의 병사들이 철책을 넘어오는 것을 막는 방식이 아닙니다. 중대나 대대 규모의 병력이 전면전을 위해 남하할 때 철책에서 시간을 끌도록 만든 방어 태세입니다. 이러니 북한군 병사 1~2명이 지뢰를 매설하는 장면을 포착하지 못한 것을 두고 군의 ‘경계 허술’이라는 비판을 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샐 틈없는 철책 경계’보다 중요한 건 철책 감지 센서 등을 포함한 GOP 과학화 시스템 구축일겁니다.

물론 시스템만 구축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진 않습니다. 시스템을 작동하게 만드는 것도 결국 사람이지요. 다만 앞서 말씀드렸듯, 물샐 틈없는 경계에 집중하라는 말보다는 안전 태세를 갖추는 경계 태세에 더 집중해야 할 겁니다. 이번 사건에서 무엇보다 아쉬운 건, 피해를 본 수색대원들이 지뢰 탐지기를 휴대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군은 북한의 지뢰 매설 동향을 이미 포착하고 있었습니다. 정미경 새누리당 의원은 12일 국회 국방위에서 "(북한의) 지뢰 매설 동향을 (작년부터) 포착해 놓고, 군 수뇌부가 말만 ’유념하라’고 했다"며 "충분히 막을 수 있었는데 못 막았다. 그 책임은 누가 질 건가"라고 말했습니다. 윤후덕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같은 날 국방위에서 공개한 문서를 보면, 이번 사고를 당한 수색대원들이 속한 육군 1사단은 5월과 6월 두 차례에 걸쳐 ‘지뢰 탐지기를 휴대하고 작전하라’, ‘투입 전 수색대대장·중대장은 준비상태를 확인하라’는 지침을 내렸습니다. 특히 사고 발생일인 지난 4일 사고 지역 관할 상급부대가 “수색작전에 지뢰 탐지기를 휴대하라”는 지침도 내렸습니다. 이를 보면 지뢰 탐지기가 전방 각 부대에 배치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색팀은 이 지침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폭발한 지뢰가 목함 지뢰, 즉 글자 그대로 나무 상자로 된 지뢰이기 때문에 금속 성분을 탐지하는 지뢰 탐지기로는 탐지할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플라스틱 지뢰와 달리 목함 지뢰에는 지뢰 탐지기가 포착할 수 있는 철제 성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번에 폭발한 목함 지뢰는 땅밑 5㎝ 정도 깊이에 매설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지뢰 탐지기가 있었다면 충분히 탐지할 수 있는 깊이입니다. 철책 바로 아래 묻혀 있었기 때문에, 철책을 구성하고 있는 금속 때문에 탐지에 방해를 받을 순 있었겠지만 말이죠.

그런데 왜 지침이 이행되지 않았던 걸까요. 지뢰 탐지기를 제공하기만 하고, 별다른 운용법을 교육하지 않았던 걸까요. 아니면 지뢰 탐지기가 북한이 잘 쓰는 목함 지뢰까지 포착할 수 있다는 사실이 제대로 공유되지 않았던 걸까요. 혹은 수색대가 안이하게 대응했던 걸까요. 지뢰 방호용 덧신을 착용하지 않았던 사실과 함께 이번 사건에서 가장 안타까운 장면입니다. 몸의 일부를 잃는 폭발 사건을 사전에 방지할 수도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군은 윤 의원이 이런 사실을 공개하기 전까지 이 문제를 공표하지 않았습니다. "군이 지휘 불이행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일부러 사실을 은폐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군이 북한에 대해 "강력한 응징과 보복"을 말하고, 폭발 사건으로 동료의 몸이 부서지는 장면을 눈앞에서 본 장병들을 사건 발생 7일 만에 언론 카메라 앞에 세워 ‘응징의 의지’를 공표하는 모습을 의심의 눈초리로 볼 수밖에 없는 까닭입니다. 군이 우선해야 할 건 지뢰 탐지기 등 장병의 안전 태세와 지침이 이행되지 않은 사실에 대한 명명백백한 조사입니다. 이어서 GOP 과학화 사업을 제대로 실행하고, 이 시스템을 이행할 장병들의 안전 관련 경계 태세를 재점검하는 겁니다. 포인트가 어긋난 대응은 또 다른 참사를 불러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한국군 장병들의 안전 아닐까요.

※ 이 기사에는 월간 <나·들> 2013년 1월호에 실린 기사 ’비는 휴가 많았다는데 전방 경계병은?’ http://na-dle.hani.co.kr/arti/issue/97.html 의 취재 내용을 재구성한 서술이 담겨 있습니다.

이재훈 기자 nang@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평화를 위해 당당한 목소리가 필요합니다
한겨레와 함께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정치 많이 보는 기사

‘야당이 박수 한번 안 쳐줬다’ 윤석열에…“국힘 데리고 북한 가라” 1.

‘야당이 박수 한번 안 쳐줬다’ 윤석열에…“국힘 데리고 북한 가라”

윤석열 ‘북풍’ 부메랑…북한 ‘평양 무인기’ 국제기구 조사 요청 2.

윤석열 ‘북풍’ 부메랑…북한 ‘평양 무인기’ 국제기구 조사 요청

명태균 쪽 “비상계엄도 김건희 때문에 터진 것” 3.

명태균 쪽 “비상계엄도 김건희 때문에 터진 것”

이재명, 연설 중 국힘 소리 지르자 “들을게요, 말씀하세요” [현장] 4.

이재명, 연설 중 국힘 소리 지르자 “들을게요, 말씀하세요” [현장]

‘윤석열에 투표’ 온건·중도 보수, 내란 뒤 호감도 ‘낙제점’ 5.

‘윤석열에 투표’ 온건·중도 보수, 내란 뒤 호감도 ‘낙제점’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