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8월18일 워싱턴DC 인근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의를 앞두고 로렐 로지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캠프 데이비드/연합뉴스
올해 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지정학적 변화는 ‘한미일 협력’의 급속한 진전이다. 8월18일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담 이후, 한미일은 안보·경제·공급망·사이버 등 전방위 협력에 속도를 내고 있다. 9일에는 한미일 안보실장이 서울에서 회의를 열고 북한의 핵개발 자금원인 해킹을 직접 차단하려는 ‘대북 이니셔티브'를 추진하기로 했다.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 이후 4개월이 지난 지금, 한미일 3각 협력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한국의 입장에서 어떻게 평가하고 어떤 과제를 풀어야 할까. 11월28일부터 지난 8일까지 한·일 기자들의 공동 취재에 참여해 워싱턴과 하와이, 일본과 서울에서 한·미·일의 정부 관리와 군 관계자, 전문가들을 두루 만났다. ‘설계자’인 미국은 한미일 3각 협력을 통해 중국의 부상 견제라는 목표를 향해 정교한 방안들을 마련해 가고 있었다.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급속도로 위험해진 북한 핵 능력과 남북의 충돌 가능성 등 절박한 과제를, 한미일 협력의 틀 속에서 제대로 풀어가고 있는지에 대해선 많은 의문이 남았다.
민주 공화 양당의 대립이 극심한 미국의 어느 정치인과 전문가를 만나도 ‘위협적인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는 데선 의견이 만장일치였다. 극단적으로 분열된 미국을 이어붙여주고 있는 것이 ‘중국 위협론’이란 접착제라는 느낌마저 들었다. 한미일 캠프데이비드 정상 선언에서도 가장 주요한 도전은 중국, 그 다음이 북한이었다. 미국이 한미일 협력을 통해 중국 견제의 전략적 목표에 집중하고 있는 동안, 북핵 문제에 대한 대응은 후순위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이 계속되고, 대만해협 위협이 고조되는 상황도 북핵 대응에서 관심을 빼앗고 있다.
앤드루 여 브루킹스연구소 한국석좌는 “워싱턴 전문가들 사이에서 지금의 대북 정책은 효과가 없고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면서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과 언제라도 대화하겠다고 해왔지만 북한은 응답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는 북한과의 대화가 필요하지만, 바이든 행정부가 나설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예상한다. “미국이 최종 목표로 비핵화를 포기해서는 안되지만, 많은 전문가들이 북한과 접촉을 유지할 필요가 있고 적어도 위험 감소와 상황 안정을 위한 대화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정치적 관점에서 보면 바이든 행정부는 지금 한꺼번에 너무 많은 외교 정책 이슈를 곡예하듯 다루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극적으로 다르고 새로운 뭔가를 시도할 능력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선거가 다가오고 있고,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 문제를 협상 테이블에 올렸다가 결실을 내지 못하는 상황을 원치 않을 것이다.”
미국 정부 당국자들과 전문가들은 중국과 북-러의 이해관계가 다르다면서, 한미일 협력이 강화될 수록 북-중-러가 더욱 밀착하게 되면서 한반도 정세에 부담이 된고 있다는 우려를 반박했다. 람 이매뉴얼 주일 미국대사는 “시진핑 주석과 중국 외교부와 안보 담당자들이 러시아와 북한 사이에 일어나고 있는 일을 좋게 보진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북·중·러의 3자 협력에는 한계가 있다고 했다.
북-러 밀착에 대해 중국이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으며, 북-러 밀착은 한미일이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에서 3국 협력을 강화하기 훨씬 이전에 시작되었다는 분석은 맞다.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실패한 뒤 어려움을 겪던 북한이 2022년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북한의 도움이 필요해진 러시아와 전략적 밀착에서 돌파구를 찾은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 당국자와 전문가들도 북-러의 군사적 협력을 통해 북한이 위성, 잠수함 기술들을 발전시키는 것이 매우 심각한 위협이라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진지하고 효과적인 해법은 제대로 가동되지 않고 있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앤드루 여 한국석좌는 중국과의 외교를 통한 해법을 언급하면서도, 바이든 행정부 내에서 중국이 북핵 해결에 미국과 협력할지에 대해 회의가 크다고 말한다. “아펙(APEC) 미중 정상회담 이후 시진핑 주석이 미국과 약간의 협력 공간을 원하고 북한 문제가 그것일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결국 시진핑은 북한이 핵능력을 강화하지 않는 것을 선호할 것이고, 중국이 러시아와 북한의 협력을 반기는 것도 아니다. 이 지점에서 러시아가 북한에 더 많은 물자와 기술을 전수하는 것을 막도록 중국과 협력할 방법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중국이 이와 관련해 의미있는 일을 할 정치적 의지가 있는지에 대해 바이든 행정부 안에서 회의가 크다.”
조지워싱턴대학 방문교수로 활동중인 김영준 국방대 교수는 “중국과 러시아가 라이벌 관계이기 때문에 북중러 연대가 실제로는 장기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희망적 사고’”라면서, 한국의 입장에서는 최악의 시나리오에도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8년 이후 중러 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화했고 점점 긴밀해지면서 군사적인 파트너가 되었다. 북한을 옵저버나 참가국으로 해서 북중러 연합 군사훈련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김정은의 전략은 하노이 노딜 이후 근본적으로 변화했다. 이제 북한은 핵무기뿐 아니라 여러 옵션을 고려하고 있고, 중국, 러시아와의 연합 훈련도 선택지가 될 수 있다”면서 “지금으로서는 중국이 북러와 긴밀한 군사 협력에 나서지 않도록 외교적 노력을 해야 한다”고 했다.
