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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방·북한

철원 ‘상감령’ 때묻지 않은 경관 속 …아직 ‘끝나지 않은 전투’

등록 2019-06-17 13:30수정 2019-06-17 13:38

‘DMZ 평화적 이용’ 한겨레평화포럼

미·중 무역전쟁이 소환한 ‘상감령’
1952년 가을 한국전쟁 때 수만명 사상
화웨이 회장, 대미 항전 사례로 언급
최근 미·중 대립에 ‘기억의 전투’로

‘가랑잎처럼 쌓인 시체’ 비극의 자리
철원 수복지역 ‘농업+전투’ 재건촌 조성
지금도 70~80년대식 집들 거리 곳곳에
2016년 철원 DMZ생태평화공원 들어서

분단과 일상이 공존하는 DMZ
모내기 마친 논 옆에 지뢰 표지판
탐방로 철책 너머에 펼쳐진 풍경
60년넘게 항구적 평화 기다리는 곳
“설령 올해 상황이 여의치 않아도 내년에 뛰어난 인재들이 배출되는 식이라면 그들을 이끌고 상감령을 향해 진격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과 정면 대결 중인 중국 통신업체 화웨이의 창업자 겸 회장 런정페이가 지난달 26일 중국 텔레비전 대담프로그램에서 한 말이다. 최근 중국은 미국과의 경제 전쟁을 맞아 국민들의 대미 항전 태세를 끌어올리기 위해 `상감령 정신’을 부쩍 강조하고 있다. 중국에서 ‘상감령 정신’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조국과 인민의 승리를 위해 봉헌하는 불요불굴의 의지, 그리고 일치단결로 용감하고 완강하게 전투에 임해 끝까지 승리를 쟁취하겠다”는 정신을 뜻한다.

?중국이 강조하는 상감령(上甘嶺)은 중국이 아니라 강원도에 있다. 중국은 한국전쟁 때인 1952년 10월, 11월 강원 오성산 부근의 저격능선전투와 삼각고지전투를 합해 ‘상감령 전투’라고 부른다. 중국은 상감령 전투를 한국전쟁을 승리로 이끈 결정적 전투로 주장하며 ‘미제와 싸워 이긴 성전(聖戰)’이라고 부른다.

지난 14일 한겨레통일문화재단이 개최한 `한겨레평화포럼-DMZ 평화적 이용 모색’ 참석자들은 강원 철원군 근남면 승리전망대에서 망원경으로 저격능선(상감령)을 살펴봤다. 저격능선은 철의 삼각지대 중심부인 오성산에서 남대천 부근인 김화 지역을 향해 뻗어 내린 돌출 능선이다. 당시 전투에서 중공군 저격병에게 큰 피해를 본 미군이 ‘저격능선전투’(Battle of Sniper ridge)라고 불렀다.

지난 14일 한겨레평화포럼 참가자들이 강원 철원군 근남면 승리전망대에서 망원경으로 저격능선 쪽을 살펴보고 있다.  저격능선은 앞쪽 두번째 능선  이다. 철원/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지난 14일 한겨레평화포럼 참가자들이 강원 철원군 근남면 승리전망대에서 망원경으로 저격능선 쪽을 살펴보고 있다. 저격능선은 앞쪽 두번째 능선 이다. 철원/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이날 저격능선의 녹음은 평화롭게만 보였고 남대천은 여유있게 흘렀다. 고즈넉한 초여름 공원 분위기였다. 하지만 67년전 1952년 가을 저격능선의 1㎢ 땅을 차지하기 위해 최소 2만명의 젊은이들이 죽고 다쳤다. 좁은 지역에서 밀집대형으로 많은 병사들이 이렇게 한꺼번에 희생된 것은 세계 전사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가랑잎처럼 쌓인 시체를 밟고…’(저격능선 전투 전적비 비문)가 꾸밈말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당시 저격능선 인근 남대천은 피로 물들었다.

