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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외교

이종석, 홍석현낙마 직후 ‘반기문카드’기획

등록 2006-11-10 20:09수정 2006-11-11 15:23

<b>중요했던 순간</b> 지난 9월 14일(현지시각)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 회담 뒤 열린 오찬에서 부시 미 대통령은 반기문 장관(맨 왼쪽)에게 면접과 다름없는 질문들을 던졌다. 워싱턴/연합뉴스
중요했던 순간 지난 9월 14일(현지시각)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 회담 뒤 열린 오찬에서 부시 미 대통령은 반기문 장관(맨 왼쪽)에게 면접과 다름없는 질문들을 던졌다. 워싱턴/연합뉴스
[숨은비화] 김선일피살 위기 ‘장관직 놔주자’ 흔들기도
“해볼만” 올2월까지 언론에 ‘비보도’요청, 정부차원 기획
10일 반기문 외교부 장관의 퇴임을 계기로 숨은 비화가 뒤늦게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특히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카드는 지난해 7월 이종석 당시 국가안보회의 사무처장이 처음으로 정부 차원에서 기획한 것으로 밝혀졌다.

반 장관은 개인적으로 유엔 사무총장의 꿈을 키워왔으나 정부 차원의 준비는 지난해 7월 홍석현 당시 주미 대사의 낙마 직후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안보회의에서 이종석 사무처장이 나서 본격적으로 ‘한국인 유엔 사무총장’ 카드의 득실과 가능성에 대해 검토한 결과 “해볼만 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고서를 올렸다는 게 정부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한국인 사무총장 나오면10년간 한반도 정세 유리하게 끌고갈 수 있다” 판단

한반도 평화정착 문제가 중요한 화두인 시점에서 한국인 사무총장이 나오면 앞으로 5년~10년 동안 우리에게 유리하게 끌고갈 수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최악의 상황은 막을 수 있다는 계산을 했다는 것이다. 또 국제적으로 미국 종속적인 국가 이미지를 벗고 외교 다변화를 상징적으로 드러낼 수 있다는 효과도 감안했다. 이어 8월말 노 대통령이 직접 반 장관을 청와대로 불러 출마를 확정짓고 준비에 들어갔다. 올 2월까지 언론에 오프더레코드(비보도)를 요청하며 ‘극비’리에 작전이 펼쳐졌다.

일단 반 장관은 공식 비공식 일정을 통해 각국 외교부 장관과의 접촉 기회를 늘렸다. ‘북극과 남극을 빼고는 가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할 정도로 세계 각국을 누볐다. 어떤 때는 여러날 동안 귀국을 미룬채 비행기 안에서 살다시피하면서 해외 체류 일정을 소화했다고 한다.

“불어 모르는 총장 안돼” 시라크 대통령 설득위해, 대화내용 통째 암기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선출 기자회견 14일 오전(한국 시간)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 총회에서 반기문 장관이 제8대 유엔 사무총장으로 공식 선출된 뒤 가진 회견에서 한 외신기자가 기자들의 곤란한 질문을 잘 빠져나가 `미끄러운 장어‘(slippery eel)라는 별명을 얻은 사실과 관련된 발언을 하자 환하게 웃고 있다. (뉴욕=연합뉴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선출 기자회견 14일 오전(한국 시간)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 총회에서 반기문 장관이 제8대 유엔 사무총장으로 공식 선출된 뒤 가진 회견에서 한 외신기자가 기자들의 곤란한 질문을 잘 빠져나가 `미끄러운 장어‘(slippery eel)라는 별명을 얻은 사실과 관련된 발언을 하자 환하게 웃고 있다. (뉴욕=연합뉴스)
“프랑스어를 모르는 유엔 총장은 안된다”는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을 설득하기 위해 면담을 앞두고 대화 내용을 통째로 외웠다는 것은 유명한 얘기. 지난 7월 1차 예비투표 때는 안보리 의장국이던 프랑스의 유엔대사가 말레이시아에 있던 반 장관에게 통화를 요청해오자 혹시라도 실수할까, 프랑스에 능숙한 천영우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전화로 연결해 대기시켜 놓을 정도로 신경을 썼다.

노 대통령도 그동안 역대 대통령들이 잘 가지 않던 남미와 아프리카 등 세계 각국의 순방 일정을 늘려잡으면서 사실상 선거운동에 나섰다. 정상회담 때마다 반 장관을 바로 옆자리에 배석시켜 자연스럽게 유엔 사무총장 출마 얘기가 화제에 오르도록 유도했다. 안보리의 사무총장 선거 일정을 코앞에 두고 열린 지난 9월 아셈정상회의 때는 안보리 이사국 순방 일정을 특별히 끼워넣었다. 그리스는 9월 안보리 의장국이란 점을 감안해 3일이나 머무르며 국빈 방문 일정을 소화했다. 방한하는 외국 고위인사들도 빼놓지 않고 청와대로 불렀는데 스리랑카 최고위층이 방한했을 때는 “스리랑카에서도 후보를 낸다는데, 그래도 기회가 되면 도와달라”고 했다고 한다.

9월 한미 정상회담때 부시 구두면접 ‘통과’

당선 가도의 중요한 고비는 유엔의 터줏대감이자 세계의 패권국을 자임하는 미국의 동의를 얻는 과정이었다. 반 장관과 절친한 머코스키 미 상원 아태소위원장은 라이스 국무장관에게 “반이야말로 유엔 사무총장에 적격”이라고 극찬하는 편지를 직접 써줬다.

부시 미 대통령의 ‘면접’은 지난 9월 한미정상회담에서 치러졌다. 14일 정상회담 뒤 열린 오찬에서 부시가 “왜 사무총장을 하려고 하느냐”며 사실상 면접에 가까운 질문들을 던졌고 반 장관은 “유엔의 도움으로 한국이 여기까지 왔다. 이제는 우리가 국제사회에 기여할 때”라며 ‘한국 역할론’을 설파했다는 게 참석자의 전언이다. 부시는 그 자리에서 반 장관에게 ‘right man’ 운운하며 사실상 동의를 표시했다는 것이다.

상임이사국 진출을 노리는 일본에 대해서는 미국과의 우호를 이용해 훼방을 놓지 않을까 은근히 걱정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아베 총리 취임을 계기로 10월9일 한일정상회담 일정이 잡히는 등 우호적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별다른 걸림돌은 되지 않았다. 한일정상회담 때 ‘반기문 지지’를 카드로 쓰려다, 엿새 전 열린 4차 예비투표에서 반 장관이 1위를 차지하며 승기를 굳히는 바람에 김이 빠진 탓도 있었다.

반장관 “외교장관 내놓으면 방문국 외교장관을 못만나” 논리로 교체론 반박

돌이켜보면 반 장관에게 김선일씨 피살 사건 등 몇차례 위기가 있었지만 올해 초가 가장 심각했다고 한다.

명분은 “세계를 누비며 선거운동을 하려면 장관직에서 풀어주는 게 좋다”는 것이었지만 흔들기의 성격도 있었다고 한다. 언론에도 교체 가능성이 보도될 정도였다. 이때 교체됐으면 아마 사무총장 당선이 어려웠을 것이라는 게 중평이다. 반 장관은 “외교장관 자리를 내놓으면 외국에 가봐야 그 나라 외교장관을 만나기도 어렵다”는 논리로 교체론에 반박했다고 한다. 결국 고민하던 노 대통령이 5월 중동 순방 중 두바이에서 최종적으로 반 장관에게 “그대로 갑시다”라고 정리하면서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김이택 이제훈 신승근 기자 ri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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