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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외교

[그래픽 뉴스] 3·1절 기념사로 본 ‘황교안이 박근혜다’

등록 2017-03-02 16:57수정 2017-03-02 17:37

말 그대로 ‘짐승의 시간’입니다. 3·1절을 하루 앞둔 2월28일, 한 남성이 ‘위안부’ 소녀상에 입술을 갖다대고 찍은 사진을 온라인에 올려 공분을 사고 있습니다. 부산 일본총영사관 앞 소녀상 근처 시설물에는 ‘일본 사랑’ 등의 유인물이 붙거나 폐가구가 버려지기도 했답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91) 할머니는 2015년 말 이뤄진 한-일 정부간 12·28 합의를 두고 “역사를 지우려는 담합”이라고 했습니다.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 없이는 단 1원도 받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유엔 여성대상범죄 특별보고관은 “(12·28 합의에) 피해자 중심 접근 등 인권기구 권고가 반영 안됐다”고 지적했습니다. ‘짐승의 시간’을 비켜선 수많은 시민들이 피해자들과 함께 목소리를 높여 지금껏 “합의 전면 무효”를 외치는 까닭입니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생각은 다른 모양입니다. 그는 1일 “‘위안부’ 합의의 취지와 정신을 진심으로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목숨으로 일제에 저항한 자주독립 운동을 기리는 3·1절 기념사입니다.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외면한 채 박근혜 정부의 ‘유산’을 지키려는 모양새입니다. 이러니 ‘황교안이 박근혜다’라는 말이 나오는 게 아닐까요.

“가장 치욕스러운 기념사”(박경미 더불어민주당 대변인)라는 올해 3·1절 기념사부터 지난 4년간 박근혜 대통령이 발표한 3·1절 기념사, 광복절 경축사 가운데 ‘위안부’ 문제 관련 부분을 모아봤습니다. 12·28 합의에 대한 책임은 언제가 됐든 끝까지 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입 열 때마다 대일 ‘강경’ 메시지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첫 해 3·1절 기념사에서 한-일 관계를 ‘피해자와 가해자’로 규정하고 강경한 메시지를 쏟아냈습니다. 일본을 향해 “역사를 올바르게 직시하고 책임지는 자세를 가지라”고 일갈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취임 첫 해 3·1절 기념사에서 “언제까지나 과거에 얽매여 미래의 관계까지 포기하고 있을 수 없다”고 말한 것과 크게 대비됐습니다. 같은 해 광복절 경축사에서는 ‘위안부’라는 표현을 쓰진 않았지만 “과거 역사에서 비롯된 고통과 상처를 지금도 안고 살아가고 계신 분들에 대해 책임 있고 성의 있는 조치를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2014년 3·1절에는 다시 강도를 높여 “역사의 진실은 살아있는 분들의 증언이다. 살아있는 증인들의 소리를 듣지 않고, 인정하지 않는다면 고립을 자초할 뿐”이라고 일본에 경고했습니다. 피해자 할머니들의 의견도 듣지 않고 12·28 합의를 맺을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시절이었습니다.

식민지배 언급도 않은 ‘아베 담화’ 수용하더니…

박근혜 정부의 태도 변화가 감지된 것은 2015년 광복절 경축사에서였습니다. 식민 지배에 대한 직접적인 사과는 한 마디도 없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전후 70주년 담화’에 대해 이전처럼 비판하지 않고 되레 “새로운 미래로 함께 나아가자”고 제안했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풀고 가야 할 역사적 과제”라던 ‘위안부’ 문제에 대해 “조속히 합당하게 해결하기를 바란다”고 짧게 언급한 것도 달라진 지점입니다. 구체적인 제안 없이 강경 메시지만 쏟아내다 성과도 없이 대일 기조가 변한 것을 두고 비판이 제기됐습니다. 12·28 합의를 불과 몇 개월 앞둔 때였습니다.

■ “다각적 노력 기울인 결과” 자화자찬

지난 1월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국회에 나와 “12·28 합의는 우리가 원하는 해결 방안에 가장 근접한 결과”라고 말해 비판을 샀습니다. 그보다 앞서 2016년 3·1절 기념사에서 박 대통령은 합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위안부’ 피해자들에 실질적인 지원을 확대하는 일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합의 직후부터 “100억, 1000억을 줘도 받을 수 없다”는 할머니들의 입장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습니다. “이렇게 정부가 할머니들을 괴롭히기는 처음”이라는 피해자 할머니의 말이 이번 합의의 수준을 말해줍니다. ‘위안부’ 문제는 다 해결됐다는 심정이었을까요. 박 대통령은 기념사 절반을 야당 비판, 창조경제 홍보에 할애했습니다.

■ 사라진 ‘위안부’ 언급, 정작 일본은…

딱 한 문장이었습니다. 200자 원고지 53장, 6500여자 분량의 2016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한-일 관계 관련 언급은 한 문장에 불과했습니다. 그나마 새로울 것 없는 뻔한 내용에다 ‘위안부’ 문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이번 황교안 권한 대행의 3·1절 기념사 역시 전체 3515자 분량에서 대북 메시지가 43%(1516자), 대일본 메시지는 14%(508자)에 불과했습니다.

일본 정부는 어떤 모습을 보여왔을까요. 아베 총리는 지난해 피해자들에 대해 사죄 편지를 보낼 의향을 묻자 “털끝만큼도 (생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1월 일본 방송에 출연해서는 “12·28 합의는 최종적 불가결한 합의다. 일본이 합의를 실행해 10억엔을 냈으니 다음은 한국이 성의를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는 일본 정부의 근거 중 하나가 바로 12·28 합의입니다.

12·28 합의 뒤 2년여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피해자들은 끝내 받지 않겠다 하는데, 가해자는 어쨌든 돈을 냈으니 ‘성의’를 보이라고 큰 소리를 칩니다. 이런 상황에서 황교안 권한대행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요?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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