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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외교

“남자끼리 무슨 성추행”? 그들만의 ‘꼰대 성인지’

등록 2020-08-20 04:59수정 2020-08-20 07:41

현장에서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 한겨레 자료사진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 한겨레 자료사진

지난달 28일 뉴질랜드 현지 방송 <뉴스허브>가 한국 외교관 김아무개씨의 성추행 소식을 보도했을 때 좀 놀랐다. 방송에서 뉴질랜드 피해자를 지칭하면서 여성 대명사(she)가 아닌 남성 대명사(he)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한국 외교부 반응은 실망스러웠다. 현지 언론이 가해 외교관의 실명을 공개하고 주뉴질랜드 한국대사관의 수사 비협조 등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는데도 미온적으로 일관했던 것이다. 그러다 지난달 28일 한-뉴질랜드 정상 간 통화에서 이 문제가 언급되자 지난 3일에야 부랴부랴 사태 수습에 나섰다. 외교부의 이날 설명을 들어보면, 2017년 12월 성추행이 처음 발생했을 때 대사관은 가해자로 지목된 김아무개 당시 부대사에게 ‘경고장’을 발부하는 데 그쳤다. 명백한 ‘동성 간 성추행’ 사건을 대수롭지 않게 보아 넘긴 것이다.

피해자의 상황은 달랐다. 그는 2018년 하반기 외교부 감사관실에서 현지 공관 감찰을 나갔을 때 1년 전 자신이 입은 피해를 잊지 않고 상세히 털어놓았다. 그래서 재조사를 했지만, 외교부의 최종 결론은 ‘감봉 1개월’이라는 경징계였다.

왜 외교부는 이처럼 솜방망이 징계로 대응했을까. 기자실 벽에 붙어 있는 외교부 본부 직제표가 궁금증을 풀어줬다. 국장급 이상 간부 52명 가운데 여성은 강경화 장관을 포함해 다섯명뿐이었다. 과장급으로 내려가면 남녀 성비가 7 대 3 혹은 6 대 4 정도로 줄어들지만, 조직 내 중요 사항을 결정하는 자리에 앉아 있는 이들은 대개 남성임을 알 수 있다. 성인지 감수성이 떨어질 개연성이 큰 남성이 고위직에 많다는 점도 성추행 사건을 소홀히 다룬 원인이 아니었을까. 외교부는 지난 3일 설명 자리에서도 피해자가 (아마도 합의금을 올리기 위해) 자신의 피해를 과장하는 쪽으로 진술을 바꿨다는 취지의 언급을 잊지 않았다. 명백한 ‘2차 가해’였다.

이런 생각을 대놓고 드러내는 이도 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9일 <문화방송>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이번 성추행 사건 피해자가 “40대 초반에 180㎝, 덩치가 저만한 남성 직원”이라며 “그냥 같은 남자끼리 한번씩 툭툭 치고 엉덩이도 한번 치고 그랬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행히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달 30일 피해자가 제기한 진정에 대해 인용 결정을 내려 실질적인 피해 구제가 이뤄질 길이 열렸다. 피해가 발생한 지 2년8개월 만이다.

피해자의 성별은 중요하지 않다. 피해자는 그저 피해자일 뿐이다. “상대가 이성이든 동성이든 성추행은 말 그대로 성추행”이며, 김아무개 전 부대사의 행위는 명백히 “상대가 원하지 않는 행위를 일방적으로 행한 폭력적인 행위”(조혜민 정의당 대변인)였다.

새로운 인권의 영역으로 인식 지평을 넓히려 노력하지 않는 사회에 미래란 없다. 외교부 간부들에게도, 송영길 의원에게도, 이 글을 쓰는 나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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