중국쪽 기록에 따르면 1952년 10월14일부터 11월25일까지 약 43일간의 상감령전투에서 유엔군 사상자는 2만5000명, 중공군은 1만1000여명이었다. 중국은 전략 요충지인 오성산을 지켜서 이긴 전투라고 주장한다. 우리쪽 자료에는 중공군 사상자 1만1천명, 유엔군 사상자 7800명이었다. 국군은 저격능선을 지켜내 이긴 전투라고 평가한다. 상감령 전투는 67년전 끝난게 아니다. 미국과 중국이 맞서는 국제정치, 국제경제 현장에서 `기억의 전투’로 계속 불려나온다.

당시 저격능선(상감령)에서 수만명의 젊은이들은 왜 죽어야 했을까? 1951년 7월10일부터 1953년 7월27일까지 2년여간 휴전회담을 하는 동안 전선은 현재 군사분계선 근처에 교착됐다. 이 기간 한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려고 중·동부전선에서 치열한 고지쟁탈전이 벌어졌다. 한국전쟁 군인 사상자 중 다수는 고지전에서 희생됐다. 저격능선(상감령) 전투는 백마고지 전투와 함께 대표적인 고지전이다.

한국전쟁 때 왜 고지전을 멈출 수 없었을까? 양쪽이 이길 수 없음을 알면서도 지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전쟁과 달리 협상과 대화는 지지 않으려고 하면 성사되지 않는다. 평화는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로 이뤄야 한다. 한반도 평화정착은 세계에서 마지막 남은 냉전구도의 해체를 의미한다. 한반도에 항구적 평화가 깃들면 중국의 상감령 전투도 비로소 끝날 것이다.

한겨레통일문화재단이 지난 14일 강원 철원 DMZ 생태평화공원 등에서 ‘비무장지대(DMZ) 평화적 이용’을 주제로 한겨레평화포럼을 연 것은 환경과 생태를 통해 남북 긴장 완화와 평화공존을 모색하려는 뜻이었다.

1970년 철원 생창리에 100가구 입주한 지 40년이 된 2010년 세운 ‘입주 40주년 기념비’가 생창리 마을회관 앞에 서 있다.
1970년 철원 생창리에 100가구 입주한 지 40년이 된 2010년 세운 ‘입주 40주년 기념비’가 생창리 마을회관 앞에 서 있다.
DMZ 생태평화공원이 있는 강원 철원군 김화읍 생창리는 냉전시대의 산물이다. 남북 체제 경쟁이 한창이던 1970년 10월30일 재향군인 100세대가 생창리에 이주해 재건촌을 이뤘다. 한국전쟁 뒤 철원지역을 수복한 정부가 ‘수복 지역에 사람들을 이주시켜 농사를 짓게 하면 식량 증산이 가능할 뿐 아니라 북한의 침략에 즉각 대응하고 대북 심리전에도 활용할 수 있다’는 취지에서 만들었다. 이스라엘의 키부츠를 본보기 삼아 ‘농업+전투’ 개념을 도입했다.

생창리에는 도로를 따라 같은 모양의 집들이 한꺼번에 세워지고 100가구가 살았다. 지금도 생창리 도로 주변에는 70년대, 80년대 세워진 비슷한 모양의 집들이 늘어서 있다.

강원 철원 생창리에는 70, 80년대 지은 비슷한 모양의 집들이 있다.
강원 철원 생창리에는 70, 80년대 지은 비슷한 모양의 집들이 있다.
철원 DMZ 생태평화공원은 2016년 5월 문을 열었다. 60년넘게 공개되지 않았던 지역이고 군사 보안상 지도에도 표시가 되지 않는 미지의 땅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DMZ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는다. 현재 일반인이 DMZ 안에 들어갈 수 있는 곳은 강원 고성과 철원의 ‘DMZ 평화의 길’ 뿐이다.

