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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외교

아프간인들을 맞는 우리의 자세

등록 2021-08-26 15:44수정 2021-08-26 20:36

[현장에서]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새 손님들이 정체성 지키면서 한국 사회의 훌륭한 일원이 되길
아프가니스탄 카불공항에서 한국 외교관과 우방국 병사들이 ‘KOREA’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한국으로 갈 아프간인들을 찾고 있다. 외교부 제공
아프가니스탄 카불공항에서 한국 외교관과 우방국 병사들이 ‘KOREA’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한국으로 갈 아프간인들을 찾고 있다. 외교부 제공

“제 이름은 ○○○입니다. 남편, 두 아들과 함께 함께 있습니다.”

옅은 갈색 빛깔의 체크무늬 히잡을 쓴 아프가니스탄 여성은 24일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 공항에서 이뤄진 외교부와 인터뷰에서 침착한 미소를 지어 보이려 애썼다.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그와 주아프간 한국 대사관의 인연은 이미 수년 전이다. 한국행을 결심한 선택에 대해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그래야만 했다”고 말했다. 아프간에 남아 있는 한, 탈레반이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을 도왔던 자신과 가족들에게 어떤 보복을 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마음을 굳게 먹고 대사관으로 가 “나와 가족들의 목숨을 구해달라”고 호소하기에 이른다.

26일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378명(전체 391명)의 아프가니스탄인들이 한국 땅을 밟는다. 세계 10위권의 강소국으로 성장한 한국의 국력과 “함께 일한 동료들의 처한 심각한 상황에 대한 도의적 책임”(최종문 외교부 2차관) 등을 생각할 때 신속한 결단을 내린 정부의 판단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이들을 한꺼번에 한국으로 이송한 것 역시 “우리 외교사에서 처음”있는 일이기에 이런저런 걱정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2018년 제주도에서 벌어진 ‘예멘 난민’ 사태처럼 사소한 사건 하나가 한국을 찾은 아프간인들에 대한 거센 ‘혐오 열풍’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런 우려 때문인지 정부는 이들이 ‘절대’ 난민이 아니고, 특별공로자라고 애써 설명하는 중이다.

외교부가 25일 출입 기자단에게 공개한 인터뷰 동영상을 통해 새삼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무리 속에 섞인 수많은 아이들의 존재였다. 대여섯살 정도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가 인터뷰 광경이 신기한 듯 화면 뒤쪽에서 어슬렁거리고 있고, 인터뷰 뒷부분에선 엄마 품속에서 칭얼대는 아기의 울음소리도 들을 수 있다. 실제, 이번 입국자들은 탈레반의 보복을 피하기 위해 가족 단위(76개)로 탈출한 이들이다. 이 작전의 실무를 담당한 김만기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은 “부모들이 젊어서 어린이들이 많이 들어오는 게 특징”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6살 미만의 영유아가 118명, 6~10살 사이 어린이가 80여명에 이른다.

한국에 정착하게 될 아프간인들을 기다리는 것은 아마도 기약 없는 ‘디아스포라의 삶’일 것이다. 탈레반 정권이 이어지는 한 이들은 다시 고국 땅을 밟지 못할지도 모른다. 인터뷰에 응한 40대로 보이는 한 남성은 “어머니와 다른 가족들을 두고 왔다”며 울상을 지었는데, 평생 ‘이산의 아픔’을 간직하고 살아야 할 것처럼 보였다. 또 다른 고민은 소중한 아이들의 장래다. 이들은 자이니치·조선족·고려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이 속한 나라인 한국의 언어를 배우고, 한국의 학교를 다니면서,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해야 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문득 10여년 전 만났던 한 파키스탄-한국인 커플의 사연이 떠올랐다. 파키스탄 출신 박이스라르(41·당시)씨는 1994년 경기도 안양에서 한국인 부인을 만나 2년 뒤 결혼했다. 그가 한국 국적을 취득한 것은 그로부터 8년 뒤인 2004년이었다. 아들 하비비(9)는 기자에게 “얼마 전 태권도 1품을 땄다”고 자랑했는데, 얼굴이 까무잡잡한 것을 빼면 영락없는 한국의 어린이였다. 박씨 부부가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인종 차별과 배제의 문화에 대해 한참 동안 슬픔을 쏟아낸 기억이 잊히지 않는다.

시인 정현종은 “사람이 온다는 건/실은 어마어마한 일”(<방문객>)이라고 노래했다. 식민과 분단으로 이어지는 사무친 현대사를 겪은 한국 사회는 아프간인들의 아픔에 공감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 새 손님들이 떠나온 국가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한국 사회의 훌륭한 일원이 될 수 있도록 모두 함께 따뜻한 마음으로 맞아주었으면 한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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