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 북한 최고 지도자에 오른 뒤 대외 접촉이 없던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을 우리 정부 당국자가 처음으로 직접 만나 남북관계 개선과 비핵화 등에 관해 논의하는 일이 눈앞에 다가왔다. 이 임무를 수행할 대북 특사를 놓고 문재인 대통령은 다각도의 검토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 특사는 대통령의 ‘대리인’ 역할을 해야하는 만큼 고위급 인사여야 하고, 대통령과 긴밀하고 격의없이 소통하는 복심이면서 한반도 현안을 정확히 꿰뚫고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첫번째 대북 특사단 단장으로 서훈 국가정보원장이 유력하게 거론되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서 원장은 지난 2000년 1차 남북정상회담과 2007년 2차 정상회담을 모두 이끈 문재인 정부 최고의 대북전략통인데다, 문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 구상’ 밑그림을 함께 그린 최측근이다. 서 원장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지난달 9일 방남한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청와대에서 문 대통령을 만날 때 배석했으며, 지난달 25일부터 2박3일간 방남한 김영철 당 중앙위 부위원장(통일전선부장)과의 협의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서 원장은 문 대통령의 최측근 참모임에도 불구하고 야당 쪽에서는 “간첩 잡는 국가정보원장을 특사로 파견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반발이 거세, 특사단 파견이 불러올 정치적 부담을 최소화하려는 문 대통령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미지수다.
서 원장과 함께 유력한 대북 특사로 거론되는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은 남북관계 전문가는 아니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외교·안보 사령탑 역할을 하며 한반도 현안을 전반적으로 조율하는 고위당국자다. 정 실장은 주한미군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배치 등을 둘러싸고 ‘한-미 동맹 균열설’이 나돌던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 방미해 백악관과 무난하게 상황을 정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 특사가 다룰 핵심 주제가 북핵 문제와 북-미 관계라는 점과 한-미 보수여론을 고려할 때, 트럼프 행정부한테서 기본적인 신뢰를 확보한 정 실장을 보내는 게 정치적 부담이 적다는 의견도 청와대 안팎에서 나온다고 전해진다. 정 실장 역시 문 대통령이 김여정 부부장과 면담할 때 배석한 4인 중 한명이다. 또 문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청와대가 유일하게 김영철 부위원장의 방남 당시 우리 쪽이 전한 메시지를 공개한 인물이기도 하다. 정 실장과 서 원장이 역할을 나눠 함께 가는 방안도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특사단에는 김영철 부위원장 등 북한의 2차 고위급대표단의 방남을 조율한 김상균 국정원 차장을 비롯해 청와대 안보실과 통일부 쪽 실무 인력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애초 청와대는 김대중 정부 때 남북관계를 총괄했던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 등 거물급 인사들을 대북 특사단에 포함하는 방안도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 이번에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공식 라인의 고위급 정부당국자를 보내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전해진다. 북-미 모두 원론적으로 ‘대화의 문’을 열고 있는 상황에서 4월께 재개될 전망인 한·미 연합군사훈련 전에 지금의 교착상태를 끝내고 북-미 대화의 돌파구를 실질적으로 열기 위해 문재인 정부가 택한 것이 대북 특사 카드이기 때문이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특사가 북한이 생각하는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듣고 내려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실무선에서 이야기하고 마는 수준은 아니라는 기대”를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번 특사단의 임무를 북-미 대화의 실마리, 즉 어떤식으로든 비핵화에 대한 북쪽의 의지를 확인하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은 최근 <한겨레> 칼럼에서 “김정은으로부터 조건부 비핵화 의지를 이끌어내는 일”을 대북 특사의 역할로 제시했다.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도 “북-미가 대화에 나오게끔 하는 게 특사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며 북한의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 또는 축소 요구와 우리 쪽의 북 핵·미사일 실험 동결 요구에 대한 양쪽의 협의가 관건이라고 내다봤다.
문 대통령은 대북 특사를 일회성으로 끝내지 않을 생각이라고 여권 인사들은 전했다. 문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김영철 부위원장 등 북쪽 대표단을 만나 강조한 “한반도 문제의 본질적 해결”이 단시일 안에 이뤄질 수 없는 만큼, 남북의 최고지도자가 필요로 할 때는 수시로 특사단을 교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지은 김보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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