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2(KLIA2·제2청사)에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이 독극물 공격을 받고 도움을 요청한 안내데스크. 연합뉴스.
왜 사람들이 북적이는 공공 장소에서 살해했을까.
김정남이 13일 오전 살해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 제2청사의 항공권 무인발매기 주변은 오가는 인파가 넘쳐나는 곳이다. 통상 암살은 은밀한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이뤄진다는 통념과 어긋나는 장소 선택이다. 실제 과거 정치적 암살은 대체로 은밀히 이뤄졌다. 1970년대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은 해외에서 ‘유신 반대’ 운동을 하다 어느날 갑자기 실종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로 암살됐을 것으로 의심됐지만, 워낙 은밀하게 이뤄져 크게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북한이 김정남을 암살한 것이라면 이런 사실이 외부에 알려져서 좋을 게 없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에 대한 비판을 피할 수 없고, 이는 북한의 이미지를 악화시키기 때문이다. 북한이 범행을 계획·실행했다면 이런 간단한 셈법을 몰랐을 리 없다. 이런 이유로 북한이 이번 범행의 배후라는 주장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북한이 범행 장소를 따질 여유를 부릴 수 없는 불가피한 상황에 몰렸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익명의 한 남북관계 전문가는 “예컨대 북한이 김정남을 감시하다가 갑작스럽게 제3국 망명 시도 정황 같은 것을 포착했을 수 있다. 김정남이 마카오로 돌아가면 북한도 암살하기 어렵다. 북-중 관계가 부담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마카오행 항공기를 타기 직전 마지막 순간 공항에서라도 암살해야 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사람이 북적대는 곳이 오히려 범행하기 더 좋은 장소일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연합뉴스>는 쿠알라룸푸르 현지 항공사 관계자를 인용해 “사건 장소인 제2청사는 주로 저가항공사들이 있는 곳으로 종일 사람이 끊이질 않고 붐빌 뿐더러 누구도 다른 사람을 신경쓰지 않기 때문에 그런 점을 노려 범행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박병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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