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진정으로 전시작전권 행사를 원하면 양국의 현 정부가 실행 준비를 끝낼 수 있는 2009년을 택하기 바란다. 서울과 워싱턴에서 차기 행정부가 들어서면 또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2012년으로 정하면 연기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때 가서 또다시 3년이 더 필요하다고 내세울 것이다. 3년이라는 시간이 무한한 시간으로 바뀔 수도 있다.”
2006년 9월7일 미국 워싱턴에서 송민순 당시 청와대 안보실장을 만난 스티븐 해들리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렇게 말했다. 참여정부가 전작권 환수를 서두르지 않으면 이후 정권이 무기한 미룰 것이란 이 ‘오싹한 예언’은 무섭게 적중했다. 박근혜 정부가 사실상 ‘무기한’ 놓아버린 ‘전작권 환수’ 작업의 고삐를 문재인 정부가 다시 죄고 나선 이 시점, 송민순 전 안보실장이 자신의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에서 밝힌 ‘해들리의 경고’는 여전히 유효하다.
회고록을 보면 당시 버웰 벨 주한미군사령관 역시 “한국의 퇴역 장성 그룹 등 일각에서는 한국군의 능력이 미국 수준에 도달해야 전작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지구상에서 자기 군대를 지휘 통제할 나라는 미국 뿐”이라며 2009년이면 전작권 환수가 충분히 가능하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하지만 참여정부는 이러한 미국의 조언과 경고에도 불구하고 군부의 우려, 정치적 비판 등을 고려해 전작권 환수 시점을 2012년으로 못박았다. 송 전 안보실장은 미국에 “(전작권 전환이) 국내에서 과도한 정치 논쟁으로 비화해 문제가 커졌다”며 “우리 군이 추진 중인 조직개편 등 군의 태세를 제대로 갖추려면 2012년은 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고 밝혔다. 결국 참여정부가 막을 내린 뒤, 이명박 정부는 전작권 전환 시점을 3년을 연기했고 마침내 박근혜 정부가 ‘무기한’ 연기를 선언했다.
송 전 안보실장은 회고록에 당시 대화를 공개하며 이렇게 고백했다. “머지않아 해들리의 경고가 현실로 드러났다. (전작권 전환이) 정권교체와 관계없이 진행될 것이라던 나의 판단은 착각이었다. 2009년 이명박 정부는 군사작전권 전환 시기를 2015년으로 늦추고 또 2013년에는 박근혜 정부가 무기한 연기했다. 해들 리가 경고한대로 3년이 무한의 시간으로 바뀌었다.”
송 전 안보실장은 회고록에서 “나는 1989년부터 1992년까지 외교부 안보과장 시절 이래 소파 개정, 방위비 분담, 그리고 무기 구매와 관련된 업무를 다룰 때마다 미국에 군사작전권을 맡겨둔 상태에서 우리가 구상할 수 있는 협상 수단은 낮은 유리 천장 아래의 화초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또한 “주한미군이 다른 지역의 작전에도 관여해야 하는 상태에서 한반도 방어에 집중하는 한국군을 통제한다는 것이 군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타당하지 않기 때문”에라도 전작권 전환이 정권교체와 관계없이 진행될 것이라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2010년 전작권 환수를 참여 정부가 정해놓았던 2012년 4월에서 2015년 12월로 미뤘다. 당시 국방부 대변인은 “한미 양국군이 작전권 전환을 충실하게 준비해왔으며 한국군은 연합방위를 주도할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번 연기 결정은 양국 지도자의 정치적 결단에 따른 것”이라고 발표했다.
‘정치적 결단’은 박근혜 정부 때도 이어졌다. 2014년 10월 한민구 국방장관이 워싱턴서 열린 한미안보협의회의(49차)에서 척 헤이글 미 국방장관과 만나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을 결정하고 발표했다. 말 그대로 환수 조건이 달성될 때 이양받겠단 뜻으로, 이전 정부가 기한을 정해 전작권을 환수하려던 것과 달리 아예 무기한 연기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전작권 환수 무기한 연기로 대선 공약뿐 아니라 국회 비준을 받은 참여 정부의 미군기지 이전협정(YRP·LPP)도 사실상 파기한 결과를 가져왔다. 당시 정부는 “북한 핵·미사일 위협 등 안보환경의 변화”를 이유로 댔다. 이명박 정부 때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지냈던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지난달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나 수석 할 땐 환수해도 된다던 김관진 (청와대) 안보실장 같은 사람들이 그사이 (판단을) 바꿀 상황이 없었다. (전작권 환수론자 중) 북한이 핵실험 안 할 거라 생각한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그걸 전제로 전작권 전환을 준비해온 것”며 박근혜 정부의 ‘무기한 연기’ 결정에 의문을 제기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은 미 일간지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주권국가로서 자국 군에 대한 작전권을 가져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적절한 시기에 환수해야 할 것"이라며 임기 내 전작권 환수 의지를 내비쳤다. 이번 정권 안에서 전작권 환수를 완수하지 못한다면 ‘해들리의 경고’는 두고두고 오싹하게 적중한 예언으로 남을 지 모른다.
임지선 임인택 기자 sun21@hani.co.kr
2005년 6월 노무현 대통령과 미 워싱턴 영빈관에서 만나 악수를 하고 있는 스티븐 해들리 미 국가안보보좌관의 모습. 연합뉴스
송민순 전 청와대 안보실장이 지난해 펴낸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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