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김용화(왼쪽 둘째) 김한수(왼쪽 셋째)씨가 지난해 4월 서울 서초구 법원삼거리에서 일제 강제동원사건 추가소송 제기 기자회견을 마친 뒤 소장을 접수시키려 법원으로 향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정부가 일본의 수출규제 조처에 대해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절차를 다시 밟은 데 이어, 법원이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을 이행하지 않는 일본 기업의 국내 자산에 대한 강제 매각 절차를 공식화하면서, 한-일 갈등이 다시 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는 현금화 조처가 이뤄지면 보복을 하겠다고 반발하고 있다.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은 지난 1일 신일철주금(현 일본제철)에 대해 압류명령 서류 등을 보관하고 있으니 찾아가라며 ‘공시송달’ 결정을 내렸다. 일본이 압류명령 서류의 접수를 거부하며 1년 5개월 이상 시간을 끌자, 법원이 서류가 상대방에게 전달된 것으로 간주하는 공시송달 결정을 내린 것이다. 법원의 공시송달은 8월4일 0시를 기해 효력이 발생한다.
강제 매각 절차에 들어가게 되는 현금화 대상은 일본제철이 2008년 1월 포스코와 제휴해 설립한 제철 부산물 재활용 기업인 피엔알(PNR)의 주식 8만1075주(액면가 5000원 기준 4억537만원)다. 앞서 지난해 1월 법원은 신일철주금이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 판결을 이행하지 않자 이들 자산에 대한 압류 신청을 승인했다.
일본 정부는 실제 현금화 조처가 이뤄지면 보복 대응에 나설 뜻을 내비쳤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4일 “한국 사법 절차는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라며 “일본 기업의 경제활동을 보호한다는 관점에서 모든 선택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일본제철도 “(강제동원) 문제는 국가 간 정식으로 합의된 일-한 청구권 협정에 의해서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고 이해하고 있다”며 일본 정부 대응과 보조를 맞추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문제는 그렇잖아도 냉랭한 한-일 관계 속에서 강제동원 문제가 추가적인 경제·안보 갈등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점이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일본학)는 “공시송달 시점과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한 세계무역기구 제소 재개 시점이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며 “일본은 (현금화 조처가) 국제법 위반이라고 생각해 물러설 수 없을 것이고, 일본이 보복을 하면 우리도 대응 조처가 불가피해 이대로 가다간 2차 충돌이 날 수 있다”고 말했다.
강제동원 피해자 쪽도 현금화 조처가 불러올 영향을 알고 있는 만큼, 법적 절차를 진행하는 동시에 올 초 문제 해결을 위한 협의체 마련을 요구하기도 했다. 한국과 일본의 변호사·학계·경제계·정치계, 피해자들의 대리인, 지원단체 등 양국이 전방위적으로 나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보자는 의도였다. 하지만 이들의 움직임도 코로나19 확산 등으로 주춤한 상태다.
한국 정부는 대법원 판결을 존중하고 ‘피해자 중심주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풀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구체적 해법 마련은 쉽지 않다. 김인철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사법 판단을 존중하고 실질적인 피해자의 권리 실현이 되고 그다음에 양국 관계가 다 종합적으로 고려되는, 그런 합리적 해결 방안을 논의해 나가는 열린 입장으로 임하고 있다”며 “일본하고는 긴밀히 협의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고만 밝혔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현금화가 실제 실행되기까지 아직 시간이 있다”며 “당장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생각보다 최악의 상황을 막겠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한·일 정부가 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소연 노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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