1년도 남지 않은 내년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을 앞서는 것으로 나오고 있다. 트럼프의 귀환 가능성에 대한 불안과 우려가 워싱턴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하지만 미국 정치인들과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와서 한미일 협력의 속도가 줄 수는 있지만 완전히 되돌리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한·일을 달래려 한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로 알려진 빌 해거티 상원의원은 “트럼프는 대통령 재임 동안 세계의 어느 지역보다도 인도태평양 지역을 많이 방문했고, 내가 3차례 동행해 일본을 방문하기도 했고, 그때마다 서울도 방문했다. 트럼프는 한미일 3국 협력을 계속할 깊은 뜻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인도 태평양 지역에서 동맹에 대한 트럼프의 입장을 우려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와이에 있는 싱크탱크인 퍼시픽 포럼의 롭 요크 아태지역 프로그램 디렉터는 “트럼프 행정부가 다시 들어선다면 한미동맹을 약화시키겠다고 위협할 가능성은 높지만, 지속적으로 ‘장애물’에 부딪힐 것이다. 트럼프는 중국과의 경쟁이 목표라고 강조하는데 동맹과 파트너를 약화시키면서 그 목표를 실행할 수는 없다”고 했다. 많은 전문가들이 트럼프가 백악관으로 돌아가도 한미일 3각 협력을 되돌리기 어렵도록 여러 방면에서 한미일 협력의 ‘제도화(institutionalize)’를 서두를 것, 의회 외교를 강화할 것, 트럼프가 실제로 돌아올 경우 정상간 개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할 것을 강조했다.
워싱턴과 도쿄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한미일 3국 협력을 가능하게 한 ‘영웅’으로 언급된다. 전 주일 미국대사였던 해거티 상원의원은 “한미일 협력에서 큰 도전과제는 한일 사이에 존재하는 과거사 문제라고 생각한다. 미국은 수십년 동안 한일관계가 더 긴밀해지기를 바라 왔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가 어려운 역사와 정치적 도전에도 불구하고 관계 개선의 의지를 보여준 것을 축하한다”고 말했다.
한일 역사 문제와 관련해, 미국의 입장은 ‘한일이 과거는 옆으로 치워두고 미래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일 역사 문제의 의미와 민감성, 식민통치 피해자로서 한국인들이 윤 대통령의 일방적인 ‘제3자 변제’ 강제동원 피해 해법에 얼마나 우려하는지는 제대로 고려하지 않는다. ‘물컵 절반을 일본이 채워야 한다’는 한국의 요구에 대한 관심은 거의 없다. 이매뉴얼 주일 미국대사는 “미국을 통하는 것보다 한일 양국이 서로 대화하는 게 좋다”며 미국의 ‘중재’ 역할에는 선을 그었다.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면서도, 일본에서 K-pop의 인기, 한국에서 일본 애니메이션의 인기가 얼마나 높은지 보라고 했다. 코로나19 이후 최근 한일 양국 간 관광객 수가 급증하고 있는 점, 특히 한일 젊은 세대 사이에 호감이 높다는 점도 강조했다.
한편으로는 한국에서 정권 교체가 일어나 윤석열 정부와 다른 대일 정책이 추진될 가능성을 극도로 우려하는 분위기가 워싱턴과 도쿄에서 뚜렷했다.
퍼시픽 포럼의 롭 요크 디렉터는 “중국과의 반도체 협력 제한의 목적은 중국이 자체적인 반도체 제조 능력을 가지는 것을 막는 것이 전혀 아니다.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중국은 조만간 자체적인 반도체 생산 능력을 발전시킬 것인데, 문제는 이러한 그들의 목표 실현이 지연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반도체를 비롯한 공급망 안보, 남중국해, 대만해협의 문제는 모두 큰 그림의 일부로 연결되어 있다. 이런 문제들이 해결되는 동안 중국의 반도체 제조 능력을 몇년 늦추는 것이 실제 목표다. 중국이 이웃국가와 미국에 대해 호전적인 태도를 보이는 동안 그들의 부상을 늦추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미레야 솔리스 선임연구원도 “중국이 최근 자체 생산한 첨단 반도체를 탑재한 것으로 보이는 화웨이 휴대전화를 공개한 것은 미-중 첨단기술 경쟁이 끝나지 않는 게임이라는 것을 보여준다”면서 “중국은 성과를 내고 있고, 미국은 시간을 버는 것이 최선의 목표”라고 했다.
중국이 반도체 등 첨단기술 제조 능력을 확보할 시간을 조금 늦출 수는 있지만, 결국 한국 기업들은 큰 도전에 직면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 주도하는 CHIP4와 인플레이션감축법(IRA), 공급망 재편에서 한국 반도체·배터리 기업들이 염두에 둬야 할 부분이다.
이밖에도 한미일은 개발도상국에 대한 원조, 러시아·중국·북한발 가짜뉴스와 선거 개입에 대해서도 공동 대응하기로 했다. ‘설계자’인 미국은 유능한 동맹들이 더 많은 역할을 하기를 요구한다. 한국이 받아든 명세서와 해야 할 역할을 커졌지만, 한국 정부는 과연 한미일 협력의 틀을 가지고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전략과 실행 노력을 하고 있는가.
워싱턴·호놀룰루·도쿄/박민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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