흔히 휴전선이라고 부르는 군사분계선(MDL)에는 철조망이 없다. 군사분계선은 한반도 서쪽에서 동쪽으로 약 200m 간격으로 세워진 1292개의 표지판 사이의 눈에 보이지 않는 선을 연결한 가상의 선이다. 많은 사람이 휴전선 철조망으로 알고 있는 것은 실제 남방한계선 철책이다.

군사분계선 표지판.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
군사분계선 표지판.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
DMZ 개념도.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
DMZ 개념도.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양쪽 충돌을 막는 완충지역으로 남쪽 2㎞ 지점에 남방한계선이, 북쪽 2㎞ 지점에 북방한계선이 있다. DMZ는 남방한계선과 북방한계선 사이의 폭 4㎞의 지역이다. 그동안 남북 군사 긴장이 높아지면서 양쪽이 한계선 철책을 군사분계선 가까이로 옮기는 바람에 지금은 비무장지대 면적이 절반쯤으로 줄어들었다.

남방한계선 철책 모습.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
남방한계선 철책 모습.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
철원 DMZ 생태공원 탐방로에 ‘비무장지대로 접근하고 있으니 주의하라’는 안내판이 있다.
철원 DMZ 생태공원 탐방로에 ‘비무장지대로 접근하고 있으니 주의하라’는 안내판이 있다.

군사군계선 북쪽으로 국군과 미군 헬기가 넘어 가지 않도록 ‘더이상 비행하지 말라’고 알리는 표지판에 철원 DMZ 생태평화공원에 세워져 있다.
군사군계선 북쪽으로 국군과 미군 헬기가 넘어 가지 않도록 ‘더이상 비행하지 말라’고 알리는 표지판에 철원 DMZ 생태평화공원에 세워져 있다.

20년 넘게 DMZ 생태환경조사를 해온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비무장지대 내부에 들어가면 팽팽한 군사적 긴장은 체험할 수 있지만, 사방이 온통 숲과 산이라 전쟁의 흔적과 생태 환경, 자연 경관 등을 자세히 살피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막상 숲에 들어가면 숲을 보기 힘든 것과 같다.

지난 14일 한겨레평화포럼 참가자들이 강원 철원군 김화읍 생창리 DMZ 생태평화공원 용양보 (자연 습지형 호수)를 살펴보고 있다.  철원/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지난 14일 한겨레평화포럼 참가자들이 강원 철원군 김화읍 생창리 DMZ 생태평화공원 용양보 (자연 습지형 호수)를 살펴보고 있다. 철원/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철원 DMZ 생태평화공원 탐방로는 남방한계선 철책 앞까지 이어진다. 서 위원은 “탐방로를 따라가면 비무장지대 내부, 남방한계선 따라 만들어진 각종 초소와 오피(OP·관제초소) 등 군사시설, 지뢰밭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일제 때 만든 금강산전기철도의 흔적, 동아시아 온대지역의 자연과 산림을 오롯이 볼 수 있다. 비무장지대 내부에 들어가는 것보다 비무장지대의 전모를 더 자세히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철원 DMZ 생태평화공원에는 습지형 호수를 보며 남방한계선 철책 바로 앞까지 걸어가는 ‘용양보 탐방로’와 철원 비무장지대 일대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십자탑 탐방로’가 있다.

철원 DMZ 생태공원 탐방로 옆에는 지뢰 표지판이 있다.
철원 DMZ 생태공원 탐방로 옆에는 지뢰 표지판이 있다.
지난 14일 한겨레평화포럼 참가자들은 철원 DMZ 생태평화공원 탐방로에 일상과 분단이 공존하는 모습이 놀라웠다고 말했다. 철조망 건너편에 모내기를 마친 논이 있고, 오디가 익어가는 초여름의 푸르름 옆에는 지뢰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 일상과 분단이 멀지 않았다. 철원/권혁철 한겨레평화연구소장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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